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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고흐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by 답설재 2008. 2. 8.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림입니다. 무슨 키가 큰 나무가 서 있는 시골길을 두 사람의 농부가 걸어오고 있고, 마차 한 대가 다가오는 저 뒤편으로 한적한 주택이 보입니다. 특징적인 것은, 그 나무의 좌우로 ‘이글거린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은 하늘에 역시 ‘이글거리는’ 태양인지 뭔지가 보이는데 그것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어서 ‘희한하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어떤 미술 교과서에는 그 그림을 그린 화가와 나란히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수염이 텁수룩한, 그러나 파랗고 날카로운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자화상입니다. “반 고흐는 정신이상(精神異常)이었고, 스스로 한쪽 귀를 잘랐다.”는 어느 선생님의 소개도 기억납니다.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은,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흔히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야경(夜景)’이라는 단어가 보이는 제목이었다면 내가 그걸 인식하지 못했을 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이글거리는구나’라는 느낌과 ‘사이프러스’라는 그 나무의 이름에 정신이 팔려서 ‘별’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쳤으므로 줄곧 이 그림이 야경(夜景)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참 드물게 볼 수 있는 전시회에 가서 이 그림을 직접 보고는 꿈길처럼 아름다운 시골 야경을 그린 그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Country road in Provence by night』(1890.5, Oil on canvas, 90.6×72㎝)이므로 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한쪽 귀를 잘랐다는 데 대해서도 그 행위를 의아하게 여기기보다는 왼쪽 귀인지 오른쪽 귀인지, 무엇으로 잘라야 그렇게 자를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친구를 보면서 그게 시험에 출제될 리는 없다는 생각을 한 기억도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네덜란드, 1853.3.30.~1890.7.29.)는 아무래도 늦은 나이인 27세에 다른 아무 일도 마땅히 할 것이 없었으므로 드디어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로부터 10년간 오로지 그림에만 매달려 무려 900여 점의 작품을 남기고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화가입니다. 그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를 알게 되니까 -그가 왜 자살했는가를 알게 되니까- 그가 자신의 한쪽 귀를 잘라버린 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죽은 자의 혼백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날은 한 해 전에 그의 형이 죽은 날이었습니다. 그는 그 형의 이름을 물려받았고,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바라보듯 그에게 사랑보다는 슬픔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의 정신적인 불안정 상태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대체된 아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갈망했으나 죽은 형의 그림자 같은 자신의 운명이 어머니의 슬픔을 거두어주지 못했고 자신만을 향한 사랑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자신의 이름과 생일이 새겨진 묘비 앞을 지나며 영문 모를 슬픔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오직 동생 테오만을 그녀의 위안이 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아들로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그가 동생에게 18년간 보낸 668통의 편지 속에는 가족에게 소외되고 여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책과 생존에 대한 의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할 곳에 파멸만 있는 듯해서 넌더리가 난다.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신이여,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1880.7.), “나는 사랑 없이는, 사랑하는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1881.12.21.).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결핍된 사랑은 그가 갈망하고 스쳐간 그 어떤 여인에게서도 얻어낼 수가 없었습니다(서순주, 「신화 속으로의 여행」, 한국일보사, 2007, 『불멸의 화가 반 고흐』(圖錄), 14~15쪽 참조).

 

  그는 ‘늦게 그림을 시작하여 어떻게 신화(神話)와 같은 화가가 되었는가?’입니다. 그는 흔히 일컫는 천재화가의 전형은 아니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을 선택한 그는 오직 그림에 인생을 바쳤습니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그 10년간 집요한 노력으로 일관했습니다. 그에게는 천재의 오만함이나 게으름이 없었으며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망령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작업에 몰두하여 짧은 기간에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긴 화가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나는 무엇이냐? 없는 사람이거나 특이하고 함께 갈 수 없는 사람이다. 삶의 목표도 없고 이룰 수도 없는 사람, 한마디로 형편없는 사람이다. 좋다,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특이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정신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내 작품을 통해 보여주겠다.(위의 글, 14쪽 참조).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을 시인 심언주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현대문학』 2008년 2월호, 226~227). “그림 속 하늘에는 하현달과 커다란 별이 반짝이며 돌고 있다. 그 한가운데로 사이프러스 두 그루가 하늘 끝까지 길게 흔들린다. / 예술가들은 자신의 죽음을 작품 어딘가에 남긴다고 하는데 빈센트도 자신의 죽음을 미리 감지하고 있던 건 아닐까.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에서 막바지에 이른 빈센트의 고독을 본다. 그림 속에는 무덤 근처에 심는 사이프러스가 심어져 있고, 이 나무는 대지로부터 하늘을 연결하고 있다. 사이프러스 두 그루는 삶에서 죽음에 다다르는 길목에 다리를 놓고 있다. 빈센트는 고독의 고리를 끊은 채 그림 속으로 사라지고 그가 사라진 하늘 한가운데를 하현달과 별이 끊임없이 회전한다.”

 

  이 그림의 사이프러스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두 사람의 농부는 누구일까요? 사이프러스는 무덤 근처에 심는 나무이고, 죽은 형이 그의 의식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이제 죽음을 앞둔 반 고흐의 영혼이 곧 그 형의 영혼을 만나게 되었으므로 그 죽은 형과, 혹은 그의 일생을 보살펴준 동생 테오와 함께 사이프러스가 풍성한 그 시골길을 걷고 싶은 아름답고 순수한 욕망이 그려진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림을 보고 서 있으면 걸어오고 있는 두 농부는 오히려 정지된 느낌을 주고, 사이프러스와 들판과 길, 하늘과 별과 달 같은 자연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반 고흐는, 우리의 영혼은 잠깐 이승을 다녀가고 영원한 생명을 지닌 자연이 이승을 지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무언가 멋지게 설명하고 싶었는데 글만 길어졌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을 어떻게 감상할는지 궁금합니다. 지하철 1, 2호선이 지나는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 가시면 지난 해 11월 24일부터 오는 3월 16일까지 개최되는 반 고흐 작품전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를 보고 열 시간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한 시간을 ‘체험’하는 것이 더 값진 경우는 아주 흔합니다. 나는 1993년 9월에 ‘까미유 끌로델과 로댕전’에서 특히 『어린 소녀 샤틀렌느』라는 작품을 구경하고 다음과 같이 표현한 이래 체험학습의 효과에 대한 그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그 소녀의 머리칼이나 얼굴의 이모저모, 목, 가슴, 어깨 같은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직도 그 눈동자, 그 시선만은 잊지 못한다. 그 시선에 대해 나는 그냥 ‘그날 그 눈빛에서 충격을 받았다’고만 고백해야 할 것이다. 그날 내가 깨달은 것은, 유치하게도, 이 세상에 조각가는 우선적으로 꼭 있어야 하며, 그것도 당연히 우리의 맨 앞줄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졸저,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