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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교육혁신 방향정립을 위한 논의 (경기신문 0708)

by 답설재 2007. 9. 22.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교과서 연구기관은 '한국교과서연구재단'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이 기관에는 아직 교과서를 연구하는 직원은 하나도 없고 교과서연구를 도와주는 직원 몇 명이 근무하는 영세한 형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실정입니다. '한심하다'고 한 것은 그 재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잘난 체하는 우리나라를 가리킵니다.

저는 이 재단에서 1년에 3회 80쪽 짜리로 발행하는 저널 '교과서연구'의 편집기획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여러 선배님들과 정부, 교과서 전문출판사 등의 지원으로 지령 50호를 넘기는 했지만 나라도 이렇게 일하여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감 같은 걸 느끼고 있습니다.

 

그 외에 학회 성격의 모임을 들어보면, 교육부 편수관 출신들의 모임인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회장 박용진)가 있는데,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식으로 등록된 학회가 아니어서 활동에 제약이 있습니다.

저는 이 연구회의 모임이 열리면 자주 사회를 맡고 있습니다. 참 귀찮은 일이지만 선배님들이 사회 체질이라고 하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 가을의 제1회 교과서의날 기념 세미나에서도 사회를 했고, 해마다 열리는 총회의 사회도 해왔습니다. 처음 사회를 할 때는 긴장도 되고 자랑스럽기도 했는데, 이제는 잘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무언가 사회자로서 우리 연구회의 방향정립에 필요한 멘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교과서 연구를 목적으로 한 학회가 지난 7월 '한국교과서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탄생했습니다. 공주대학교 사범대학이 중심이 되었고 교육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창립총회 및 학술대회를 가진 바 있다는데, 유감스럽게도 저는 초청받지 못했습니다.

혼자 살아가기에도 분주하니 초청받지 못한 것이 하나도 서운하지는 않습니다. 그 학회에서 이번에 저에게 보내준 임원 명단을 보았더니 회장 1명, 부회장 7명(실장, 소장, 본부장, 교수 등), 고문위원 9명(전직 장차관, 교수 등), 감사 2명, 총무와 기획 각 1명, 8개 상임위원회 위원장 8명, 위원 70명, 이사 6명으로 되어 있는데, 그 수많은 임원에 속하지 못한 주제이니 할말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오묘한 현상은 그 학회 편집위원회에서 학회지 창간호를 내게 되었다면서 저에게 원고 청탁을 해온 것입니다. 창간호는 특집 1(교과서연구의 동향과 발전전략 : 창립총회 학술대회에서 이미 발표된 글), 특집 2(2007 개정 교육과정과 교과서 편찬 및 검정)로 구성되는데, 특집 2에 실을 원고를 쓸 사람이 우리나라를 샅샅이 뒤져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 고명한 학자, 교수, 관료들은 무슨 연구를 하고 있기에 교과서에 관한 글 한 편 쓸 사람이 없어 편집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하겠습니까. 학회 저널이므로 원고는 당연히 원고 작성요령을 준수하여 작성해야 하며, 편집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게 되는데, 학위도 없는 제가 무슨 수로 그런 원고를 작성하겠습니까.

저는 원고 작성요령을 준수할 수 없으며, 편집위원들이 내 글을 심사하지 않고 실을 수 있다면 원고를 주겠다고 할 작정입니다. 그 학회의 저널이 권위를 지켜야 한다면 저에게도 그만큼의 자존심이 있으며 저의 그 자존심도 지켜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저는 굳이 제 글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추석 연휴가 되었으니 며칠 후 그런 절차를 거친 후 제가 쓴 글을 이 블로그에 그 글을 먼저 올리겠습니다. 우선, 최근에 교과서에 관한 제 생각을 쓴 글이 있기에 그 글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 8월 20일경, 읽는 사람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경기신문 시론에 실은 짤막한 글입니다. 그 신문에서는 원고료는 주지 않고 신문을 보내주는데, 이제 저는 남양주 오남읍이라는 시골에서 근무하므로 신문배달도 되지 않아서 제 글이 어느 날짜 신문에 실리는지도 모르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교육혁신 방향정립을 위한 논의

 

 

 

 

지난 28일, 우리 정부가 제7차 교육과정을 수정 보완한 ‘2007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한데 이어 일본의 중앙교육심의회(문부과학성 자문기관)는 지난 8월 17일에 이르러 학력신장과 공교육 개조를 핵심으로 하는 새 ‘학습지도요령(일본의 교육과정기준)’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일본과 우리는 교육과정 개정에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상호간의 경쟁과 발전의 계기가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 편찬에 있어서는, 일본은 학습지도요령 개정시기와 무관하게 학년별 4년 주기로 검정하는데 비해 우리는 수시-부분 개편체제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지난 6월 20일에 초‧중등학교 교과용도서의 국정․검인정 구분 고시를 단행하고 2012년까지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이번에도 일시-전면 개편을 하게 되었다. 다만, 초등학교 일부 교과와 중등학교 국어, 도덕, 국사 등 일부 교과서까지 국정을 검정으로 바꾼 것을 달라진 점으로 내세울 수 있을 뿐이므로 과연 교육 현장의 개선을 유도하는 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여러 나라 교과서들을 비교해보면 각각 그 나라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미국 교과서는 내용이 구체적이고 크기도 대규모여서 학생들이 휴대하거나 다 읽고 외우기는 불가능할 것이 당연해보이고, 일본은 비교적 얇지만 아주 정교하고 빈틈이 보이지 않으며, 중동의 교과서는 편집은 단순하지만 재질이 좋고 화려해 보인다.

한편, 이들 교과서와 나란히 놓인 우리 교과서는 다양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어딘지 모르게 획일적,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교육과정․교과서 제도가 중앙집권형인 나라는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교과서가 교육의 실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며, 교육부 스스로 ‘교과서는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교수‧학습자료일 뿐’이라는 걸 아무리 강조해도 그러한 선언을 그대로 믿는 국민은 거의 없고 교과서를 소중한 원전(原典)으로 생각하고 천자문 외우듯 그 내용을 잘 암기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인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우리 교육의 특징이자 맹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식기반사회가 무르익고 지식의 획득은 암기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지 오래 되었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 교육 현장은 그대로이므로 우리 교육을 ‘붕어빵 교육’이라고 비웃는데도 우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이번에는 지식전달형 교과서를 탈피하여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유도하는 교과서, 참고서가 필요 없는 탐구형 교과서,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교과서를 만들자”고 주장하지만, 매번 그 방향설정은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책의 크기, 지질, 색도 등 그 외형체제는 발전했지만, 그것은 형식일 뿐이고 실제로는 학생들이 잘 읽고 암기하면 그만인 교과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가 되고 있으므로, 이론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사고력과 창의력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을 얼마든지 인정하면서 실제로는 교과서의 내용을 잘 암기하면 시험을 잘 보고 좋은 성적을 얻는 이원적인 구조의 질곡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교과서의 내용대로만 배우면 그만이며, 교과서 밖의 것은 배울 필요도 없고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는 교육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하여 “그럼에도 학생들은 잘 배워서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교육의 결과가 아직은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병폐는 분명히 곧 드러날 것이며, 그날 우리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학자나 교원들은 또 학생들이 읽고 암기해야 할 내용을 담은 교과서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힘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지식의 전달․암기 교육은 그 뿌리가 견고하여 어느 한 부분을 고친다고 해결될 수 없고 교육의 전체구조를 바꾸어야 해결될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나 교육혁신위원회와 같이 그렇게 답습되는 폐단을 개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기관은 다른 일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의 교원들이나 교육행정가들이 주변적인 일, 지엽적인 일에 매달리게 하는 것이 조직을 관리․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착안하고 있거나 우리 교육을 혁신할 수 있는 지름길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도 못하는 것은 아니라면, 교육의 본질추구는 투자와 노력에 비해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