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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얘들을 그냥 졸업시켜야 하나?

by 답설재 2008. 1. 2.

방학을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그날 12월 29일 토요일은 이미 지난해의 어느 하루가 되었습니다. 그날은 선생님들께 소박한 점심식사를 대접하며 미안했고, 그나마 대체로 고마워해서 더 미안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우리 아이들을 잘 지도해주신데 비하면, 오늘날 우리나라 어느 기관, 어느 기업체에서 그처럼 보잘것없는 회식을 할지 좀 서글퍼지기도 했습니다.

 

그날 아침에는 며칠간 스키 합숙훈련을 하고 돌아온 아이들을 만났고, 그 아이들 중 몇 명이 쓴 소감문도 받아보았습니다. 한 편만 보여드립니다.

 

 

스키 합숙 훈련을 마치고

 

 

내일도 눈을 뜨면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날 것 같다. 늘 규칙적인 생활로 하루가 반복되었지만, 스키 실력만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듯하다. 스키장 코스 언덕을 오를 때면 숨 가쁘고 다리가 저리며 처음의 다짐이 무너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시원한 찬바람을 맞을 수 있는 활강코스가 이어진다. 우리 초등학교 스키부의 연습코스가 바로 이렇다. 오르막 코스 → 내리막 코스 → 오르막 → 내리막.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시합 날이 코앞이다. 시합 날에는 항상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마다 꼼꼼히 자세히 해결하고 싶어진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내 친구들도 같은 것 같다. 모자도 단정히, 장갑도 튼튼히 끼고 옷도 잘 챙겨 입는다. 스키 합숙을 하니 친구들의 단점과 장점도 금방 알게 되며, 가족과 같은 소중한 마음이 생긴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시합 출발선에 스키만 닿으면 바로 남남이 되어간다. 서로를 이기려고, 또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한다. 물론 난 4학년 때부터 스키를 시작했기 때문에 익숙하니까 시합을 당연히 잘 뛰었고, 날 이기려던 친구들이 실망할 때마다 난 어깨를 토닥이며 최대한 위로의 말을 하려 애썼다. 역시 결과는 중요하지 않고 얼마큼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결과를 바라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일찍 시합을 마쳤다.

 

숙소에 가면 맛있는 아침밥을 9시에 먹겠다. 하루하루 일찍 일어나셔서 우릴 위해 아침밥을 챙겨주시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밥 먹을 때만큼은 항상 약한 마음, 그런 생각을 잊기 위해 밥을 골고루 열심히 먹는다. 저 멀리 엄마가 걱정하고 계실 수도 있을 테니까∧∧ 아침을 먹고 나면 거의 6시간은 남는다. 1시간 낮잠 자고, 산책하고, TV를 본다. 레슬링 할 땐 레슬링 보고, 광고할 땐 공부를 하고… 늘 그런 식이다. 우리의 이런 생활을 교장선생님은 무척 궁금해 하시고 걱정하시겠지? 우린 이렇게 잘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위해 걱정하고, 칭찬하고, 뒤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스키 합숙 훈련을 하다 보니 스키 주장인 나는 리더십도 생기고, 단체생활을 하니 책임감과 배려심이 생겨서 참 좋은 것을 배우고 왔다는 뿌듯함이 생긴다.(6학년 이윤지)

 

 

글에 나타난 시제(時制)가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잘 표현되었는지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입니다.

 

내일도 눈을 뜨면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날 것 같다.

 

스키장 코스 언덕을 오를 때면 숨 가쁘고 다리가 저리며 처음의 다짐이 무너지는 것 같다.

 

시합 날에는 항상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마다 꼼꼼히 자세히 해결하고 싶어진다.

 

스키 합숙을 하니 친구들의 단점과 장점도 금방 알게 되며, 가족과 같은 소중한 마음이 생긴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시합 출발선에 스키만 닿으면 바로 남남이 되어간다. 서로를 이기려고, 또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한다.

 

날 이기려던 친구들이 실망할 때마다 난 어깨를 토닥이며 최대한 위로의 말을 하려 애썼다. 역시 결과는 중요하지 않고 얼마큼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밥 먹을 때만큼은 항상 약한 마음, 그런 생각을 잊기 위해 밥을 골고루 열심히 먹는다. 저 멀리 엄마가 걱정하고 계실 수도 있을 테니까∧∧

 

그 감동 때문에 몇 가지 생각이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우선, 6학년 아이들이나 선생님들, 혹은 학부모들이 들으면 어처구니없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지난해 9월에 우리 학교에 온 저로서는 이제 단 4개월을 지냈으므로, 이처럼 훌륭한 아이들을 마음껏 가르쳐보지도 못한 채 겨울방학이 끝나자마자 곧 졸업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고 어이없고 뭔가 좀 억울하다는 느낌까지 들어서 ‘정말로 얘들을 졸업시켜야 하나?’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과연 ‘이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아이들이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이 아이들의 이런 표현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갖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대상을 잘 파악할 수 있어야 그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은, 사실은 교육뿐만 아니고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상대방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이런 생각은, 우리 교육이 아직도 교과서 내용을 전달하고 암기하는 데 너무 매몰되어 있는데 대한 반성이기도 합니다. 말로는 지식의 양이 팽창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퍼부어주고 떠먹이듯 가르칠 수가 없는 지식정보화시대이므로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해야 하며, 그렇게 가르쳐야 창의성,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고 하면서도 교실은 아직도 권위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설명 위주의 전체적, 획일적 수업을 탈피하지 못하여 걸핏하면 ‘붕어빵 교육’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마침 선생님들께서는 내년도의 교육계획을 구상하고 있는 중이므로 이러한 저의 생각을 좀 반영해주시면 참 고마운 일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면, 저의 그 ‘어처구니없는’ 혹은 ‘뭔가 좀 억울하다는 느낌’을 덜어주는 셈치고 6학년 아이들에 대한 이 겨울방학 동안의 지도를 특별한 배려로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선 모든 아이들이(단 한 명도 빠짐없이) 담임에 대한 고마움이나 그리움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며, 그 아이들끼리도 서로의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떳떳하지 못한 점이 없도록 해주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사실은 그 아이들의 일생동안의 정서를 좌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일은 또한 담임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하거나 편지, 메일, 문자 메시지 같은 것을 보내어 시작할 수도 있고, 어느 날 조촐한 만남의 시간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며, 학부모님의 배려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E.데아미치스가 지은『사랑의 학교』는 이렇게 끝납니다(이현경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7).

 

 

“안녕, 가르로네.” “안녕, 다시 만나자.”

친구들은 가르로네를 만지거나 손을 잡았고, 용감하고 착한 가르로네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가르로네 아버지는 몹시 놀란 채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가르로네를 껴안았습니다. 그 애와 포옹하면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습니다. 그 애가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 다음 난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물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