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내다보면 주변에 이런저런 물건이 쌓이게 됩니다. 연구보고서나 단행본, 월간지 같은 자료가 대부분이지만 필통이나 필기구, 책갈피, 명함 통, 신문기사 스크랩 등 잡다한 물건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물건들을 잘 모으는 편이었습니다. 심지어 우편물이나 그 우편물의 봉투까지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모아온 책을 ‘왕창’ 버리는 경험을 한 뒤로는 사소한(책에 비하면) 물건들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는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만큼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았고, ‘아하, 그게 바로 물욕이었구나’ 싶기도 해서 스스로 제법 어른스러워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남들이 들으면 어쭙잖다고 하겠지만 이러면서 생에 대한 아집과 집착을 버리고 어느 날 좀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승을 떠날 수 있게 되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처럼 물건에 대한 애착심의 강도를 조금이라도 낮춘 것은, 사실은 그 집착을 완전히 떨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바로 책에 대한 집착의 강도를 이만큼으로라도 낮추지 않을 수 없었던 상실감이 대단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물건 중에서 남의 눈에 드러나는 쉬운 한 가지가 바로 집이나 사무실의 화분일 것입니다. 남의 사무실을 방문해보면 이게 온실인가, 화분 전시장인가 싶을 정도로 -자랑일까요, 취미일까요- 온통 전 공간에 화분을 배치해두고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푸나무라는 것이 특히 화분에 옮겨 심으면 각각 저만의 성격을 가지게 되어 어떤 것은 물이나 거름을 자주 주어야 하고, 어떤 것은 한 달에 한 번 잊지 않고 물을 주어도 충분한 것이 있어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닙니다. 그래서 화분이 많은 집에 가보면 가족 중에 분명 꼼꼼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나도 이곳저곳 옮겨 살면서 십 여 개씩의 화분을 관리하며 살았는데,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우선 웬만한 식물은 차츰 1주일에 한번 일요일 오전에 대충 물을 뿌려주는 내 습관에 그것들이 스스로 제 성격을 맞추어 주더라는 것입니다. 화원에서 가져올 때는 이건 매일, 이건 1주일, 이건 한 달에 한 번 정도 등으로 제각기 그 성격을 자랑하거나 고집하지만 나에게 맡겨진 후에는 차츰 그 특성을 버려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가령 비교적 잘 자라는 벤자민 같은 식물은 '저 가지가 내 책상 위로 늘어지면 내가 이렇게 앉아서 책을 보는 모습이 참 그럴듯해보이겠구나' 싶어 하면 곧 다른 가지보다 먼저 그 가지를 쭉 벋어 내가 바란 대로 해주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벋은 가지를 남에게 자랑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한 현상들이 과학적으로 이치에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비과학적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내 생각이 바로 물건에 대한 집착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사를 다니면서도 데리고 다닌 화분 중에는 수령이 이십여 년은 되는 동백(冬柏)도 있습니다. 벌레도 꾀지 않고 물만 주면 그 가지가 쭉쭉 벋어나는 편이어서 1년에 한두 번 꼭 전지를 해주어야 할 정도이므로 -사실은 전지가 아니라 무성한 줄기 뭉텅뭉텅 잘라내기였지만- 화분을 잘 관리한다는 칭찬을 듣기도 좋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아내가 좋아하는 화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이곳으로 이사 와서는 좁아터지는 베란다에 화단을 꾸미게 되었고 화분에서 지내던 그 동백도 꺼내어 함께 심게 되었는데, 일을 맡은 사람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이놈은 잘 자라기는 하는데 우리 집에 온 그해 겨울에만 두어 송이 꽃을 보여주더니 이후로는 한 번도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동백은 새로 난 가지 끝에서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동백은 주인을 잘못 만나서 그동안 한 번도 꽃을 피울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겨울에는 스무 남은 개의 꽃망울을 맺게 되었고 정월이 되자마자 빨간색의 요염하고 탐스럽고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동백꽃은 바로 내 화단에 피었기 때문인지 그 빛깔이 너무도 곱습니다. 빨간 꽃잎과 노란 꽃술을 들여다보며 무엇이든 제대로 알아야 결실을 볼 수 있구나 하고 동백이 꽃피우는 이치를 알게 된 것이 흐뭇했고, 그 이치에 한 치도 어긋남 없는 개화(開花)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꽃을 보면서 아내에게 미국에서는 스승의 주간에 그 반의 모든 가정에서 딱 한 송이씩 정원의 꽃을 꺾어 대표 학부모에게 보내면 대표는 꽃바구니에 모아서 담임선생님께 드리는데, 우리 같으면 당장 어느 어머니가 나서서 “그런 꽃바구니라면 내가 맡아서 혼자 준비하겠다”고 할 것이라는 얘기도 해주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렇게 정성들여 가꾼 꽃송이를 모아 선물하는 값어치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화단에 나가 이 송이 저 송이 꽃송이들을 바라보다가 꽃송이도 아니고 가지를 조금만 건드렸는데도 그만 그 생생한 꽃 한 송이가 뚝 떨어지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땅에 떨어졌지만 그 꽃송이는 가지에 달린 요염한 모습의 꽃송이들과 다른 점이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꽃송이는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문득 나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어느 날, 꿈에 손가락 마디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소스라쳐 일어나던 어린 시절의 그 새벽이 떠올랐고, 이어서 소록도에서 서러운 생애를 보내며 서러운 시(詩)를 쓴 한아운 시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이 무너져 떨어지는 모습까지 시로 나타내었습니다. 얼른 거실로 들어와 그 시집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마 2/3 정도의 책을 버릴 때 그 시집도 포함된 것 같았습니다. 혹이나 싶어서 설날 연휴에 있을 만한 곳을 연거푸 서너 번은 더 살폈으나 이미 없어진 책이므로 나타날 리가 없었습니다. 다만, 떨어진 동백 꽃송이를 보고 손가락 마디가 무너져 떨어지는 느낌을 가지게 된 것도 다 내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또 하는 며칠을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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