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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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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바보야!" "선생님, 바보야!" 지난 10월 22일 월요일 저녁, 퇴근하여 식사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닥터스」라는 MBC 의학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데 보신 적 있습니까? 갑자기 네댓 살쯤인 아이가 병실 침대 위에서 울부짖었습니다. “엄마, 바보야!” 뺑소니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쳤는데, 응급실의 젊은 당직의사가 한 말은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봐서는 두피가 벗겨지고 피가 흐르는 정도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뇌일혈인지 아닌지 하루 정도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엄마, 바보야!” 그 외침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고, 그 어린애가 가엾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 어린 것이…….’ 그 애는 제 엄마를 왜 ‘바보’라고 했을까요? “왜 뺑소니를 못 잡나?” 그런 뜻이었을까요? 아니면, “왜 나를 방치하여 이렇.. 2007. 10. 24.
연주회 풍경과 교실 풍경 1990년대에 오스트레일리아에 갔을 때였습니다. ‘한국바로알리기’라는 거창한 이름의 사업 때문에 출장을 갔는데, 몇몇 기관을 방문하자 일이 끝났고 다시 시드니로 들어가 관광을 하게 되었는데 그 코스의 하나로 오페라하우스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우리 일행은 네 명이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파운데이션’이라는 기관에서 나온 분이 제공한 티켓의 좌석을 찾아갔더니 3층인가의 맨 뒤쪽이었고, 무대는 그야말로 가물가물해 보여서 처음부터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좌석에 앉아서도 객석의 매너를 지켜야 하는지 의문이었고, 하루 종일 일정이 빡빡하여 피곤하기도 해서 곧 졸음을 참지 못할 지경이 되었으므로 조용히 그 유명하다는 오페라하우스를 나와 텅 빈 거리를 혼자서 쏘다니다 호텔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신.. 2007. 10. 22.
재량활동 정상화를 위해(경기신문 071012) 이 글은 '만신창이가 되는 재량활동 교육'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재량활동 정상화를 위해'로 바뀌었습니다. 신문 편집자는 보통은 '쎄게' 돋우는 게 습성인데, 만신창이 어떻고 하니까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으니 이번에도 집필자의 의도는 빗나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발표에 따르면 국회 교육위원회는 지난 9월 19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고등학교 선택교과에 보건과목이 추가되도록 학교보건법을 개정하기로 하고, 교과 내용, 수업시간수 등 세부적인 내용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고시하도록 했다. 개정안이 10월 중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1963년에 체육과목에 흡수되면서 폐지된 보건과목이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고교 2, 3학년 학생은 선택과목으로.. 2007. 10. 20.
오남에 사는 이유 흔히 이야기하기로는 편의시설이 좋고 교통이 편리하고 학교나 학원 등 자녀교육의 조건이 좋고 환경이 쾌적한 곳의 집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또 다른 조건도 있습니까? 아니, 여러분은 그러한 조건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 여러분은 왜 오남에 집을 구하여 살고 있거나 오남에 직장을 두고 있습니까? 오남은 연혁을 봐도 별것 없습니다. 1983년에 오남리, 팔현리, 양지리가 진접면에 편입되었고, 1992년에 오남출장소가 생겼으며, 1995년에 오남면이 되었고, 2001년 9월에 오남읍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오남’이라는 지명은 오산(梧山)의 ‘오'자와 어남(於南)의 ‘남'자를 따서 유래한 것이라 하기도 하고, 세조가 묘지를 찾으러 광릉으로 가는 길에 건너다 본 곳이라 하여.. 2007. 10. 17.
알고보면 우리와 친밀한 저승사자 학교에 근무하니까 대체로 교장이 나이가 가장 많아서 겸연쩍게 노인 취급을 당하는 수도 있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새파란(?) 젊은이들에 비해 '노인은 노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가을이어서 그런가요? 10월이고 날씨조차 '가을맞고' 그러니까 '올해도 거의 다 갔구나' 싶어서 서글퍼집니다. 지난 3월(그러니까 저쪽 학교에 근무할 때), 이 블로그의 그 글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의 주인공인 함수곤 교수께서 짤막한 글을 하나 달라고 해서 '알고 보면 우리와 친밀한 사이인 저승사자'란 글을 써주었는데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저도 이제 "젊은이" 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다 늙어서 건강하게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은 세태는 정말 싫습니다. 그런 이들은 이 세상이 그렇게 좋은 걸까요? 오늘.. 2007. 10. 17.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Ⅱ) 그분은 알고 보면 가까이 갈 수 있는 틈을 준다 2005년 2월초부터 그분이 친지들에게 '한밤의 사진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나에게 특히 인상깊은 점은 그분이 취재하는 세상의 수많은 일들, 이런 저런 교육단상 같은 '멀쩡한' 사연 아래에는 꼭 볼 만한 사진을 곁들이는데 그것이 대부분 낯뜨거운(그래봤자 단 한번도 그 흔한 포르노그라피는 아니고 매번 예상보다는 더 '홀랑홀랑' 많이 벗어버려서 혼자 보는데도 '낯뜨거운') 장면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건 초기의 일이었다. 그분의 처남이라는 분이 나서서, 평생을 교육에 몸바쳤으므로 그런 사진을 모아 보내기보다는 교육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충고를 해왔다면서 그분이 당장 그 비판을 수용한 이후로는 내가 보기에.. 2007. 10. 16.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Ⅰ) 완연한 가을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가을을 탑니다.2005년 12월,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 정년을 맞이한 함수곤 선생은 예전에 교육부 편수국장을 지냈습니다. 정년 기념으로 『함수곤의 편수교류기』라는 책을 냈는데, 그때 저는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을 냈습니다. 올가을에는 그 생각이 나서 여기에 그 글을 옮깁니다. 좀 길어서 나누어 실었습니다. 그분은 노래방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분은 몇 사람이 오랜만에 모였을 때 저녁식사만 하고 헤어질 때가 있었을까 싶고, 식사까지 합쳐 3차까지는 가야 제대로 된 모임이라는 느낌을 갖는 것 같다. 그러므로 누가 그분의 기분을 좀 맞추어 주고 싶다면 식사를 하면서 대뜸 "우리 식사하고 나서 노래방에 들렸다 헤어집시다" 하면 당장 교과서를 제대로 만들었을 .. 2007. 10. 16.
기상청보다 나으면 좋을 교장의 기상관측능력 10월 9일 우리 학교 운동회 날에는 모처럼 일찍 일어났습니다. 새벽하늘에서 반짝이는 금성(金星)이 아름답고 다행스러웠습니다. 서양에서는 금성을 사랑과 미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비너스’라고 부른답니다. 그 별이 지구와 태양의 사이에 있을 때에는 약 4,000만 km 이내까지 접근하므로 달 다음으로 밝게 빛나는 별입니다. 자주 보셨겠지요. 제법 쌀쌀한 듯한 새벽 공기가 못마땅하기는 했으나 비가 내리는데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개회식을 진행할 때만 해도 한기(寒氣)를 느꼈으나 이내 포근해졌고 운동장을 달리는 아이들은 더위를 느낄 것 같았습니다. 종일 높고 푸른 우리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여서 저 아득한 기억 속의 어린 시절 그 시골 운동회 날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내빈의 자격으로 우리.. 2007. 10. 12.
당연히 실시되어야 하는 전국 학력평가(경기신문070927) 경기신문에서는 이 원고를 '목표중심의 교육행정 절실하다'라는 제목으로 실었습니다. 그건 데스크의 권한이어서 때로는 저널리스트의 번쩍이는 감각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독단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지난 5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협의회 간담회에서 내년부터 중학교 전 학년을 대상으로 연간 2회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데 대해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점수 공개 등으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결론이 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면 그것은 교육의 본질에 대한 우리 교육계의 무관심을 반영하는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이로써 그 계획이 유야무야되고 만다면 교육부로서는 학.. 2007. 10. 1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자신의 어선漁船에 태운 20대 젊은이 4명을 바다에 빠뜨려 살해한 범인 오씨는 165cm 가량의 키에 왜소한 체구를 갖고 있으나, 오랜 어부 생활로 바다에 익숙하고 수영에 능한 노인(70세)이었습니다. 지난 8월 31일 오후 5시쯤,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동율리 앞 우암선착장에서 출항 준비를 하던 그에게 남녀 두 명이 다가와 배를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1시간 정도 고기잡이를 하던 그는 여대생을 성추행하려는 욕심으로 먼저 남자를 바다에 밀어 넣고 올라오려 하자 삿갓대(2m 길이 나무막대 끝에 갈고리를 매단 어구)로 내리쳐 떨쳐낸 다음, 그의 허리를 잡고 격렬하게 반항하는 여자에게도 “같이 죽어라”며 바다로 밀어 넣어 역시 삿갓대를 써서 올라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9월 25일 오전, 이번에는 20대 여성 .. 2007. 10. 8.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2 (박○○ 작) 2007년 9월, 내가 이 학교에 와서 각 반 대표들에게 임명장을 주는 장면을 박○○ 선생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이미 한물간 사람에게 임명장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는 아이들, 그 절차를 받아들여주는 그들에게 미안했습니다. 다만 내가 먼저 태어나 교장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맡은 역할대로 치르는 절차라는 것을 잘 이해해 주었으면 했습니다. 2007. 10. 5.
전근 축하 전보와 편지 근무처를 옮기면 전근인데, 사람들은 일단 이를 '영전'으로 표현하며 전근이라든가 좌천이라고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번에 내가 전근 왔을 때도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를 하거나 화분을 보내거나 전보나 편지를 보내준 분들이 있었습니다. 직접 방문한 사람을 영접하거나 화분을 받거나 전화를 받는 경우에는 대체로 반갑고 고마운 느낌이 드는 것은 물론이지만, 유독 축전이나 편지를 받으면 일단 고마워하면서도 그 짧은 문장이나 문양을 분석하게 되는 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대부분 이미 정해 놓은 문안 중에서 고르고 전보의 값에 따라 고급이나 중급의 문양을 정하는데 뭘 분석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 단순함 속에도 보내는 사람의 정성과 성의가 담겨 있으니 분석 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편지 형식의 축하 서신인.. 2007.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