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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학교의 '회의문화'

by 답설재 2008. 4. 12.

 

요즘 우리 교육계를 바라보는 시각 중의 한 가지가 '우리나라 교사에게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사들을 옹호하여 찬사를 들으려는 가벼운 입장에서의 방어논리를 펼쳐보겠다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도대체 우리에게 왜 경쟁력이 없게 되었는지, 그것부터 생각하면 아무래도 억울하다는 것이 나의 견해입니다.

 

'경쟁력'이라니요. 그 용어 자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로서는 우선, 우리에게 경쟁력이 없어지도록 한 제도와 문화가 원망스럽습니다. 그 주요 요인이 바로 문서상의 실적 위주로 평가를 하게 된 교육행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문서 중에서는 <학교교육과정>이 가장 중요한 문서인데도 오늘날 그것보다 중시되는 문서는 얼마든지 있으며, 그것조차 <학교교육과정>은 만드는 데 혈안이 될 뿐 그 이후의 실천이나 평가, 피드백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어떤 조직이 계획-실천-평가-피드백에 충실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우리의 학교에서 그 순환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교육행정이 <학교교육과정>에 큰 관심이 없고, 다른 문서에 매달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학교에서는 제대로 된 회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경향을 들 수 있습니다. 내가 하필 회의다운 회의를 하지 못하는 학교만 돌아다녔을까요? 회의라는 것이 공문서의 내용을 전달하거나 교장의 결재를 받은 문서를 배부하고 설명하거나 교감과 교장의 훈시를 듣는 것이라면 얼마나 초라하고 한심한 것입니까. 거꾸로 이야기하면, 교육청에서 오는 공문서가 지시, 명령이라고 본다면(사실은 교육에 관한 정보가 대부분이지만) 그 지시, 명령은 그대로 따르면 되는 것인데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회의를 하겠습니까?

 

우리 교육이 '진정성'을 회복하려면 우선 이 두 가지 문제에 천착해야 합니다.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오늘은 우선 선생님들께 나누어드린, 회의에 관한 나의 페이퍼를 보여드립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회의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종전의 프로그램을 답습하여 전혀 개선되지 않는 교육을 전개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경쟁력'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설사 회의다운 회의를 하지 않고도 개선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사 개인의 견해, 혹은 특히 교장의 독단과 교장의 깨달음에 의한 것일 테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왜 의사결정이 필요한가

 

 

 

□ “저 교장은 독단적이다.”

 ○ 어떠한 일에서도(‘교육’보다 하찮은 일에서도) 계획-실천-평가-환류의 순환과정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과정은 의사결정을 거치며 이루어져야 한다. 경험에 의하면 우리 교육과 교육행정은 기초․기본으로서의 이 시스템을 소홀히 하고 있다.

  (예) “저 교장은 독단적으로 결정한다. 우리의 의사가 반영될 여지가 없다.”

 

□ 구멍가게 아저씨는 혼자서 결정하고 시행하다가 문을 닫았다

 ○ 혼자 계획하여 시행되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 발전에 한계를 지닌다.

 ○ 독선적이다. 나보다 더 잘 알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지닌다. 다른 교육관을 무시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교장의 서명을 받으므로 교장을 독선자로 만들기도 한다.

 ○ 발전을 외면하고 답습하자는 것이다. 결국 남의 의견을 듣는 것이 귀찮다는 뜻이다.

 ○ 무턱대고 진행하는 곳에서는 계획-실천-평가가 이루어질 리가 없으므로 뒤처지거나 곧 망할 가능성이 있다.

 ○ 학교는 ‘주인아저씨’ 혼자 마음대로 문을 열고 닫는 구멍가게가 아니다.

 ○ 의사결정을 거치면 이해와 협력이 이루어지므로 효과적이고 마음도 편하다.

 

□ 여럿이 이룩한 70%가 혼자서 이룩한 100%보다 낫다

 ○ 찾아다니며 의견을 묻는 것은 강제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경우에 해당되기도 한다. 남의 의견을 들어보고 동의할 기회를 주지 않으므로 수준 낮은 의견을 듣게 된다.

 ○ 체면상 서명을 해야 하는 경우 그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결재’로 인정하기는 싫다.

 ○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는 일에 대해서는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 회의는 ‘발전’ ‘개선’ 등 긍정적인 의사에 의해 진행되므로 그 과정에 진정성이 있다.

 ○ 개인이 기안하고 교장이 서명한 계획을 통하여 독단적으로 지시․전달, 감독․감시해도 효과적일 수 있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독선적이라 해도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일시적일 뿐이다. 교장이 바뀌면 그만이다. 혼자서 이룩한 100%보다 여럿이 이룩한 70%가 더 긍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런 학교, 이런 회의

 ○ 우리 학교의 교육활동은 모든 교원, 모든 아이가 다 알아야 한다. 단 한 명을 선발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된 것을 누구나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 가령, 외부기관 제출용 서류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별도의 실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 1쪽에 요약된 문서가 보기에 좋다. 더 필요한 것들은 참고자료로 제시할 수 있다.

 ○ 너절하게 늘어놓지 말고 핵심에 대해 묻고 의견을 수렴하면 참석자들이 좋아한다.

 ○ 예정된 시간에 회의를 끝내는 건 사회자에게 유리하다. 참석자들도 이에 협력하는 것이 유리하다. 1시간이 넘으면 대개 싫어하고, 효과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