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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국가교육과정정책에 관한 획기적 담론의 필요성(경기신문 0705)

by 답설재 2007. 9. 20.

 

 

 

국가교육과정정책에 관한 획기적 담론의 필요성

 

 

 

  대입제도에서 이른바 ‘3불정책’이란 고교등급제, 대학별 본고사, 기여입학제 등 세 가지는 교육적으로 불가하다는 입장을 말한다. 이와 함께 또 한 가지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는 것이 '고교평준화정책'이다.

  고교입학시험을 각 학교별로 치르지 않고 학군별로 학생들이 입학할 학교를 일괄 배정하는 평준화정책에 대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어보면 각 주장의 당위성을 인정할 수 있는 반면 상대방의 주장을 들어보면 유지나 폐지나 각각 장단점을 갖고 있어서 바꾸거나 바꾸지 않거나 문제점은 있고, 그 문제점들을 해결하기도 어렵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고교등급제 역시 유사할 것이다.

 

  그냥 두자고 하거나 바꾸자고 하거나 상대측이 보기에 원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며, 그 원망스런 눈으로 보면 "다같이 망하자는 거냐? 나만이라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 혹은 "너만 잘살겠다는 거냐? 나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는 싸움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따져보면 전국 어느 학교에서나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그 조건을 평준화해주자는 취지의 정책이었으나 어느새 쟁점은 성적평준화에 귀착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각 주장의 장단점이 다 드러난 상황에서도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 같고 ‘어느 주장에 힘이 있는가?’로 유지 혹은 변경이 결정될 것 같은 느낌까지 주고 있다.

 

  제7차 교육과정에 따른 ‘수준별 교육’도 이러한 관점으로 검토할 수 있다. 그 전에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이름난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의도의 우열반 편성이 성행했으나, 이제 모든 학생의 개성과 능력, 성취도, 희망 등을 고려하여 수준별 교육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견해에 따라 반 편성 주기나 방법, 교재, 평가 등에서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열반 편성 아니냐!’고 의심받는 수준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바로 그 의심 때문에 수준별 교육 또한 실시, 반대의 주장이 맞서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또한 어느 주장도 완벽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양쪽 주장을 들어보면 어떤 선택을 하든 장단점이 있어 선뜻 바꾸자는 주장을 수용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시원한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육을 혁신하자면 이제 다른 곳에서 방안을 찾아야 하며, 이미 고착된 듯한 인상을 주는 부분에서 정책수립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그 예가 학년별․교과별 ‘연간최소이수시간’이라는 기준을 없애거나 낮추는 방안이다. ‘연간최소이수시간’이란 전국의 어느 학교에서나 특정 교과목에 대해 연간 몇 시간을 가르쳐야 한다는 기준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제대로 가르치거나말거나, 제대로 배우거나말거나 일정 시간만 채우면 만족한다는 뜻이 된다.

  교육과정기준은 나라마다 달라서 당연히 각양각색이겠지만 어떤 나라는 시간기준을 정하여 따르게 하기보다 각 교과목에서 가르쳐야 할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여 그 기준에 따라 철저히 가르치고 평가하는 데 힘쓰고, 수능과 같은 국가고사도 그 기준에 따라 실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시간기준을 당장 허물기가 어렵다면 먼저 현행 기준에 대해 대략 70%의 시간만 국가에서 정하고 교육내용도 조정해주면, 그 시간에 충분히 배운 학생들은 나머지 시간에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고, 충분하지 못한 학생들은 그 시간에 필수적인 내용을 한번 더 배우거나 다른 방법으로 배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왜 경제(신용, 금융)교육, 영재교육, 창의성교육이 이처럼 미흡하냐?”는 주장이 타당하다면 이 여유시간을 이용하여 그러한 요구를 다양하게 수용하고 충족시킬 수도 있다.

 

  교육과정이란 교육목표와 내용, 교육방법, 평가방법 등으로 구성되며, 국가는 이 중 어떠한 요인을 비중 높게 관리하고 현장교원에게는 어떠한 요인에 대해 자율재량권을 더 주느냐에 따라 학교교육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교육방법 중 시간수에 너무 높은 비중을 두고 있으므로 하루빨리 이 후진적 체제를 고쳐 교육과정정책을 핵심에 두고 여러 가지 정책이나 제도를 바로잡아나가는 날이 와야 한다.

  풀어야 할 과제는 많고 그 과제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문제해결의 본질은 생각하지 않고 왜 그렇게 생각이 짧으냐고 서로 원망만 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