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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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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학부모님께- 외손자의 입학을 지켜보며 저에게는 둘째딸이 낳아준 외손자가 있습니다. 그 애도 오늘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제 부모와 있을 때는 '그놈의' 잔소리 때문인지 제법 말도 잘 듣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하다가도 제게만 오면 그만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맙니다. 우선 우리 내외에게는 존대어 반 반말 반이고, 도대체 스스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현관에서는 신발부터 벗겨주어야 하고, 옷도 벗겨주어야 하고, 밥도 먹여주어야 하고, 화장실도 동행해야 하고 -자다가는 페트병 자른 것이 그 애의 화장실입니다- 그 외의 모든 일도 그렇습니다. 하다못해 제 어미가 한마디만 하면 아무것도 살 수 없지만 저와 함께 가게에 가면 이것저것 꼭 사야하는 물건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그 애의 방은 크고 작은, 수많은 종류의 입니다. 그래도 제게는 이른바 '세.. 2008. 3. 3.
戰戰兢兢, 그리고 포옹 교장들끼리 만나면 참 시시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가령 ‘업무추진비를 어떻게 써야 감사에 걸리지 않는지’ 같은 자잘한 화제가 그런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처신을 잘못하여 구설수에 오르는 얘기도 합니다. 어느 자리에서였는지 후배 교장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생각납니다. “남자애는 대체로 마음 놓고 포옹해 주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자애는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저학년 애는 더러 포옹해주기도 하지만, 고학년 아이에게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3, 4학년 여자애라도 수치심(羞恥心)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묻습니다. “그러면 고학년 여자애에게는 어떻게 대합니까?” “악수를 합니다. 사실은 악수하는 것조차 조심스럽습니다. 아이들은 대체로 교장이 악.. 2008. 2. 27.
그리운『숭례문』(Ⅱ) : 단상(斷想) ○ 정부중앙청사 18층에서 교육과정․교과서 일을 할 때 경복궁 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었다. ‘과감하게’ 결정되고 신속하게 추진되었다. 일시에 사라져가는 걸 지켜보며 ‘나중에 일본인들이 “우리는 조선을 침략한 사실이 없다.”고 하면 무엇으로 증거를 대려고 없애버리나?.. 2008. 2. 23.
모딜리아니 『검은 타이를 맨 여인』 1968년 가을, 쓸쓸한 시절에 곧 졸업을 하게 된 우리는 역 앞 그 2층 다방에서 시화전(詩畵展)을 열기로 했습니다. 일을 벌일 생각은 잘 하면서도 누구는 뭐 맡고, 또 누구는 뭐 하고…… 남을 잘 동원하는 게 제 특성이어서 남에게만 좋은 시(詩)를 내라며 날짜를 보냈으므로 다 챙기고 보니 정작 제 작품은 없었습니다. 늦가을이고 또 한 해가 저무는구나 싶어서 거창하게 '사계(四季)'라는 제목으로 쓰고 보니 영 시원찮았지만 기한이 다 되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처음 써본 시였고 마지막 작품이었습니다. 별 수 없어 그림이라도 특별한 것을 넣어 그것으로 눈길을 끌자는 생각을 하다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검은 타이를 맨 여인』이라는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어젯밤, 그러니까 2월.. 2008. 2. 18.
그리운 숭례문, 그리운 서울남대문 읍내의 중학교에 다닐 때는 하숙이나 자취를 하며 지냈으므로 방학이 되어야 그 시골집으로 돌아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여름방학에는 농사일도 좀 도왔지만, 겨울이면 마땅히 즐길 거리도 없어 그런 날 밤에는 아이답지 않게 걸핏하면 이 집 저 집 사랑(舍廊)을 찾아다녔다. 어른들 중에는 짚 몇 단을 들고 오는 분도 있었다. 그런 분은 남들이 화투를 치거나 잡담을 할 때 새끼를 꼬면서 이야기에 끼어들고 화투를 치던 사람들이 마련하는 밤참을 얻어먹었다. 그런 밤에 내가 그 사랑에 가서 어른들 틈에 끼어든 것은 그 분위기가 한없이 편하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의 잡담은 재미있었다. 어쩌다 서울을 다녀온 사람이 서울역에 내리니까 남대문이 빤히 보이더라고 하면 틀림없이 누군가가 나서서 서울역에서는 절대로 남대문이 .. 2008. 2. 15.
영어, 영어, 영어 지난 겨울방학에 3박4일간 일본에 연수출장을 다녀온 우리 학교 W 선생님께 물어보았습니다. “그래, 일본을 다녀온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 선생님은 서슴지 않고 몇 가지 대답을 했습니다. 일본은, 작고 정교하고 단정하고 친절하고 질서가 잡혀 있으며, 학교 시설․환경에 대한 투자는 어느 정도 되었다고 보는지 정지되어 있는 느낌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일본어를 할 수 없어 영어를 했고, 그들은 일본어를 그대로 했는데, 그러면서도 그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퇴근길의 광화문역에서 신길 방향 열차를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경복궁역에서 경복고등학교나 청와대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농학교 남학생이 타임지를 들고 여학생과 수화(手話)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2008. 2. 14.
初等學校 敎育計劃 樹立의 基本觀點 - 한국교육생산성연구소《학교경영》(2008년 2월) 학교교육계획은 각 학교에서 교과와 재량활동․특별활동을 운영하고, 학생들의 생활을 지도하기 위한 연간계획이다. 그러므로 그 주된 내용은 당연히 교과와 재량활동․특별활동, 생활지도이고 그러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계획을 덧붙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직도 종전의 지원행정 중심, 혹은 시책 중심의 교육계획을 수립하는 학교가 많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관점으로 각 학교의 교육계획 수립에 대한 기본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며, 학교교육 연간계획을 ‘학교교육과정’으로 지칭하기로 한다. Ⅰ. 핵심적이고 시급한 혁신 '교육과정은 교육의 목표와 내용, 방법, 평가의 기준이 되고 지원관리기능인 교육행정, 재정, 교원의 양성․수급․연수, 교과서 등 교재개발, 입시제도, 교육시설․설비 등에 대한 정책수립과 집행의 근거가 되는「교.. 2008. 2. 13.
손가락 마디처럼 떨어진 동백꽃송이 지내다보면 주변에 이런저런 물건이 쌓이게 됩니다. 연구보고서나 단행본, 월간지 같은 자료가 대부분이지만 필통이나 필기구, 책갈피, 명함 통, 신문기사 스크랩 등 잡다한 물건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물건들을 잘 모으는 편이었습니다. 심지어 우편물이나 그 우편물의 봉투까지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모아온 책을 ‘왕창’ 버리는 경험을 한 뒤로는 사소한(책에 비하면) 물건들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는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만큼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았고, ‘아하, 그게 바로 물욕이었구나’ 싶기도 해서 스스로 제법 어른스러워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남들이 들으면 어쭙잖다고 하겠지만 이러면서 생에 대한 아집과 집착을 버리고 어느 날 좀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승을 떠날 수 있게 되는구.. 2008. 2. 9.
고흐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림입니다. 무슨 키가 큰 나무가 서 있는 시골길을 두 사람의 농부가 걸어오고 있고, 마차 한 대가 다가오는 저 뒤편으로 한적한 주택이 보입니다. 특징적인 것은, 그 나무의 좌우로 ‘이글거린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은 하늘에 역시 ‘이글거리는’ 태양인지 뭔지가 보이는데 그것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어서 ‘희한하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어떤 미술 교과서에는 그 그림을 그린 화가와 나란히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수염이 텁수룩한, 그러나 파랗고 날카로운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자화상입니다. “반 고흐는 정신이상(精神異常)이었고, 스스로 한쪽 귀를 잘랐다.”는 어느 선생님의 소개도 기억납니다. 『프로방스의 시.. 2008. 2. 8.
놀랍고 한심한 ‘不孝國 1위’(경기신문080205) 지난해 12월 10일, 숭실대학교 정재기 교수는 한국인구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한국 가족․친족간 접촉빈도와 사회적 지원 양상:국제간 비교’라는 논문을 통해 놀라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60세 이상 부모 1300명의 소득․교육․연령․성별․결혼상태 등 각 속성이 자녀와의 대면(對面) 접촉 빈도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포함한 26개국과 비교분석한 결과, 동거하지 않는 부모를 접촉하는 자녀의 비율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이 최하위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만 유독 소득변수의 회귀계수(상관관계지수)가 0.729로 부모가 돈이 많을수록 자녀와의 대면 접촉 기회가 늘어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동거하지 않는 어머니를 1주일에 한번 이상 만난.. 2008. 2. 4.
목마와 숙녀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 2008. 1. 21.
2008년 새해 인사 행복에 있어서 수수께끼란 없다. 불행한 이들은 모두 똑같다. 오래전부터 그들을 괴롭혀온 상처와 거절된 소원, 자존심을 짓밟힌 마음의 상처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경멸로 인해, 더 심각하게는 무관심으로 인해 꺼져버린 사랑의 재가 되어 불행한 이들에게 달라붙어 있다. 아니, 그들이 이런 것들에 달라붙어 있다. 그리하여 불행한 이들은 수의처럼 자신들을 감싸는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행복한 이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앞을 바라보지도 않고, 다만 현재를 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곤란한 점이 있다. 현재가 결코 가져다주지 않는 게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의미다. 행복해지는 방법과 의미를 얻는 방법은 다르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순간을 살아야 한다. 단지 순간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그.. 2008.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