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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재량활동 정상화를 위해(경기신문 071012)

by 답설재 2007. 10. 20.

 

 

  이 글은 '만신창이가 되는 재량활동 교육'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재량활동 정상화를 위해'로 바뀌었습니다. 신문 편집자는 보통은 '쎄게' 돋우는 게 습성인데, 만신창이 어떻고 하니까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으니 이번에도 집필자의 의도는 빗나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발표에 따르면 국회 교육위원회는 지난 9월 19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고등학교 선택교과에 보건과목이 추가되도록 학교보건법을 개정하기로 하고, 교과 내용, 수업시간수 등 세부적인 내용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고시하도록 했다. 개정안이 10월 중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1963년에 체육과목에 흡수되면서 폐지된 보건과목이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고교 2, 3학년 학생은 선택과목으로 보건과목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초․중학교 학생들은 관련 교과나 재량활동 시간을 이용해 집중적으로 배우도록 보건교육 강화지침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교육부는 지난 2월 28일 ‘2007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했다. 그 기준에서 재량활동에 관한 지침을 살펴보면, 초등학교의 재량활동은 창의적 재량활동으로 운영하고, 중학교는 한문, 정보, 환경, 생활외국어(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기타의 선택과목 학습에 중점을 두며, 고등학교 1학년은 선택과목 또는 기본교과의 심화․보충학습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육부에서는 그야말로 이 고시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교육부 스스로, 그것도 그동안 재량활동 운영에 대한 교육부와 교육청의 간섭이 심하여 재량활동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가 어려웠다는 현장의 비판을 외면하고 또다시 그 기준을 무너뜨리는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다.

 

  재량활동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다른 나라보다 교과목 수가 많아서 학생들에게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각 학교에서 나름대로 특색있는 교육을 하기가 어려우므로, 21세기의 세계화․정보화․다양화 시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자기주도적 능력과 창의성을 신장시키기 위해 학교나 지역사회의 실정, 교원, 학생, 학부모의 필요와 요구를 반영하여, 학교의 독특한 교육적 문화풍토에 알맞게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다양하고 특색있게 운영함으로써 학교교육의 궁극적 목표인 인간교육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교과, 특별활동 외의 한 영역으로 신설된 것이다. 그러므로 재량활동의 내용은 당연히 범교과 학습과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이어야 그 취지에 맞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보통신기술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초등학교에서는 컴퓨터 교육에 이 시간의 반을 할애하였고, 교사들이 자신의 전공 교과목을 가르치는 중․고등학교에서는 재량활동이라는 범교과적 영역을 흔쾌히 담당할 교원이 없어 현실적으로는 파행 운영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최근 격주로 실시되고 있는 주5일 수업제에 따라 중․고등학교에서는 아예 창의적 재량활동은 없애고 교과 학습, 혹은 그 보충만 하게 된 것만 해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이번에도 또 이러한 조치를 생각해낸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 학교의 실정을 고려한 수준별 수업 운영, 교과 집중이수제 도입, 고등학교 선택중심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 확대, 교과 수업시수의 증감 운영, 재량활동과 특별활동 운영의 자율성 확대 등으로 단위 학교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방향의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교육부에서는 교육과정 개정의 이러한 당위성을 지켜나가야 마땅하다.

 

  국가가 나서서 교육과정 기준을 정하는 가장 예민한 이유는 바로 교육에 가해질 우려가 있는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 편향된 교화, 선전 등을 방지하여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며, 실제로 세계 여러 나라들은 이러한 교육의 중립성 확보를 위해 교육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교육의 이러한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육 외적 체제로부터의 부당한 간섭, 압력, 편향된 교화, 선전 등을 방지하기 위한 방파제로서의 기준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교육 내적 체제에서의 학교나 교원의 자의적인 독단과 전횡 또는 임의의 교육과정 운영, 편향, 선전 등을 막기 위한 기준의 필요성도 강조되어야 한다. 더구나 교육부 스스로 이러한 역할을 다할 수 없다면 스스로 그 권한과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밖에 없다.

  보건교육은 중요하다. 당연히 잘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이처럼 옹색한 방법으로 그 필요나 요구를 해결하려 한다면 앞으로 다른 중요한 교육적 요구는 또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나가야 할지 생각해두어야 한다. 학교 밖의 간섭으로 본래의 취지를 살려나가기가 어려운 재량활동은 그만큼 교육적 중요성이 높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그 중요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교육부의 권한이라는 것도 잘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