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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정보통신기술의 도입을 한탄함 - 전국교육자료전 심사를 맡아보고 -

by 답설재 2007. 11. 5.

지난 10월 넷째 주의 분주함은 드디어 일요일(10. 28)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날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제38회 전국교육자료전에 나가 심사를 했습니다. 올해는 그 자료전을 대전국립중앙과학관에서 개최하게 되었으므로 심사도 그곳에서 했습니다. 아침 8시 30분에 개최되는 심사위원회에 늦지 않으려고 그 새벽, 한산한 거리를 달려 서울역에서 KTX를 탔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는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와 전국교육자료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저는 그동안 이 두 가지 대회의 심사를 각각 두세 차례 맡아보았습니다. 전국교육자료전은 우수한 교육자료를 교육현장에 소개하고 교육자료 제작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을 높여 교육방법 개선과 교육자료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칠판교육의 장벽을 뚫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1970년부터 개최되어 왔습니다.

 

심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거의 교수들인데, 그들은 자신이 심사에 참여했다는 것을 잘 밝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대회에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이 그를 찾아가 지도를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 다시는 심사위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바쁘고 한데 이 사람 저 사람 찾아오면 귀찮고 더구나 왜 심사를 그렇게 했느냐고 따지고 들면 낭패스럽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저는 심사비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명예로운 일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이제 심사위원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해도 전혀 상관이 없으므로 이렇게 밝히게 되었습니다. ‘명예’라는 단어를 쓰면서 생각났습니다. 저는 1975년과 1976년에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에서 1등급 ‘푸른기장증’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그게 참 대단한 일인 줄 알고 겉으로 표시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으스대고 다녔던 생각도 나고,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면 무슨 비법이라도 가르쳐주는 듯 스스로 지도하는 입장이었던 것을 지금 생각하면 참 가소롭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때 제게 그 희한한 ‘지도’를 받은 분이 이 글을 읽으시거든 부디 철없던 그 시절의 기고만장했던 저를 널리 용서해주십시오.

 

자칫하면 이야기가 다른 길로 가겠습니다. 그날 저는 교수 두 명과 함께 사회과 교육자료 심사를 맡았습니다. 심사대상 작품 수는 시․도 대회에 출품된 3,000여 점 중 14개 분야에서 예심을 통과한 196점이었고, 그 중에서 사회과는 17점이었습니다. 그 17점의 주인들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13점 23명, 중학교 3점 3명, 고등학교 1점 3명으로 초등교원들이 절대 다수였습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그 선생님들로부터 각각 5분간 그 작품의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듣고 5분간 질의응답을 했는데, 사실은 심사위원들에게 송부된 작품제작보고서를 통하여 이미 서류심사를 마쳤으므로 피땀 흘려 제작한 그 선생님들은 그 시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갔겠지만 우리로서는 때로는 그 10분이 지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작품의 경향 때문이기도 했는데, 웹을 이용한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그렇지 않은 작품이 오히려 신기해보일 정도였고, 그것도 대부분 자신이 근무하는 지역의 지역화자료가 많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웹의 이용이 따분하다거나 지역화자료가 볼썽사납다거나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저는 그 심사를 통하여 우리 교육의 한심한 현실을 더욱 잘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한심한 현실이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교과서 중심 교육’을 말하며, 존 듀이가 옛날에 지적한 바와 같이,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떠먹여 주려는 식의 ‘지식주입식 교육’에 너무나 깊이 물들어 아예 자신들이 어떤 질곡에 빠져 있는지조차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아닌가 싶은 한탄에 빠졌습니다.

 

어쩌면 똑같이 단순한 지식을 웹이라는 창고에 집어넣어 두고 학생들로 하여금 획일적으로, 강제적으로 그걸 들여다보라는 방식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제가 학생이라면 아예 질려버리고 말 것 같았습니다. 저는 심지어 학습자료를 제작한 그들이 ICT(정보통신기술;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의 발달로 정보화시대의 엔지니어engineer가 되어버린 거나 아닌지, 교육행정가들은 왜 이런 현상을 방치해두어야 하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제가 흥분하는 이유를 한 가지만 예시하면 우수작으로 뽑혀 전국대회에 들고 나온 그 자료들 중에는 아예 어떤 자료를 모은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아르바이트생을 불러 일정 기간 자료를 모으게 하면 충분하겠다고 판단되는 자료들이 허다하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자료들에는 ‘교사’라는 전문가가 보이지 않고 ‘학습’을 해야 하는 ‘학생’도 보이지 않으며 그럴 듯한 제목과 미사여구로 동원된 이론적 배경은 허울일 뿐 고전적인 ‘교수․학습 원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두 명의 심사위원들과 함께 각 작품에 1, 2, 3등급을 정해준 다음, 사회과 심사위원장이라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심사평을 써 제출하고 올라왔습니다.

 

 

 

사회과 교수․학습자료 제작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웹이 기반을 이루는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이제 지역적 편차 극복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특히 농어촌 소규모 학교 교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눈에 띄고 있다. 그만큼 자료제작 기술이 평준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화자료 제작이 활성화되고 있다.

 

사회과 자료 제작에서 아쉬운 점, 미흡한 점을 찾아보면 우선 이론의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여 용어 사용 자체의 부정확성이 드러나고 있고, 자료제작에만 몰두하여 교육과정 혹은 사회과의 기본적 지도법과의 연계가 소홀한 경우가 허다하였다. 또 사회과 지도의 기본적 성격은 학생들의 사고력, 문제해결력, 탐구력,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등의 신장에서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식의 나열과 전달에 치우쳐 학생들의 활동이 외면된 경우가 많았으며, 이러한 경향으로 자료의 주안점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작품도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의 우리 선생님은 기분 좋은 날의 쉬는 시간에 꼭 그날의 당번을 불러 자료실에 가서 그림연극 틀을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당번은 그 그림연극 틀을 선생님의 교탁 위에 보란 듯이 반듯하게 얹어 놓았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우리가 맨 처음에 본 그림연극은 당연히 ‘나무꾼과 선녀’였습니다. 선생님은 평소와 달리 너무나 멋진 변사(辯士)였으므로 혹 선생님께서 피곤하시거나 몸이 불편하신 날 우리들 중의 누가 나가서 그림의 뒤에 적힌 글을 읽으면 하나도 재미없는 그림연극이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그림연극 한 편으로 우리를 매료시킨 그 선생님이 보고 싶습니다.

 

로버트 헬러는 2000년에 『빌 게이츠』(형선호 옮김, 황금가지, 2001, 24쪽)라는 책에서 소프트웨어 혁명의 천재, 정보시대의 거장, 정보기술의 황제, 탁월한 사업가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MS(마이크로소프트)의 CEO 빌게이츠가 한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습니다.

“인터넷은 전 세계에서 커뮤니티에 동참해 자기 집 안방에서도 강력한 연결이 가능하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불과 6년 전에는 사람들에게 놀랍게 받아들여졌을 이 말이 지금은 전혀 놀랍지 않은 진부한 서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 자신이 지난 세기가 된 1995년에 『미래로 가는 길』(이규행 감역, 도서출판삼성, 363쪽)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 것은 전혀 진부하지 않습니다.

“교사는 학생이 자신의 특별한 관심 영역에 마음껏 파고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울 것이며, 학생은 쉽게 그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정보기술은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교사는 학생에게 좋은 코치, 짝, 창조적 조언자, 세상과 이어주는 통신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277쪽) “정보고속도로는 교육의 초점을 제도에서 개인으로 옮겨 놓을 것이다.”(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