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아이들인지 궁금합니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어떤 분들인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여러분도 저와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시겠지요.
우선 그 소중한 자녀가 우리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대부분의 남녀가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거지만, 그만큼 키워서 드디어 학교에 입학시키게 되었으니 특히 그 애를 낳은 어머니로서는, 그 기쁨과 살레임을 다른 사람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평범한 일인 양 여기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그래서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고 있지만 태어나 자라고 결혼하여 아이 낳은 보람을 느끼시고 마음속으로는 이 세상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그만큼 기대와 소망도 클 뿐만 아니라 그 기대와 소망만큼 불안하고 초조하고 걱정스럽기도 하시겠지요. 심지어 그 불안이나 초조함이나 걱정이 고조되어 주변 사람들이 아이가 학교에 가게 된 것을 함께 축하하고 걱정해주지 않는 것이 야속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야단스럽지 않은 태도가 바른 건지도 모릅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며, 공부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둔 어머니들끼리 만나면 온갖 이야기를 다 할 것입니다. “요즘은 한글 다 익혀 책을 줄줄 읽고 학교에 들어가야 한대요.” “강남 아이들은 입학 전에 벌써 책을 1000권은 읽는대요.” “영어는 어떻고요, 요즘 애들은 웬만한 대화는 다 할 줄 알잖아요.”…….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크게 흔들리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은 대학을 나왔거나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만 다녔거나 간에 그런 이야기의 내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학교 다닐 때 교육에 대해 배운 것들,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기가 쉽습니다. 여러분은 교육학자가 아니고 제 아이 낳아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실수를 하거나 실패하면 안 되는 살얼음판 같은 곳이 아닙니다. 학교는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배우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은 아이가 유치원만 들어가도 도대체 실수나 실패를 하는 꼴을 볼 수가 없는 분들이지만, 사실은 학교는 실수도 하고 실패를 해도 괜찮은 곳, 그렇게 하면서 더 튼튼해지는 곳입니다. 다만, 그런 실수나 실패를 했을 때 우리가 그 아이를 대하는 태도, 방법이 문제가 될 뿐입니다. 한번은 저학년 교실 앞을 지나가다가 멜로디언인가 뭔가를 가지고 오신 어느 어머니께서 그 물건을 받으러 나온 아이를 막무가내로 꾸중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를 그렇게 대하시면 안 됩니다. 학교에까지 오셔서 아이를 나무라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시려면 아예 그 물건을 갖다 주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아이는 다음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준비물을 더 잘 챙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까짓것 멜로디언쯤 몇 번 빠뜨리면 어떻습니까.
학교는 그 아이의 성공 여부를 즉시 알 수 있는 곳도 아니며, 아이들의 성공 여부는 그렇게 쉽게 판단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엽적인 것으로 아이들을 판단하기보다는 끝까지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부모로서의 태도를 지켜주어야 합니다. 이 시기의 신문을 보면 입학을 앞둔 아이를 지도하는 방법이 곧잘 소개되고 있지만, 저는 여러분께 아주 간단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오냐오냐 부모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냐오냐 부모족’이란 마크 펜과 키니 잴리슨이란 사람이 『마이크로 트렌드』라는 책에서, 자녀가 잘못을 저질러도 꾸짖지 못하는 부모들을 명명한 말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부모들이 꽤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아실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는 ‘오냐오냐 부모족’이 없습니까? ‘오냐오냐 부모족’이 되면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게 되고 그런 아이는 학교에 와서 배워봤자 별 수가 없게 되므로 참으로 조심해야 할 부모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도 좋지 않으며 아이의 행동에 대해 일관된 입장으로 지도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 일관된 입장이란, 제 아이는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귀엽지만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해야 하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일본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좀 힘드시겠지만 부모님께서 먼저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이제 무슨 ‘대단한 공부’를 시작하시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어느 신문사에서는 ‘거실을 서재로’라는 운동까지 전개하고 있지만, 어른들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으면서 아이더러 책을 보라고 한다면 다 헛일입니다. 말하자면 집안 분위기가 중요하며, 사실은 그 분위기가 모든 일을 거의 좌우하고 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피곤하시고 어려우시더라도 졸린 눈 비비면서 이제 신문도 좀 읽어보시고 재미있는 소설이라도 구해서 늘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틀림없이 성공한다는 것을 약속해드릴 수 있습니다.
덧붙인다면, 학원부터 보내는 것은 참 경솔하고 무책임한 판단입니다. 부모님들 중에는 “다 보내니까 불안해서 나도 보낸다.”는 분이 많습니다. 학원은 아이가 생활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시다가 특별한 부문에 관심과 흥미를 나타내어 그것이 그 아이의 진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서게 되거나, 아니면 꼭 배워야 할 교과에서 부진한 면이 나타날 때 보충해주는 기회로 삼아도 늦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제 드디어 학교에 가게 되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공부에 흥미나 관심을 가지도록 해주는 일이 더 긴요합니다. 아이가 장차 공부를 잘 하거나 잘 못하게 되는 것은 공부에 흥미를 가지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입니다. 보십시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성공하는 사람치고 그 일을 재미있게 하지 않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느 학자는 “세상의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빠져 재미있게 하면 최소한 밥을 굶지는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양지초등학교 예비 학부모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우리 학교에 입학하여 성공적으로 공부하고, 성공적으로 생활하기를, 무엇보다 먼저 ‘학교는 참 즐거운 곳이구나.’ ‘나는 참 소중한 사람이구나. 내 친구들도 모두 소중한 아이들이구나.’ ‘우리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구나.’를 인식하고 이 학교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나가기를 마음 깊이 기원하는 바입니다. 오는 1월 29일 오전에는 ‘신입생 면접 및 오리엔테이션’(우리 학교 홈페이지 기사 참조)을 하게 됩니다. 그날 뵙고 잠깐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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