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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1학년 학부모님께- 외손자의 입학을 지켜보며

by 답설재 2008. 3. 3.

저에게는 둘째딸이 낳아준 외손자가 있습니다. 그 애도 오늘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제 부모와 있을 때는 '그놈의' 잔소리 때문인지 제법 말도 잘 듣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하다가도 제게만 오면 그만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맙니다. 우선 우리 내외에게는 존대어 반 반말 반이고, 도대체 스스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현관에서는 신발부터 벗겨주어야 하고, 옷도 벗겨주어야 하고, 밥도 먹여주어야 하고, 화장실도 동행해야 하고 -자다가는 페트병 자른 것이 그 애의 화장실입니다- 그 외의 모든 일도 그렇습니다. 하다못해 제 어미가 한마디만 하면 아무것도 살 수 없지만 저와 함께 가게에 가면 이것저것 꼭 사야하는 물건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어 그 애의 방은 크고 작은, 수많은 종류의 <공룡모형박물관>입니다.

 

그래도 제게는 이른바 '세상에 없는 아이'입니다. 아주 영리하고 예쁘기만 하고 사랑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제 어미는 "버릇없어진다"며 야단이지만 그 '버릇'이라는 건 제 부모 앞에서는 정말로 꼭 필요하지만, 제게는 당장은 필요 없는 것이어서 제가 떠나는 날 눈물 한번 흘려준다면 그로써 다 된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제 부모에게 버릇없이 굴지 않는 아이라면, 그 애는 외할아버지에게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쯤 번히 다 알고 있는 아이이며, 저 또한 그 애는 이 세상 어느 한 사람에게는 어리광을 부려보고 싶고 마음 놓고 대하고 싶을 뿐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리하고 예쁘고 사랑스런 그 애를, 제 어미는 참 여러 가지로 걱정하고 있습니다. 벌써 3, 4년 전에 수십 가지의 공룡 이름과 그 생몰 시기 같은 것을 다 외웠고 -사실은 그런 아이가 대부분이지만- 세계 여러 나라 국기도 다 기억하고, 만화책도 즐겨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미의 견해는 다릅니다. "아빠! 어떤 한 가지에만 그렇잖아요." 도대체 물건 구입에 대한 절제심도 전혀 없답니다. 또 있습니다. 때로 설쳐대는 걸 보면 이른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인 것이 분명하다면서 실제로 어느 상담센터에 가서 돈을 많이 주고 진단을 해보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 돈으로 서점에 가서 모자(母子)가 볼 책이나 많이 사라고 했지만 명색이 교장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제 고집대로 하고 말더니 이제야 "정상인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며칠 전부터는 아이가 입학하게 된 일을 가지고 걱정이 늘어지게 되었습니다. 담임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 교장에게 찾아가 아이에 대해 상담을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학교의 각종 학부모 단체에는 들어가는 것이 좋을까? 아파트 '아줌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입학 전에 아동도서를 1000권은 읽어야 한다는데 단 몇 권이나 제대로 읽혔나? 영어도 좀 배워서 입학해야 한다는데, 그건 어떻게 하나? 끝내 해결되지 않은 걱정거리는 수도 없이 많았고, 입학식 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심지어 입학식 날에는 가방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도 의문사항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제 둘째딸은, 초등학교도 정상적으로 다녔고, 심지어 대학교, 대학원까지 다 다녔습니다. 더구나 그 대학과 대학원은 서울에서도 명문이고, 그곳에서 중등교사자격증까지 받았으므로 '교육(敎育)'이라는 것에 대한 강의도 들을 만큼 들은 말하자면 '교육자(敎育者)'인 셈입니다. 실제로 연전(年前)에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다가 올해엔 그 아이를 보살필 사람이 없어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딸의 한없는 걱정을 들으며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입학식에서 그 '영리하고' '예쁘고' '사랑스런' 186명의 1학년 아이들을 맞이했습니다. 그 아이들의 부모도 사실은 모두 제 둘째딸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자신도 초등학교에 다녀보았고, 이야기도 수없이 들었고, 책이나 텔레비전에서도 많이 보았고, 어떤 이는 큰애가 이 학교의 몇 학년에 다니고 있어서 불과 몇 년 전에 잘 겪어보았고, 심지어 다른 학교의 교사생활을 하는 분이라 하더라도, 막상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아이를 입학시키게 되면 그만 문제가 달라집니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것이 실제로는 모두 허상(虛像 : 실제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 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것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걱정이고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 아이들을 직접 그 몸으로 낳으신 분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잘 가르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 186명의 '영리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소중한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인계받아 다섯 분의 담임선생님께 갈라 맡겼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내년 2월말까지 이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이 다섯 분의 선생님만큼 절실한 책임감과 기대감, 소망을 느낄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분들은 그분들이 맡은 아이들을 '무조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양지 교육가족에게는 그분들이 최고의 전문가(專門家)입니다. 혹 그들 전문가가 하는 일이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일 때는 거의 대부분 우리의 시각(視覺)이 내 아이만 바라보거나 그 배경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지 않았거나 우리가 지닌 평소의 교육적 견해가 좀 편협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실 때에는, 여러분은 언제라도 제게 찾아와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밤, 그들 다섯 분의 전문가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한없는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한 늘 건강하시고,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아무 일 없이 편안하여 오로지 아이들 교육을 위해 애쓰시고 연구하시는 나날을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학년 학부모님 여러분께서도 한결같은 마음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