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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분주함과 한가로움이 교차하는 나날

by 답설재 2007. 10. 31.

지난주는 분주했습니다. 우리 학교 독서축제기간이기도 했고, 그 분주함 속에서 우리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내린 판단이 옳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에 보람을 느낀 한 주이기도 했습니다.

 

2007 양지독서축제의 캐치프레이즈는 ‘책이 좋은 아이들, 다산 도서관’이었습니다. 중앙현관 앞의 게시판에는 “우리들 축제의 한마당. 책을 보고, 느끼고, 읽으면서 꿈을 키워요. 지혜를 가꿔요.”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소개하면, 10월 8일(월)부터 2주간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도서관 활용 수업, 10월 24일(수) 오전의 어린이, 학부모, 교사 대표 및 인근 학교 교장선생님들이 참석한 도서관 개관식, 10월 24일~25일 이틀간 학부모 대표들이 주관하여 학교 건물 앞에서 단풍든 산을 바라보며 실시된 도서바자회와 독서 설문조사, 10월 25일(목) 오후 유치원생과 1~3학년 희망자를 대상으로 두 차례에 걸쳐 공연된 전문가 초청 동화 구연, 10월 26일(금) 3~6학년 전체가 참여한 독후감쓰기 등이었습니다.

 

도서바자회는 종전처럼 과학실에서 실시하는 것이 도서를 관리하는 데도 편하고 비가 내려도 상관없으며 도난 등 분실을 방지하는 데도 효과적이라는 말씀이 많았지만 제가 나서서 끝까지 우겨 결국은 화단 앞길에서 실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바자회를 위해 애쓰신 어머님들을 초청하여 점심식사를 함께한 자리에서 그 판단이 옳았고, 하늘과 단풍진 산과 가을바람 속에서 개최된 그 바자회의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고, 무엇보다 이리저리 마음대로 옮겨 다니며 책을 넘겨보고 고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다웠으며, 미리 걱정한 도서 도난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여러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목요일 밤에는 비가 많이 내렸지만 이튿날 아침에는 다시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으므로 조마조마했던 제 마음도 그만큼 가벼웠습니다. 그분들은 내년에 더 멋진 바자회, 더 멋진 독서축제를 열어보고 싶다는 제 구상에 틀림없이 전적으로 동의해주실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판단하고 구상하고 실천하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을 ‘학생중심 교육과정 운영’이라고 합니다. 도서바자회의 장소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사실은 두 분의 K 선생님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그리고 이 교육활동을 위해 장기간 고생하신 선생님들께 특별한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목요일에는 한국검정교과서협회에서 주최한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발행 출판사 CEO 세미나에 참석하여 강의를 했습니다. 그 세미나는 속초에서 개최되었으므로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모처럼 설악산의 그 단풍을 먼발치로라도 쳐다볼 수 있었는데, 저녁이 되자 곧 날이 어두워졌고 굽이굽이 고갯길이 많은데다가 비까지 내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고생도 막심했습니다.(우리 한 교감선생님은 춘천에서 다니시므로 그 길을 오가면서 매일 고생이 심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에 교내 학업성취도평가가 계획되어 있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생님들께서 출제한 문항들을 모두 풀어보고 새로 출제할 문항에 대해 메모하고 나자 새벽 3시가 넘었습니다. 그 자료를 이튿날, 그러니까 금요일 아침에 각 학년 부장선생님들을 불러 돌려주었습니다. 그날 오전에는 또 2학년 어머님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수업을 참관하고 ‘미래관’에 모인 그 어머님들에게 한 시간 정도 아이들 작품을 소재로 하여 우리 교육을 이야기했습니다. 딱 점심때가 되었으므로 어머님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담임선생님과 면담하고 난 후 귀가하시게 되면 너무 시장하실 것 같아서 빵과 음료수를 구입하여 그 자리에서 함께 나누어 먹었는데 빈약한 식사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오후에는 또 이 지역 유치원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에 모여 연수를 한다기에 유아교육 이야기를 좀 해주었습니다.

 

이래저래 피로가 겹쳐 ‘파김치’가 되었는데, 그날 저녁에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와카랑가WAKAARANGA 스쿨 젠킨Brent Jenkin 교장을 만나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그는, 그 나라의 교육제도가 우리와 달라서 오랫동안 교장을 하고 있으므로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습니다.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매우 열정적인 교육자로서 3주간 혼자서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을 여행하며 세 나라의 교육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쁘기만 한지, 우리는 왜 연수여행을 하면 떼를 지어 몰려다녀야 하는지, 그리하여 ‘촌스럽게’ 국민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고 그 경비가 말썽이 되도록 하면서 사진 찍는 데 열중하는 사람이 많은지 한스러웠습니다. 그는, 교사들이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가르치고, 그렇게 가르쳐 아이들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게 함으로써 교수․학습의 수준을 높여나가는 것이 와카랑가 스쿨의 교육방침이라고 했습니다. 그 학교의 스쿨 프로그램에 대해 밤늦게까지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말도 잘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만 호텔로 돌아가라고 하고 전철역까지 배웅해주었습니다.

 

설악산을 지나면서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단풍을 이번 주에는 학교에 앉아서 잘 구경하고 있습니다. 바로 학교 뒷산의 단풍입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도 저 위로부터 아래로 고운 모습을 자랑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기가 막힙니다. 여유가 있으면 오남저수지라도 한번 가 보십시오. 가을 햇살을 받는 그 물결, 건너편 산자락의 단풍이 어떤지 보시면 마음도 그 물결처럼, 그 단풍처럼 고와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