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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학생들의 애만 태우는 독서교육(경기신문 0707)

by 답설재 2007. 9. 19.

우리나라 독서교육은 초․중등의 경우 대체로 시책에 의해 이루어진다. 관련 시책이 나오거나 ‘독서의날’ ‘독서주간’이 되면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 싶을 정도로 “학교 도서실을 저 상태로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의 독서량은 너무 적다!”고 외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는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시책에 의한 독서교육은 성인중심의 독서교육이다. 학생들이 읽고 싶거나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읽으라고 해야 읽을 수 있는 그런 독서교육이다.

교육부나 교육청이든 각 학교든 시책을 내는 측의 결정에 따라, 때로는 읽어야 하지만 평소에 책을 읽으면 교사나 부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독서교육이다. 가령 ‘1인당 100권 읽기’나 ‘아침에 10분씩 책 읽기’라는 시책이 나오면 부랴부랴 책을 찾아 읽어야 하고 그럴 때는 독서가 중요한 목표가 되어 안심하고 읽을 수 있지만, 평소에는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책이나 읽어?” “그러면서 공부는 언제 하나!”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 독서교육이다.

 

시책에 의한 독서교육에 의하면 학습에 유용한 책, 재미있는 책을 ‘잘 읽기’보다는 ‘독서기록장’ 같은 것에 제목과 줄거리 몇 줄, 혹은 짤막한 독후감을 쓰고, 그 내용과 관련된 무슨 만화 따위를 그리거나 교사가 정해주는 부분까지 읽고 나머지 부분을 억지로 지어내어 이야기해 보게 하는 등 독서 자체보다 부수적 활동들을 하는 데 목적을 둔다.

또 밝은 곳에서 책과 눈과의 거리가 30센티미터는 되어야 한다는 등 독서방법, 독서환경부터 강조하는 독서교육으로, 그것을 강조하는 문서들의 기세(氣勢)가 어떤가 하면 책상 앞에 똑바로 앉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도, 혹은 읽어봤자 별 수 없다는 투다.

이러한 내용들이 다 부질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독서의 목표와 내용부터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 하면 으레 방법과 여건부터 챙겨왔기 때문에 결국은 도저히 성공할 수 없는 독서교육이 되풀이되었다는 뜻이다.

 

독서교육을 제대로 하자면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왜 책만 읽느냐?"는 어처구니없는 꾸지람을 듣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공부를 한다’는 말이 대체로 ‘독서를 한다’는 뜻이 되어야 하고, 최소한 ‘독서를 하면 성적이 올라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독서교육은 바로 교육과정에 의한 독서교육이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라 추천하는 도서는 ‘필독도서’가 되고, 그 외에 더 읽으면 좋은 도서는 ‘권장도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필독도서는 ‘국어과’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 수학, 과학, 영어, 체육, 음악, 미술, 기술‧가정 등 모든 교과에서 제시되어야 하며, 그 교과들의 담당교사가 모두 독서지도 교사가 되어야 한다.

국사를 예로 들면 우선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난중일기’ ‘징비록’ 같은 책들이 필독도서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책들의 원본이 국보라는 것은 가르치면서 정작 그 내용은 가르칠 필요가 없는 교육을 해왔다.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이순신 장군의 행적이나 당시의 인물들, 전황은 물론 장군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이 잘 표현되어 있으므로 이런 책을 읽게 하면 인성교육이니 효성이니 말로만 강조하는 교육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교육계획의 필독도서목록은 학년별로 각각 10권씩이나 20권씩이 아니고 1학년은 13권, 2학년은 17권, 3학년은 22권 등 교육과정 분석결과에 따라 책 수가 결정되는 것이 당연하며, 이 책들은 학교예산으로 우선 구입하여 필요할 때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 독서결과는 제대로 평가되고 성적에 반영되어야 하므로 그 내용에서도 평가문항이 출제되어야 한다.

 

독서교육을 제대로 하자면 교사 개개인의 실천을 기대하기에 앞서 범국가적으로, 적어도 교육청 수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시‧도 교육청에서 할 일을 나타낸 지침에 ‘도서목록 작성‧활용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교육청에서는 학교급별 도서목록을 제시하고 있으나 ‘교육과정지침’에 제시된 독서교육 관련 사항을 살펴보면 대부분 그동안 답습해온 독서교육시책을 나열하고 있으므로 결국 여전히 전통적인 독서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독서교육은 단순한 시책으로 성공할 수 없다. 단순한 시책으로는 독서교육이 생색내기, 구색 맞추기 독서지도 행사로 전락하게 되고, 그러면 학생들을 감질나게 하는 실패한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독서교육이 교육과정과 별도로 강조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독서교육은 교육과정 운영의 핵심사항으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