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2008년 새해 인사

by 답설재 2008. 1. 16.

 

 

행복에 있어서 수수께끼란 없다.

불행한 이들은 모두 똑같다. 오래전부터 그들을 괴롭혀온 상처와 거절된 소원, 자존심을 짓밟힌 마음의 상처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경멸로 인해, 더 심각하게는 무관심으로 인해 꺼져버린 사랑의 재가 되어 불행한 이들에게 달라붙어 있다. 아니, 그들이 이런 것들에 달라붙어 있다. 그리하여 불행한 이들은 수의처럼 자신들을 감싸는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행복한 이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앞을 바라보지도 않고, 다만 현재를 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곤란한 점이 있다. 현재가 결코 가져다주지 않는 게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의미다. 행복해지는 방법과 의미를 얻는 방법은 다르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순간을 살아야 한다. 단지 순간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의미를, 꿈과 비밀과 인생에 대한 의미를 얻고 싶다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과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며, 아무리 불확실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연은 행복과 의미를 우리 앞에 대롱대롱 흔들어대며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다그친다.

나는 언제나 의미를 선택해왔다. 그렇기에 나는 1909년 8월 29일, 일요일 저녁의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호보켄 항구의 군중 틈에 끼어 북독일 로이드 증기선 조지 워싱턴 호가 도락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소설 『살인의 해석』(제드 러벤펠드, 박현주 옮김, 2007, 비채)은 이렇게 주인공이 “나는 언제나 의미를 선택해왔다”고 언급하며 시작됩니다.

 

1909년 8월 어느 날,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제자 카를 융과 함께 미국 클라크 대학의 초청을 받아 뉴욕에 갔습니다. 당시 뉴욕은 인간의 욕망을 닮은 마천루들이 경쟁적으로 세워지고 있었는데, 어느 고층 빌딩에서 천사 같은 미모의 여성이 살해되고, 프로이트는 제자 영거에게 피해자의 정신을 분석하게 함으로써 범죄의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는 고급스런 소재의 성인용 추리소설입니다. 500페이지가 넘어서 흥미와 속독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부지런히 읽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면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내십시오”하거나 “올해엔 부디 삶의 의미를 찾으십시오”하지는 않고 대체로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인사합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제드 러벤펠드는 행복에 있어서 수수께끼가 없다고 했습니다. 행복한 이는 뒤돌아보지 않으며 앞을 바라보지도 않고 다만 현재를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행복한 것일까요? 정말로 그럴까요? 삶의 의미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그 ‘행복’이라는 것과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인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나를, 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그‘행복’과 ‘삶의 의미’에 대한 ‘의미’도 모른 채 그냥 새해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용인 성복초등학교 아이들, 그 아이들이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요? 만약 그 뜻을 모르면서도 와서 읽고 있다면 나로서는 더 고마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책을 참 많이 읽는, 언제나 그 분위기가 조용한, 가야금도 배우고 태권도도 배우고 인터넷 까페도 운영하고 내게 인디언의 영혼을 흉내 내어 ‘거친 바다를 지키는 등대’라는 닉네임을 붙여준 '생각하는 자작나무' white 선우성윤,

101번째 ‘파란편지’를 기대한다고 한 박종윤,

그리움을 전해준 서영진,

그 학교를 떠나오는 날 눈물을 보이기 싫어 시선을 돌렸다는, 내가 이제 남양주양지초등학교 교장이라는 걸 생각하면 억울하고 안타깝고 분하다는, 졸업장이라도 나에게서 받고 싶다는, 청심국제중학교에 가고 싶다는 이승은,

전교생이 나를 그리워한다는 과감한 표현을 하며 내가 그리워 이 블로그에 들어온다는 ‘아싸’ 이수빈(가야금 연주는 여전하니?),

언젠가 내게 꽃다발을 준 일을 그리워한 손승재,

‘파란편지’가 다시 보고 싶어서 온다는 김정연최수연․최수희 자매, 손하예린,

그 아이들을 생각합니다.

 

이곳 남양주양지초등학교 이윤지․이범수 남매,

엄마의 고향이 상주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한 박아영.

이 아이들도 신기합니다.

 

잊을 수 없는 유종분 교감선생님,

예술추구님,

작은소년님,

이 블로그를 만들어준 이선주 선생님.

 

대전 샘머리초등학교 노경미 선생님(그날 대전역에서 마신 커피가 참 좋았습니다),

서울대학교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최윤정 음악선생님,

1999년도 2학기 6개월 간 영등포 영신초등학교 교감이었을 때 중초교사로 오셔서 만난 신미선 선생님,

이곳 남양주 호평초등학교 연수회장에서 뵙고 ‘교육이 나라를 바꾼다’는 믿음을 함께하게 된 최완근 선생님,

홈페이지 ‘원옥진의아이사랑’을 운영하시는 우리 학교 원옥진 선생님.

경기도교육위원회 이재삼 위원님(‘天地無劃’을 쓴 박재삼 시인을 생각나게 하여 더욱 정감이 가는).

언제나 ‘햇살’이라는 닉네임처럼 싱그럽게 오시는 충청남도 당진교육청 김희숙 장학사님(현장의 선생님들께도 그렇게 다가가시겠지요),

올해 고3이 되는 아드님, 중1이 되는 따님을 두시고 현실적인 교육문제를 따뜻하게 의논해 주시는 대전의 비둘기님(두 자녀가 잘 성장해가기를 기원합니다),

함께 있을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하게 해드려 미안한 교육부의 애거시님.

‘파란편지’가 힘이 되었다는 설리번님,

수호천사처럼 곁에서 일일이 지켜보고 격려해주시는 태권소녀님,

때로는 무거워지는 제 어깨를 걱정해주시는 카프리님,

아드님이 사범대학에 갈 오리아빠님,

멋진 쌍둥맘 2000TWINS 신성애님,

짧은 기간이지만 그 변화를 이야기해 주신 김남희님.

블로그 ‘난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모른다’를 운영하시는 아기공룡둘째님,

기다려도 연락 없어 섭섭했던 hoon5276님.

언제나 나를 걱정해주는 사랑하는 제자 seny 노미리, 용설란 이정현.

 

내게는 오신 손님의 숫자 외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지만 늘 찾아왔다 가시는 이름 모를 여러 분,

해외에서 이 먼 골짜기를 찾아오시는 분.

나는 여러분을 좋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만약 ‘행복’도 필요하고 ‘삶의 의미’를 얻는 것도 필요하다면, ‘행복해지는 방법’과 ‘의미를 얻는 방법’이 서로 달라서 자연이 ‘행복과 의미를 우리 앞에 대롱대롱 흔들어대며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다그치더라도’ 성급하게 선택하지 마시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아실현’과 같은 논리를 내세워서 가능하면 행복과 삶의 의미 두 가지를 모두 가지십시오.

 

내가 가진 것이 얼마 만큼인지도 모르겠고 나를 찾아주시는 여러분이 여러 분이어서 얼마씩 돌아갈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여러분께 내가 가진 그 복과 삶의 의미를 모두 꺼내어 조금씩이라도 다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다 나누어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초청하여 조촐하나 따뜻한 식사도 하고 돌아가시는 길에 조금씩이라도 그 복과 삶의 의미가 담긴 선물상자를 나누어드릴 수 있다면 참 좋은 ‘잔치’가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