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피그말리온의 아내가 된 여인

by 답설재 2008. 3. 21.

쟝레온 제롬(JeanLeonGerome. French, 1824-1904)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키프로스 섬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바보같이 여성에게는 결점이 너무 많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어느 여성도 그가 그리는 여성상을 보여주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마침내 그는 여성이라면 무조건 혐오하게 되어 한평생 독신으로 지낼 것을 결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상아로 아름다운 여성의 입상(立像)을 조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상형을 나타낸 조각품이었지요. 그 조각의 아름다움은 살아 있는 어떤 여성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군데도 나무랄 데가 없는 처녀상이었습니다. 그의 조각 기술은 그야말로 완벽해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이룬 것처럼 보일 정도였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작품에 감탄한 나머지 그만 그 여인상을 대상으로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때로는 그 입상이 살아 있는 것 같아서 몇 번이나 만져보며 확인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것이 상아로 만든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실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단순한 조각품에 지나지 않는지 믿어지지 않아서 그 여인상을 포옹하기도 하고, 처녀가 좋아할 만한 것들, 예를 들면 반짝이는 조개껍질이나 반들반들한 돌멩이, 귀엽고 작은 새, 갖가지 꽃, 구슬, 호박 같은 것들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그 손가락에 보석반지를 끼워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주목걸이, 귀걸이를 걸어주고 달아준 것도 물론입니다. 아름다운 여성은 어떤 옷을 입어도 아름답고, 젊은 여성은 아무거나 입어도 싱그러워 보이듯 그 입상은 벗고 있을 때처럼 옷을 입은 모습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티로스 지방에서 나는 염료로 물들인 소파에 그 입상을 누이고 그 여인상이 아내인 것처럼 “여보!” 하고 부르기도 했고, 그 입상의 머리에 부드러운 깃털로 만든 베개를 괴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녀가 그 부드러운 깃털을 마음껏 즐길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제전(祭典)'이 다가왔습니다. 이 여신은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로, 그녀가 키프로스 섬에 도착하자 계절의 여신들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 신들이 모여 있는 궁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여러 신들이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서로 아내로 삼으려고 했답니다. 그녀의 아버지 제우스는 천상의 명공(名工) 헤파이토스가 자신에게 '벼락'을 잘 만들어준 데 대한 보상으로 아프로디테와 결혼하게 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수놓은 띠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띠에는 상대방의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답니다. 사랑의 신 에로스(큐피트)는 바로 아프로디테의 아들입니다.

 

키포로스 섬에서는 아프로디테의 제전을 성대하게 거행했습니다. 제단에 연기를 피워 올리고 창공에 향내가 진동하는 속에서 희생물을 바쳤습니다. 피그말리온도 이 제전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마친 후에도 제단 앞을 떠나지 않고 서성거리다가 머뭇거리며 기원했습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여, 상아 처녀와 같은 여인을 제 아내가 되게 해주십시오."

 

사실은 피그말리온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저의 상아처녀를 제 아내로 맞이하게 해주십시오." 이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속마음을 다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표시로 제단의 불꽃을 세 번 세차게 솟아오르게 했습니다.

 

피그말리온은 그날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처녀상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상을 소파에 눕히고 다른 날보다 더 열렬한 키스를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입술에서 온기(溫氣)가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얼른 다시 입을 맞추며 그 여인상을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상아로 만든, 매끄럽지만 딱딱하던 여인상이 더없이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 '이럴 리가!?' 그는 얼른 손가락으로 그 여인상의 상아로 된 피부를 눌러보기도 했습니다. 딱딱하기만 했던 그 피부가 히메토스 산(産) 밀초처럼 쏙 쏙 들어갔습니다.

 

놀라워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기쁘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해서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손길로 끝없이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은 분명히 살아 있었습니다. 아프로디테의 숭배자 피그말리온은 그제야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그 여인에게 수많은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여인은 얼굴을 붉혔습니다. 수줍어하면서도 살며시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맺어준 이들의 결혼을 축복해 주었고, 그들 사이에 파포스라는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프로디테에게 봉헌(奉獻)된 키프로스 섬의 '파포스'라는 마을은 바로 그 아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랍니다.

 

제가 멋대로 번안(飜案)해본 이 신화(神話)는 여기까지인데(토머스 불핀치/한백우 옮김, 『그리스 로마 신화』, 홍신문화사, 1997,96~98), 안타까운 것은 피그말리온과 그 여인이 처음에 어떤 대화부터 나누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저는 살아 있는 여인이에요." 그랬을까요? 아니면 피그말리온이 "어? 이것 봐라! 살았나?" 그랬을까요? 저 같으면 그 신화에 꿈결같은, 아름다운, 연인 사이에나 나눌 만한 그런 부끄러운 대화도 좀 써넣었을 텐데요.

신화는 시시콜콜 자세한 것 같지만 사실은 언제나 우리가 상상력을 동원하도록 해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의 이 전설(신화)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실험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교육학자인 로젠탈(R.Rosenthal)과 제이콥슨(L.F.Jacobson)입니다. 그들은 1968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 650명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검사의 실제 점수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무작위로 20%의 학생을 뽑아 그 명단을 해당 학교의 교사들에게 전달하면서 '지적 능력이나 학업성취의 향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객관적으로 판명된 학생들'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물론, 교사와 학생들을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말이었습니다.

 

8개월 후에 이들은 다시 전체 학생들의 지능검사를 실시하여 처음 검사결과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놀라운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20%의 명단에 들어간 학생들은 다른(일반) 학생들보다 평균점수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성적도 크게 향상된 것입니다. 그것은, 명단을 받은 교사들이 이 아이들이 지적 발달과 학업성적이 향상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정성껏 돌보고 칭찬한 결과였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니까 공부하는 태도도 변하고 공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결국 그들의 능력까지 변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뭔가를 기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해도 마음으로 믿고 상대해줌으로써 그 상대를 자신의 기대대로 변하게 만드는 신기한 능력이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믿음, 기대, 예측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을 교육학자들은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합니다. 자기 충족적 예언,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주위의 예언이나 기대가 행위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어 결국 그렇게 행동하도록 해주는 효과를 말하는 것이지요. 칭찬, 격려, 신뢰, 인정, 애정, 사랑, 긍정, 확신, 믿음이 있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변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