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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멋진 행정의 포기 (경기신문071107)

by 답설재 2007. 11. 7.

교육부가 공개한 최근의 감사현황에 의하면, 올 상반기 서울의 촌지 및 금품․향응 수수 적발 건수는 3건이었고 불법 찬조금 사례는 16건이었다. 이에 대해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는 지난 10월 21일 “청렴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촌지수수 및 불법 찬조금 관련 징계 기준을 강화”하기로 하고, “학부모회 등이 불법 찬조금으로 학생들에게 간식을 제공하거나 각종 학교행사를 지원할 경우, 금품․향응 수수 행위 징계처리기준에 따라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또한 직무 관련 업체로부터 금품․향응을 수수하는 교사 역시 전문직 전출 및 승진, 서훈 추천, 성과상여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고 교장은 중임에서 배제되며, “일선 학교에서 촌지문화를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학부모가 교사에게 촌지 등을 주면 교사를 엄중 징계할 뿐만 아니라 해당 학생은 성적우수상 등을 제외한 모범상, 표창장 등 각종 교내외 포상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촌지문제가 발생할 경우 ‘국가공무원법’의 청렴 조항에 근거를 두고 촌지 액수가 200만 원 이상일 경우에만 고발조치해 온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지난해 국가청렴위원회가 시행한 국가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 16시․도 교육청 중 ‘꼴찌’를 기록하자 이와 같은 계획을 세우고, ‘교육과시민사회’ ‘뉴라이트학부모연합’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학교를사랑하는모임’ 등 4개 교육․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이러한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는 것이 여러 언론매체의 보도를 종합한 결과이다.

 

이러한 발표에 대해 당연한 듯 관련 단체의 논평이 이어졌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촌지는 부모의 그릇된 교육관과 교사의 윤리의식 부족에 따른 것으로 학생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일 뿐만 아니라 “불법 찬조금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만큼 금품수수로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했고, 한국교육신문 등에 보도된 교사와 학부모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앞장서야 할 교육청이 이해할 수 없는 행정을 하고 있다.”며 비교육적인 처사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책 발표와 논평을 보면서, 과연 이번의 그 발표나 논평이 교육의 본질을 염두에 둔 것인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는 이제 교원들을 상대로 설득하고 지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없고 다만 문제를 일으킬 경우 다시는 씻을 수 없는 엄한 벌을 주겠다는 의지만 표명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우며, 논평을 낸 단체나 학부모, 교사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촌지문제는 사라질 수 없다’는 관점을 전제한 비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가지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이와 유사한 시책을 마련하여 실시한 다양한 사례를 보아왔다. 그러나 그 효과가 교원들의 자정운동이나 교원들 스스로 그 자부심과 긍지를 지켜나가려는 노력에 비하여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는지, 또한 그러한 방법으로 교육행정을 하는 것이 과연 교육의 본질에 비추어 어울리는 것인지 근본부터 재검토할 필요는 없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학교에서 그런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한다면, 학생들이 학생답지 못한 행위를 할 경우 관련되는 모든 사람을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겠다고 한다면, 과연 그러한 학교가 인간으로서의 교양을 높이려는 학교교육 본래의 취지에 맞는다는 것을 설명할 수가 있겠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으며, 그런 뜻에서 학교를 지도하고 지원하는 교육행정기관이 그런 방법으로밖에 교원들을 지도할 수 없는지 한탄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워도 교육의 본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잃는 것이고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자로서의 권위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호소하는 행정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의 발표 내용처럼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의 발생을 원천봉쇄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면 누가 교육과 교육행정을 다른 무엇보다 어렵다고 하겠는가.

 

지난 가을 어느 학교에서는 “우리 학교는 일체의 발전기금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운동회 프로그램에까지 넣었고, 아이를 전학시키면서 “이제 전학을 가니까 돈 좀 내고 가도 괜찮겠지요?”하고 묻는 학부모도 있다. 이와 같은 사례처럼 그런 문제라면 얼어붙은 학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을 찾아갈 때는 으레 간식거리를 준비하는 일본의 학교방문문화, 20달러 이내의 선물을 가지고 당당하게 학교를 찾는 미국의 사례를 도입하면 우리 교원들도 학부모들도 모두 좋아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