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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K 선생님의 우려에 대한 답변

by 답설재 2007. 11. 19.

 

학교를 옮겼을 때의 서먹서먹하고 서글픈 심정을 좀 이해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장칼럼> 세 번째 글에서 밝혔지만 저는 자신이 교장이 되어 있는 것에 그리 대단한 느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남들은 대체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교장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그렇게 노력했으므로 교장 노릇을 의욕적으로 하겠다는 것을 떳떳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는 왠지 ‘이제 나이도 제법 들었으니 교장이나 하라.’는 명을 받은 것 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경우, 처음부터 서글픈 느낌 같은 것은 전혀 가지지 않았다거나 이 자리에 앉자마자 의욕적으로, 그리고 이 학교의 구성원들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그야말로 한 가족이 된 느낌 속에서 지냈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묻고 싶습니까? 그냥 짐작에 맡기겠습니다. 학부모님들께는 아직 제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직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어른들은 일단 경계심을 갖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통해서라도 좀 다가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제 진정이 아직은 그분들에게 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학부모님들께서 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한두 가지의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저 교장이 도대체 사람인지 모르겠군.’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도 확인했습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에 근무한 학교에서는 학부모들부터 가까이 다가온 후에 아이들이 다가왔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당연히 차이가 있겠지요.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이 학교의 교사들에게는 제가 어떤 교장인지 조금 알려드렸고, 그러므로 그들 중에는 ‘이 교장은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느낌을 가진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그 선생님 중 한 분이 보내주신 소중한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먼저 저의 ‘학교장 칼럼’을 시작하는 첫 번째 글에서 제가 밝힌 것부터 인용합니다.

 

누구나 사는 곳을 옮기면 새로운 환경에서 오는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지만 그동안 살펴본 바로는 우리 학교는 아이들도 착하고 교직원들도 아주 성실하여 그런 것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다만 학교의 거의 모든 일을 교장에게 일일이 물어보고 결정하고 시행하는 우리나라의 이 학교문화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대로 토로하면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교장 노릇을 하겠나?’ 싶습니다. 느낌으로는 숨 쉴 겨를이 없는 것 같고, 이렇게 하면 선생님들이나 행정직원이 어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그렇다면 어느 학교에서나 그 학교의 교육수준은 그 교장의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학교문화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가령, 어떤 행사(주요교육활동)를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내용으로 실시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담당 선생님께서 계획한 것을 교감을 거쳐 교장의 결재를 받는 절차로 끝낸다면 그것은 그 담당자와 교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고, 그것이 발표되면 교장의 지시․명령 사항이 되는데, 그러한 과정 혹은 절차가 비합리적이라는 뜻입니다. 교장이 왜 모든 일을 지시․명령하고 감독하는 일을 해야 합니까? 학교교육을 왜 그렇게 결정해야 합니까! 우리 학교의 일은 우리 학교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이 결정해야 하고, 그렇게 결정된 일에 대해서 교장이 책임을 지고 실천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과 절차에서 교장은 국가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전문가로서 자문하고 지원하고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모르고 있고, 그저 일반 행정기관처럼 모든 걸 교장이 지시․감독하는 학교문화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런 일이라면 누가 교장을 하면 어떠랴‘ 싶은 생각으로 교장임용제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혼란스러워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은, 우선 다시 이러한 학교문화에 적응하는 데서 몸과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얼른 이러한 문화를 더 자율적이고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으로 바꾸고 싶은 욕심과 조바심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 절차와 방법이 필요하므로 시간이 흘러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쓴 데 대하여 K 선생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습니다.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글을 올리는 것조차 어렵게 생각되고 두려워하는 것이 오늘날의 학교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학교라는 곳이 자유스럽고 자신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장이라고 생각되지만 그것도 어떤 학교풍토인지, 어떤 관리자인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교장선생님들을 겪으면서 느낀 점은 누구나 자신만의 착각(?)에 빠져 자신은 민주적이고, 교직원과 아동들을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교직원이나 아동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차 권위주의적으로 흘러 자신의 아집에 빠져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경우를 흔히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학교문화가 경직되고 위계화 되어 관리자와 교사의 관계가 관료주의적으로 흘러가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사실 관리자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교장선생님이 더 정감 있고 동료애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업무처리에 있어서 교사가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견을 제시한다고 해도 이를 학교장이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의 일은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시행될 뿐입니다.

 

오늘 아침 학교장 칼럼을 읽고 칼럼의 진정성과 아울러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모든 일이 칼럼의 말씀대로 시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칼럼의 진정성을 느끼면서 이른 아침 무례하게 몇 말씀 올려보았습니다. ……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K 선생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까요.

①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두 번 속은 것이 아니다.

② 당신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이 답지는 제 욕심이겠지요. 뭘 보고 그분이 그렇게 생각해주겠습니까).

③ 관료적일 것이 분명한데도 이렇게 말하니 가관이고 가소롭다.

④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전례를 무시할 수 없고, 개연성이 크다. 다만, 잘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 선생님의 진의는 몇 번일 것 같습니까. 저로서는 그렇습니다. 이론이 그러니까 피상적으로 해본 말은 아닙니다. 더구나 속으로는 독단적으로 하고 싶으면서 의례적인 선언, 우선 그럴듯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인사치레로 한 말도 아닙니다. 두고 봐야 하므로 구구절절 그렇지 않다고 늘어놓아 봐야 다 쓸데없으므로 잘라서 말하면 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된다면 자신이 너무나 서글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 일생이, 제가 체험한 것, 무수히 생각한 것, 읽은 것, 읽고 다시 생각한 것, 그리고 교사로서 살며 남들이 하는 것을 보며 흘린 눈물 같은 것, 한마디로 말하면 제 진실, 제 인생이 다 거짓말처럼 되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방향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 그 방향에 대해 교사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저는 얼마나 초라할까, 제 연륜은 얼마나 허무한 것일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K 선생님. 당연히 아직은 모르시겠지요. 그러나 저라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행정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저에게 허용된 범위 내에서는 선생님께서 실망하지 않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실천되는 학교경영이 되도록 저 좀 도와주십시오. 저 때문에 또 실망하시지 않도록 해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저 자신도 초라해지지 않도록 협력해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늘 건강하기를, 행정적인 성과를 우선하고 학교나 교장의 이름을 빛내는 데 열중하는 이 시대의 학교문화에서 우리의 선택은 비록 외롭더라도 늘 바른 길이기를 기원합니다. 지켜보아주실 K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길의 마지막 장章을 끝내는 날 다시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을 잊지 않고 지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