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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참 어처구니없는 교육의 획일성

by 답설재 2007. 11. 12.

 

 

 

지난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교육계 인사가 새로 부임해 와서 관할 학교의 교장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교장을 할 때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습니다. 우선 '숙제 없는 날'을 정해서 그날은 창의성 교육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지게 했답니다.

또, 아이들에게 효孝 교육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모에게 꼭 존댓말을 쓰게 하고, 등하교 때는 꼬박꼬박 인사를 드리게 했으며, "나는 효자다."라는 리본을 달고 그 아래에 장래 희망을 적어서 달고 다니게 했답니다.

그는 또 그러한 일의 실천 여부에 대한 부모의 확인을 받아오게 했더니 아이들은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의 엉덩이에 대고 사인을 해달라고 조르는가 하면, "나는 효자다. 대통령", "나는 효자다. 운전사" 같은 리본을 달고 다니게 되었으며, 음식점 같은 데 가서도 "아버님, 어머님. 어쩌고 저쩌고." 해서 부모들이 영 어색해 하며 제발 어떻게 좀 그런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할 수는 없느냐고 하더랍니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 나는 '한 학교의 교육행정을 맡은 교장은 교장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창의성 교육만 해도 특별한 날을 잡아 하는 것이 아니고 국어, 사회, 도덕, 수학, 과학, 체육…… 등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활동의 장에서 의도적, 항상적恒常的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효 교육도 그렇지요. 교육이란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언제나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그렇게 어색하고 억지스럽게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렇습니다. 아직은 대부분 선생님께서 하라면 하는 단계에 살고 있지요. 그도 이야기 끝에 밝히기는 했지만 자신의 부모는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고, 돌아가시고 나면 아버지는 "선고先考" 또는 "선친先親", 어머니는 "선비先妣"라고 부르며, 장인․장모나 시부모에게는 "아버님, 어머님" 할 수 있는 것인데, "아빠, 엄마" 하며 달라붙던 아이들이 난데없이 "아버님, 어머님" 하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기야 다 장성한 아들이 남들 다 보는 데서 "아빠, 엄마" 하는 것도 좀 우습기는 하지만.

 

그날 함께 이야기를 들은 교장들 중에는 그 이야기를 좋은 교육 사례로 들은 사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감사합니다.'란 인사가 우리 학교의 공식 인사말이다." 하고 선포(?)한 사례도 있게 되었습니다.

글쎄요, "감사합니다"란 인사말은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하지만 걸핏하면 "감사합니다."를 되뇌고 좀 다른 인사를 해도 좋을 때도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면 어쩐지 어색하고 획일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내 경우에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을 때도 그 아이들의 표정이나 태도, 나이, 상황 등에 따라 각각 다른 응대를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래야 인사를 하는 아이들도 '교장이 오늘은 어떻게 인사를 받을까?' 생각하며 인사를 할 것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길을 내려다본 임금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질서가 없구나. 저러다가 무슨 사고가 나지 않겠느냐?" 그러자 신하가 아뢰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어제도 서로 부딪히는 사고가 났습니다." 임금은 당장 명령했습니다. "여봐라! 모든 길에 방향을 정하여, 모든 백성들이 그 방향으로만 다니게 하라!"
임금의 명령은 곧 널리 시행되었고 어기는 사람은 벌을 주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잘 따랐습니다. 서로 부딪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임금과 신하들은 아주 만족하였습니다.
어느 날, 바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앞지르는 것을 본 임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명령했습니다. "서로 먼저 가려고 다투어도 사고가 나기 쉽다. 이제부터는 줄을 지어 다니게 하라." 그러자 그 뒤부터는 앞지르다 부딪히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길마다 똑같은 모습의 행렬이 줄을 이었고, 똑같은 걸음걸이로 걷는 모습이 질서가 있어 참으로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앞사람을 따라가야 하니까 목적지와 다른 엉뚱한 곳으로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임금은 대단히 흡족해했습니다.
어느 날, 한 신하가 아뢰었습니다. "임금님, 아무런 사고는 없게 되었으나, 도중에 옆길로 빠지는 사람도 있고, 다른 길에서 들어와 말썽을 피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원컨대, 모든 길에 표지판을 세워서 다른 길로 가지 못하게 하옵소서."
임금은 그 신하를 크게 칭찬하고 당장 그대로 시행하게 했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갈림길이 나타나도 표지판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 줄지어 걸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되돌아갈 수도 없고 옆길로 빠질 수도 없었으나 임금은 무척 기뻤습니다. "야, 그것 참 보기 좋구나."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에서 왼쪽으로 구부러지게 되어 있는 화살표 표지판 하나가 세찬 바람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구부러진 화살표가 없었으므로 백성들은 별수없이 긴 행렬을 이루어 바다로 들어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6학년 아이들이 배우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규칙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규칙은 무섭습니다. 장차 이 아이들을 한곳으로 몰아가서 획일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으로 만듭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그들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회는 다양한 인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다양성 속에서, 사람들은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며, 그러한 교육 속에서 아이들이 각자의 개성을 신장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1700명을 가르친다면 그 1700명의 개성을 모두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획일적으로 가르쳐도 좋다면 교육을 왜 어렵다고 하겠습니까.

 

사실은 가만히 좀 두면 더 좋겠는데, 자꾸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새로운 것을 정하는 교육자 때문에 본질이 자꾸 흐려지는 폐단이 심합니다. 저는 그런 교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잘 좀 지켜보고 질정叱正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