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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당연히 실시되어야 하는 전국 학력평가(경기신문070927)

by 답설재 2007. 10. 10.

 

 

  경기신문에서는 이 원고를 '목표중심의 교육행정 절실하다'라는 제목으로 실었습니다. 그건 데스크의 권한이어서 때로는 저널리스트의 번쩍이는 감각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독단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지난 5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협의회 간담회에서 내년부터 중학교 전 학년을 대상으로 연간 2회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데 대해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점수 공개 등으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결론이 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면 그것은 교육의 본질에 대한 우리 교육계의 무관심을 반영하는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이로써 그 계획이 유야무야되고 만다면 교육부로서는 학생평가에 관한 논리의 일관성을 잃고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부에서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나 각 학교별 교육과정을 평가할 권리는 시‧도교육감에 있다”면서도(그 권리는 당연히 교육부장관에게도 있다. 교육부는 그걸 모를지도 모른다) “개인별 총점 등 학생들의 점수가 공개될 경우 교육현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등 문제점을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각 시‧도교육감이 학생들의 점수를 공개할 경우 교육현장은 혼란에 빠지게 되므로 교육부로서는 각 시‧도교육감의 권한사항이라 하더라도 이 학업성취도평가를 허용할 수 없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가 평가 실시상의 유의점 수준이라면 아마 기사거리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업성취도평가가 왜 필요한가부터 따져보아야 한다. 현재의 학력관리에 개선의 필요성이 없다면 교육감들이 굳이 학력평가계획을 발표할리도 없었겠지만, 그 시책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현장에 그만한 영향을 미쳐야 그 취지가 반영될 수 있을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만약 평가의 본질에 어긋나는 공개나 발표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실시상의 유의점으로 제시되고 각 교육청에서는 그 유의점을 잘 지키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보다는 교육부 스스로 마련하여 발표한 준엄한 ‘선언’이 있다. 그것은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이며, 전국의 어느 학교, 어느 학년, 어느 교과에서나 공통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이 기준에 들어 있는 지침이다. ‘고시’로 발표되는 교육과정기준을 교육부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교육현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제도나 시책 중 가장 기본적․핵심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교육과정이야말로 학교를 설립 운영하는 이유가 되므로 이보다 더 중요한 지침이나 시책이 있을 수가 없고, 교원문제나 시설‧설비, 행‧재정문제 등 다른 모든 것들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지원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과정의 지침은 ‘평가와 질 관리’라는 항목에서 당연히 평가에 관한 사항도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국가에서는 주기적으로 학력평가, 학교와 교육기관 평가, 교육과정 자체에 관한 평가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으며, 학교에서 평가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서 학교현장에 제공해 주도록 되어 있다.

  현재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교육청 평가나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교평가에서는 정작 ‘교육과정 운영’에 대해서는 매우 소홀히 취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이처럼 학교와 교육기관 평가에 대해서도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번에 문제가 된 전국적인 학업성취도평가에 관해서도 ‘교과별, 학년별 학생평가를 실시하고, 평가결과는 교육과정의 적절성 확보와 그 개선에 활용한다’고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지침이 제시하는 방법과 목적에 따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실시하면 되는 것이다.

  교육과정의 원리에 따르면 전국적인 학력평가를 실시해야 하는 또 하나의 논리가 있다. 우리나라 교육행정은 국가가 나서서 교사와 학생들이 교육과정에 제시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확인하기보다는 어떤 내용(각 교과의 교과서)을 몇 시간이나 가르치고 배웠는가를 따져서 진급시키고 졸업시키는 데 만족하는 후진적 형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본질을 소홀히 하고 있으므로 대학입학전형에서도 내신을 얼마나 반영할까를 놓고 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러한 싸움에 학생들조차 분통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간단하고 분명하다. 교육부에서는 지금부터라도 목표, 내용, 방법, 평가 등 교육과정을 이루는 요소 중에서 주로 목표를 중시하는 정책과 시책에 중점을 두어 판단하는 행정을 하면 된다.

  교육감들이 전국적인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한 것은 교육과정에 제시된 지침을 잘 준수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그걸 못하게 하면 교육부 스스로 교육과정의 지침을 무시하겠다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