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달에 두어 번 교직원 정기회의를 개최합니다. 어제 회의에서는 ‘어린이날 기념 바른생활 어린이 표창건’도 의제가 되었습니다. 시상일, 대상, 방법 등을 이야기하고 한 반에 한 명씩 추천하자는 이야기로 끝날 무렵에 내가 나서서 “어떻게 한 반에 한 명씩이냐?”고 해서 2명 이내(0~2명)로 결정되었습니다. 사실은 그것도 그리 합리적인 결정은 아니지만 ‘담임들은 가능하면 많이 주려고 한다’는 논리도 있고 그 문제로 시간을 끄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100명이면 어떻습니까? 이른바 ‘공적조서’에 상을 주어야 하는 당위성이 드러나 있다면 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학교장의 경영관’ 서두에서 이런 이야기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보기에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획일적, 전체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저 현재의 일을 한 예로 들었을 뿐입니다. 또 교장이 학교의 이런 일 저런 일에 영향을 미치려들면 한이 없고 어영부영 지내면 있으나마나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나는 교육부에서 근무한지 6년 만에 교장자격연수를 받았습니다. 1999년 5월이었으니까 교사로 출발한지 꼭 30년 되던 해였습니다. 그때는 교과서를 편찬하는 일에 ‘미쳐서’ 당시 사회과학편수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해는 일이 많아 안 되겠으니 내년에 연수받게 해주십시오.” 그랬더니 그분은 ‘뭐 이런 게 있나?’ 하는 표정으로 “잔소리 말고 당장 가라. 일은 밤에 하든지 나중에 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서울교원연수원에 가서 1주간 사전연수를 받았는데 기억에 남는 일은 ‘교장이 되면 학교를 어떻게 경영하겠는지’ A4용지 한 장에 써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별 희한한 과제도 있다고 느꼈는데, 모두들 심각하게 받아들여 정성을 다해 써냈습니다.
그 사전연수 후에는 LG인화원이라는 곳에서 1주일, 한국교원대학교 종합교원연수원에서 3주일을 지냈습니다. ‘이런 연수 받으면 과연 훌륭한 교장 될까?’ 싶었던 한국교원대의 생활 중에서는 그곳 기숙사 생활만 떠오르지만, LG인화원의 1주일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6일간 민간업체 연수원의 별별 프로그램을 다 경험했습니다. 연수원 측에서는 우리의 활동을 일일이 비디오테이프에 담고 있었는데 몇 사람은 인터뷰도 했고, 나도 그 인터뷰를 했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해서 한 것이 아니라 조별로 한 명씩 참여하는 의무적인 것이었고, 나는 세계화니 뭐니 해서 시대가 변하므로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 것 같습니다.
마치는 날 프로그램 끝에 강당에 모여 그 비디오테이프를 보았습니다. 중간 중간 인터뷰 모습도 방영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인터뷰한 장면은 나오지 않아서 섭섭한 느낌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정말로 끝이구나.’ 싶은 장면에서 내 특유의 더듬거리는 모습이 나타나더니 이어서 ‘눈길을 걸을 때는 뒤따르는 사람이 그 발자국을 따라오게 되므로 조심하라’는,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암송했다는 그 한시(漢詩) 구절이 서서히 오르고 강당의 조명이 다 켜졌으므로 연수생들이 모두들 박수를 보냈습니다. 나는 그 박수소리가 마치 나를 향한 것 같아서 자칫하면 혼자 일어서서 인사를 할 뻔했습니다.
그때가 내가 ‘학교장 경영관’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학교장의 경영관이 어떤 것인지 사례를 보겠습니다.
<사례 1> 사랑․믿음․즐거움이 있는 가정처럼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 학생, 교원, 학부모가 사랑․믿음․즐거움을 가지고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최선을 다하도록 함께 생각하고 의논하며, 실천하고 베풀어 주는 지원자의 역할을 하며
- ‘꿈과 희망의 미래 지향적 교육’을 학교 경영의 목표로 삼고
- 교육과정 중심의 학교 경영으로 교육 본질에 충실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정보시대를 대비하여 새로운 학교 문화를 창조하며,
- 21세기 국가 경쟁력 향상에 필요한 자랑스런 한국인 육성이 궁극적 교육 목표임을 자각하여 최선을 다한다.
<사례 2>
투철한 교육관과 교직 사명감을 바탕으로 자율과 책임, 창의와 화합의 민주적인 학교 운영으로 조화된 학력을 증진하고 아동 개개인의 미래 지향적 잠재 가능성을 계발한다.
<사례 3>
7차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품성이 바르고 실력이 뛰어난 어린이를 기르기 위하여
첫째, 큰 꿈을 가진 어린이
둘째, 좋은 생각을 키우는 어린이
셋째, 새로운 도전을 추구하는 어린이를 교육목표로 하여
‘큰 꿈, 좋은 생각, 새로운 도전’ 정신으로 미래를 이끌어나갈 ○○ 어린이로 육성하고자 한다.
나는 이러한 경영관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표현이 어설픈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다 좋은 생각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에서 교장은 어떤 생각에 골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무엇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 것인지가 매우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학교에는 이것 말고도 학교교육목표라는 것이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 학교 교육목표를 보면, ○ 함께하는 생활이 즐거운 어린이, ○ 스스로 해결하는 실력 있는 어린이, ○ 새로운 생각으로 탐구하는 어린이, ○ 마음씨 곱고 몸이 튼튼한 어린이 등 네 가지입니다. 이 교육목표는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전국의 모든 학교에 당연한 듯 거의 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연한 듯’ 설정되어 있는 이 목표는 어떤 구실을 하는 걸까요? 혹 ‘선언’에 그치고 마는 건 아닐까요? 어떤 학교는 그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이 네댓 가지 목표와 연계지어 문서를 만드는데, 나로서는 그렇게 어려운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이유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 교과와 재량활동, 특별활동의 목표체계는 교육부에서 이미 정연하게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학교 교육목표가 필요 없는 것이므로 당신네 학교에서는 교육목표를 없앴나?” 하고 물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뭐 대단한 교육관을 가졌다고 그걸 덥석 없앴겠습니까? “귀교의 교육목표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을 때 답할 수 있기도 하고, 교사들이나 아이들이나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있다고 해서 크게 성가실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늘 궁금해 하며 실제로 지난해 10월 어느 날,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와카랑가WAKAARANGA 스쿨 젠킨Brent Jenkin 교장을 만났을 때는 그 학교의 목표 같은 걸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는 교사들이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가르치고, 아이들이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와카랑가 스쿨의 교육방침이라고 했습니다. 좀 싱거운 방침입니까? 그까짓 게 무슨 방침이 되나 싶습니까?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동안 좋은 말, 거창한 말에 너무 짙게 물들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요? 자, 이제 경영관에 대해 꼭 설명해야 한다면 그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장은 당연히 뚜렷한 경영관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하면 될까요?
내가 애매하다고 하는 것, 혼란을 느낀다고 하는 것에 대해 구체적, 논리적으로 이야기하기가 난처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오늘날에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장학방침이라는 것이 없어졌지만, 교육과정기준을 통해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교육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목표들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고, 시․도 교육청은 시․도 교육청대로, 지역교육청은 지역교육청대로 또 교육시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학교는 학교대로 또 시책이 될 만한 목표 같은 걸 정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 상․하위의 시책들을 일관하는 지표를 분명히 하고, 그러한 지표를 구현하고 달성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현장성 있는 목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만약 학교에서 제시하는목표 혹은 시책들이 상위시책과 어긋나거나 전혀 다른 것이라면 상위시책을 제시한 측에서는 매우 불쾌하고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혹은 교육청에서 가령 ‘국어순화교육의 철저’ 혹은 ‘국어순화교육의 강화’ ‘국어순화교육의 내면화’ 같은 목표, 시책들을 제시해야 하는 당위성 문제입니다. 국어교육 시간이 배정되고 있고 ‘국어과 교육과정’을 보면 좋은 목표들이 잘 제시되어 있는데도 별도의 시책을 제시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래야 한다면 도대체 우리는 몇 가지의 시책을 제시해야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제 하고 싶은 말을 ‘변명(辨明)’으로 제시하겠습니다. ‘학교는 왜,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육이 이렇게 해서 경쟁력이 있겠는가 하는 물음도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거나 중앙이든 지방이든 지도자가 바뀌면 학교를 보고 자꾸 이제는 잘 가르쳐라, 교육의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하므로 ‘제대로 가르치는 게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며, 그러면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의 본질은 아이들이 자고나면 와서 배우는 그 교과, 재량활동, 특별활동(‘방과후학교’ 활동도 다 특별활동이 아닐까요?) 속에 다 들어있지 않을까 싶고, ‘우선 이것에 힘써 보자’ 싶어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경영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남양주양지교육 메가트렌드
2007. 12. 남양주양지초등학교
교과서 내용전달 중심 교육은, 오래 전부터 그 단점과 폐단이 지적되어 온 바와 같이 획일적, 제한적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사고력․창의력 등 고급의 학습능력 신장이 필수적인 세기를 맞이하여 그 효용성이 한계에 이르렀으나, 교육과정 중심 교육은 수준향상의 한계를 설정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어제보다 수준 높은 오늘, 오늘보다 수준 높은 내일의 교육을 지향하며, 현재의 교육이 지속적으로 변화․개선되는 교육과정 운영체제를 확립하는 데 우리의 전문성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변화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혁신을 낳는다.
□ 기본방향
◦ 교육과정 편성-운영-평가-피드백의 순환과정을 준수함으로써 ‘남양주양지교육과정’의 수준을 높인다.
- 우리의 모든 교육활동을 교육과정 편성-운영-평가-피드백의 과정으로 일원화한다.
◦ 남양주양지교육의 특색은 교과, 재량활동(1인1연구, 수준별 3품제 포함), 특별활동(방과후학교 포함) 운영 결과로써 종합적으로 드러나게 하고, 그것이 전통으로 자리잡게 한다.
◦ 이러한 방향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실천한다.
* 교과, 재량․특별활동및연간 주요교육활동은 교육과정위원회(전체및학년 교사회의)를 통하여 기획․결정하고, 그 결과보고서를 상호 열람할 수 있게 한다.
- 보고서는 다음 교육활동의 기반이 되는 피드백(지식경영시스템)의 자료가 되게 한다.
- 보고서는 우리 학교 교사들이 언제, 어떤 활동이라도 계획할 수 있는 교육과정 편성․운영․평가의 매뉴얼이 되게 작성한다.
* 학생 중심 교육과정 편성-운영-평가-피드백이 이루어지게 한다.
- 기본학습능력, 사고력, 창의력 육성에서 우리 학교 전 어린이의 성공적 학습을 지향한다.
* 학교 홈페이지를 통하여 교육활동 주요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홍보함으로써 전 교사․학부모들이 우리 학교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한다.
- 교사, 학부모, 학생의 온라인 평가는,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담고 있으므로 이를 우리 학교 교육개선을 위한 기본자료의 하나로 삼는다.
* 우리의 패러다임은, 남양주양지 교육활동은 어떤 것이라도 일정한 틀이 없으며, 의사결정 및 새로운 정보에 의해 항상 변화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 지원방향
◦ 교직원간의 정보․의사 전달 체제를 활성화하고,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발휘되는 학교문화를 형성한다.
◦ 과도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교수-학습활동의 수준을 스스로 높여나가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 투명하지 않은 조직․인사․예산 관리는 위험을 부른다는 것을 강조한다.
◦ 단기적 명성, 소수 학생의 의도적 육성 및 성공을 경계하고, 언제나 원칙과 기본과정을 지켜 모든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추구한다.
- 어느 학생에게나 남양주양지교육의 모든 기회를 제공하고, 그 기회에서 두드러진 어린이를 칭찬한다.
◦ 교육과정자료실, 회의실, 시청각실, 강당, 체육관, 음악실, 미술실, 가사실, 과학실, 방송실, 도서실, 영어교실, 컴퓨터실, 보건실 등 학습에 필요한 특별교실을 연차적으로 정비, 확보한다.
추신 :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혼란을 느끼는 거나 아닌지 좀 이야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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