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2일 월요일 저녁, 퇴근하여 식사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닥터스」라는 MBC 의학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데 보신 적 있습니까?
갑자기 네댓 살쯤인 아이가 병실 침대 위에서 울부짖었습니다. “엄마, 바보야!” 뺑소니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쳤는데, 응급실의 젊은 당직의사가 한 말은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봐서는 두피가 벗겨지고 피가 흐르는 정도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뇌일혈인지 아닌지 하루 정도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엄마, 바보야!” 그 외침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고, 그 어린애가 가엾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 어린 것이…….’
그 애는 제 엄마를 왜 ‘바보’라고 했을까요? “왜 뺑소니를 못 잡나?” 그런 뜻이었을까요? 아니면, “왜 나를 방치하여 이렇게 되도록 했나?” 혹은 “왜 하필 이런 내 모습을 텔레비전에 나오게 하나? 방송국 돈(좀 주는 것일까요?) 아니면 치료 못하나?”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왜 이렇게 아픈데도 어쩔 수가 없나! 엄마는 모든 걸 다 해결해 주는 사람 아니냐. 엄마이니까.” 그런 뜻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다만, “엄마, 바보야!” 그 부르짖음 속의 ‘엄마’라는 단어의 무게는 그 아이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무거운, 그렇게 표현해 봐도 아무래도 이상하고 차라리 가볍고, 그래서 도저히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군요.
다행히 하루가 지난 후의 CT 촬영 결과를 본 그 의사가 다른 이상은 없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만약, “엄마, 바보야!” 하고 부르짖었을 때의 그 지각력과 이성이 그 아이에게서 영영 사라지게 되었다면, 그 외침은 얼마나 가슴 아프고 기막힌 일이겠습니까.
나는, 주제넘지만, 내가 만약 우리 양지 아이들에게 그 엄마와 같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이제는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거액의 돈도,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이 다 선망하는 어떤 아파트 한 채도,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높은 직위도 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선생님, 바보야!
여러분, 내가 그런 교사, 그런 교장이 되는 건 불가능할까요? 아무래도 그렇다면, 불가능하다면, 좀 물러서서 다시 질문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교사는 아니라고 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나 먼저 배운 것뿐인데도, 더구나 이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위대한 인물이 될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데도- 어렸을 때 학교에서 온갖 구박을 받은 아이가 위대한 인물로 성장한 경우가 세계적으로 얼마든지 있는데도. 설령 그런 인물이 아니라 해도 이 사회의 일원이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무슨 대단한 자리에 있는 양 군림君臨하는 교사, 교사가 진정 어떤 존재인지도 모른 채 그냥 일반 직장의 봉급쟁이와 다른 점이 없는 하나의 봉급쟁이인 줄만 아는 교사, 기이한 생각, 창의적인 생각의 싹은 여지없이 자르고 덧셈뺄셈을 가르치는 데만 혈안이 되어 그 아름다운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습성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삼엄한 분위기로 몰아넣는 교사, 인간은 누구나 다 지니고 있는 개인별 단점이 쉽게 발견된 아이를 주눅 들게 하는 교사, ……, 무엇보다 제 아이를 그렇게 다루면 좋아하겠는지 스스로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 그런 교사만은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꿈에라도 한번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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