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에 저는 유니세프(국제연합아동기금) 한국지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 국제기구가 6․25전쟁 때 헐벗고 굶주리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점심은 아예 굶는 것이 정상인 줄 알았던 그 시절에 학교에 가서 분유와 장난감 같은 걸 배급받은 경험을 되살리며 ‘모든’ 어린이의 보건, 교육, 평등, 보호를 위한 인류애의 실천이라는 그 민간기구의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야기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6․25전쟁 이후 오랫동안 그렇게 헐벗고 굶주리는 생활을 한 것을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우습게 여기는 못된, 못난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슴 아프게도 그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너무나 흔합니다. 그것은, 참 경솔․경망한 것이고, 아이들 세계라면 그런 아이는 말하자면 좀 ‘까부는 아이’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까불며 살려면 미국이나 일본처럼 유니세프 같은 국제기구를 통하여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이라도 듬뿍 내는 입장이어야 할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이 좀 까분다는 뜻은 아니고 ‘나는 세계적인 선진국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려면 적어도 그런 일도 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유니세프 사무실에 드나들면서 저를 포함한 5명의 자문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각 학교에서 특별활동 시간에 국제이해교육을 위한 ‘지구촌클럽’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결정에 따라 제가 지구촌클럽 교사용지도서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물론 그렇지 않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는 아직 유니세프 수혜국으로 되어 있어 뉴욕의 본부로부터 원조를 받던 시기였고, ‘국제이해교육’ 같은 용어는 왠지 고급스러워 보이고 어딘지 사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때에는 그 일이 그만큼 생소하고 혁신적이었지만, 지금 봐도 ‘참 만족스럽다’고 할 만한 교사용지도서가 발행된 것은 1992년 3월이었고, 그 지도서가 현장의 몇몇 학교에 보급되어 활용된 지 4년 만인 1996년 3월에는 그 지도서를 보완하게 되었습니다.
그 개정판에 저는 유니세프 본부에서 발행한 자료 중에서 평소에 보아둔 ‘발견’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추가했습니다. 그 자료는 제게는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 자료를 소개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어린이를 찾으세요
①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은? --- 그 운동은 어떤 것입니까? ----
② 특별한 음식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 그 음식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③ 최근에 아주 자랑스러운 일을 한 사람은? --- 그 일은 어떤 것입니까? ----
④ 최근에 남을 도와준 사람은? --- 어떤 일을 도왔습니까? ----
⑤ 다른 나라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 어떤 나라의 말입니까? ----
⑥ 특별한 무엇을 배우고 있는 사람은? --- 그것은 무엇입니까? ----
⑦ 학교에서 특히 즐기고 있는 일이 있는 사람은? --- 그 일은 어떤 것입니까? ----
⑧ 어른이 되어서 할 일을 이미 결정한 사람은? --- 그 일은 어떤 것입니까? ----
⑨ 닮고 싶은 사람을 정해둔 사람은? --- 누구를 닮고 싶어 합니까? ---- 왜 닮고 싶어 합니까? ----
⑩ 먼 나라를 여행해 본 사람은? --- 어떤 나라입니까? ----
⑪ 물건을 잘 고칠 줄 아는 사람은? --- 무엇을 잘 고칩니까? ----
⑫ 싸움을 말린 사람은? --- 어떻게 말렸습니까? ----
⑬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나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 어떤 이야기(책)입니까? ----
⑭ 특별한 취미를 가진 사람은? --- 어떤 취미입니까? ----
⑮ 특별한 일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 왜 그 일을 기다립니까? ----
⑯ ⑰ ⑱ ……
우리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흔히 자신의 재능과 능력은 과대평가하기가 쉽고, 남의 재능이나 남의 능력은 과소평가하거나 간과하기 쉽습니다. 세밀히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그러한 습성은 물론 부모로서, 또 교사로서 우리 아이들의 그러한 습성도 소홀히 생각하거나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가정에서, 그리고 교실에서 아이들 간의 다툼, 부모가 자녀에게 혹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당연한 듯 ‘저지르는’ 일방적인 대화나 꾸중도 이처럼 잘못된 인식에 의해 발생되는 경우가 허다할 것입니다. 사실은, 그러한 인식에서 출발한 지도나 꾸중은 이미 부모로서, 교사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한심한’, ‘무서운’ 대화나 행위일 수 있습니다.
위의 활동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소재이며, 그 목표는 ‘다른 사람의 재능과 능력을 발견하여 남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상호 의존하여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다 잘 찾아보면 남보다 뛰어난, 최소한 무언가 남만큼의 장점을 지니고 있으므로 제발 남을, 아이들을 단 한 명이라도 경시하거나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위의 활동들이 적힌 학습지를 들고 다니며 20~30분간의 정해진 시간에 그 답을 적으면서 나와 같거나 비슷한 점을 가진 사람, 내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알게 되고 사람은 다 다를 뿐 결코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으로 가를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저절로 ‘아, 우리 반 아이들은 다 잘났구나. 결코 나만 잘난 것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되며 그러한 깨달음이야말로 너무나 값진 ‘발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아이들에게 이 활동을 시켜보기 전에 우리부터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습니까?
지난 12월 1일, 우리 학교 4학년 어느 반에서는 ‘작은 발표회’라는 소박한 이름으로, 학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다섯 가지의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을 공연했습니다. 제가 그 발표회를 지켜보며 줄곧 생각하고 있었던 의미는 바로 이 ‘발견’이며, 출연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그 아름다운 ‘사회’에서는 무시, 경시되는 구성원은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소름끼치는 그 용어 ‘왕따’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발표회가 끝난 다음에는 그 발표회 프로그램처럼 아기자기한 보고서도 보았습니다. 그 보고서 중에는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고 인정하는 상장도 있었습니다. “상장 / ㅇㅇㅇ 교장선생님 / 교장선생님께서는 우리 반의 ‘작은 발표회’를 끝까지 잘 감상하셨으므로 이 상장을 드립니다 / 2007년 12월 ○일 / 남양주양지초등학교 4학년 ○반 ○○○” 이런 상장도 있는지, 말하자면 교장의 존재를 ‘발견’한 아이도 있는지, 저는 저도 모르는 새 그 상장을 찾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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