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제1장 제1절 학교장 인사

by 답설재 2008. 5. 9.

어느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생각은 있어도 직장 때문에 학교에 나올 수 없을 때는 아이에게 미안하며, 그래서인지 하루에 한 번씩 꼭 학교 홈페이지를 열어본다고 했습니다.

 

우리 학교 같으면 굳이 그렇게 홈페이지를 점검해보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학교에 무슨 일만 있다 하면 틀림없이 별도의 안내장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거롭고 경비도 만만치 않아서 웬만한 일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알리자고 제안해보면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학부모들은 홈페이지를 잘 살펴보지 않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저도 이 '학교장 칼럼'이라는 걸 쓰고 있지만 우리 학교 선생님들과 3000여 학부모들 중에서 독자가 겨우 수십 명, 혹 제목이 눈길을 끄는 경우라야 백 수십 명에 지나지 않으니 실망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굳이 그걸 좀 읽어보라고 권유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알고 지내는 어떤 사람이 어쭙잖은 미니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그걸 좀 보라고 통사정을 하다시피하거나, 댓글 다는 일에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그 인격이 의심스럽다고 엄포를 놓는 사람이 참 귀찮은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어디 펑펑 뒤집어 놀거나 읽을거리가 없어 따분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렇게 적은 독자 수에 불평하지 않고 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은 왜 대부분 학교 홈페이지에 관심이 없을까요? 한마디로 재미가 없거나 살펴볼 만한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어느 탤런트나 가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단숨에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네티즌이 몰려들어 야단법석이 나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의 성격이 그와 같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그렇습니다. 지금과 같은 반응으로서는 어쨌든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제와 오늘, 내일의 탑재 내용이 똑같다면 -더구나 필요하면 열어보라며 첨부물만 달랑 달아놓는 무성의함에 감탄할 사람은 전혀 없으니- 재미있고 편리하고 유익한 사이트 두고 뭐하겠다고 따분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오겠습니까.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개편된 정부 부처들의 홈페이지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국토해양부와 교육과학기술부이며, 여기에는 최근 '부동산'과 '교육'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반영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는 최근의 신문기사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문화일보,2008.5.2,11면). 우리가 운영하는 학교 홈페이지는 그 성격이 탤런트나 가수들에 대한 반응과 같을 수가 없다고 했지만, 이러한 신문기사를 보면 우리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학교 홈페이지의 탑재 내용들이 의례적이고 재미도 없고 심지어 더러는 교육청의 종용(慫慂)에 따라 마지못해 탑재하는 의무적, 책임회피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사례를 들어보고 싶지만, 좀 미안하고 조심스러워서 '학교 홈페이지 제1장 제1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학교장의 인사말' 이야기나 해보겠습니다. "우리 학교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한다." "요즘은 지식 정보화 시대니까 이 홈페이지를 자주 이용해야 한다." "우리 학교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교육공동체를 이루고 오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내용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로서는 학부모들을, 교장의 인사말을 읽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인터넷 서핑을 자주 해야 하는 '촌놈' 취급하는 것이 주제넘은 것 같아서 못마땅합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그따위 부탁을 하는 세상입니까. PC에 거부반응을 가진 분들을 제외하면 각 가정에까지 PC가 들어오고 인터넷 서핑이 보편화된 것이 언제 적 이야기입니까. 그 옛날에나 하던 그런 이야기들을 지금도 하고 앉아 있겠습니까. 그처럼 '촌놈' 취급하는 것에 대해 제가 오히려 역겹고 송구스러워서 그 설명을 더 하기보다는 제가 지난번에 근무한 용인의 성복초등학교 홈페이지에 띄웠던 인사말을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성복 어린이는, 무턱대고 읽거나 무턱대고 외우기보다는 왜 그런지, 왜 그 답이 나오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남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보다 나으면 그 사람의 생각이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사람, 넘어진 친구를 보고 혼자 달려 나가기보다는 돌아서서 그 친구를 일으켜 세워 함께 달려가는 사람, 혼자 하는 일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을 더 잘하고 즐거워하는 사람, 실패해도 우울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툴툴 털고 일어서는 사람, 덤벙대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고 생각하는 사람, 막무가내로 돌진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생각하는 사람, 책을 읽고 잘 감동하는 사람, 그것을 남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 아무리 어려운 일도 폭넓고 깊이 있게 검토하여 해결하는 길을 찾아내는 사람, 그래서 지금은 무얼 하는지 남들이 늘 궁금해 하는 사람, 어려운 이야기도 척척 이해하는 사람, 어려운 책도 줄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운동선수, 그런 음악가, 그런 사업가, 그런 의사, 그런 변호사, 그런 무엇이 되십시오. 하는 일이 무엇이든 남에게 인정받는 사람, 그 일을 집요한 노력으로 남달리 해내어 그 분야에서는 드디어 최고인 사람, 그 일로써 남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라며 텔레비전과 신문에 자꾸 나오고 "와, 성복동에서 큰 인물이 나왔네!"하고 온 동네 사람들과 선생님들, 아이들이 모두 자랑스러워하게 하십시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날 밤 우리 강당이나 운동장에 불을 밝히고 큰 잔치를 열어봅시다.

 

 

이 인사말로 3년을 지내다가 지난해 9월에는 이곳 남양주양지초등학교로 옮겼습니다. 며칠간 좀 서글펐지만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리하여 곧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썼습니다.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온 오남읍 양지리

아늑한 마을에

이렇게 맑고 밝은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경이로운 사실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내일'이며 '희망'이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이들에게 다 알려주고 싶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장차 우리가 모르는 것들까지

다 알아내고

우리가 하지 못한 것들까지 다 해결할 수 있도록

무한한 사고력과 창의력을 갖추게 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저 꽃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가 올려다보는 저 별들이

모두 빛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아이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성공하도록

도와주고 안내함으로써

우리도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이 삶의 목적이고 진실임을

확인합니다.

 

 

추신 : ① 우리 학교에서는 5월부터는 주요교육활동을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알려드리고 학교 홈페이지 이용을 늘여보기로 했습니다. ② 다른 학교 홈페이지를 보시다가 훌륭한 인사말이 보이면 제게도 꼭 좀 알려주십시오. 이제 다 그만두고 물러가야 할 날이 며칠 남지도 않았지만, 의문스럽고 알지 못하여 답답한 것들은 많습니다.

 

 

 

 

 

'학교장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멘토링(mentoring) Ⅱ  (0) 2008.05.19
멘토링(mentoring) Ⅰ  (0) 2008.05.15
학교장의 경영관  (0) 2008.04.29
‘밥 퍼주는’ 어머니들께  (0) 2008.04.19
학교의 '회의문화'  (0) 2008.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