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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놀랍고 한심한 ‘不孝國 1위’(경기신문080205)

by 답설재 2008. 2. 4.

 

 

  지난해 12월 10일, 숭실대학교 정재기 교수는 한국인구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한국 가족․친족간 접촉빈도와 사회적 지원 양상:국제간 비교’라는 논문을 통해 놀라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60세 이상 부모 1300명의 소득․교육․연령․성별․결혼상태 등 각 속성이 자녀와의 대면(對面) 접촉 빈도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포함한 26개국과 비교분석한 결과, 동거하지 않는 부모를 접촉하는 자녀의 비율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이 최하위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만 유독 소득변수의 회귀계수(상관관계지수)가 0.729로 부모가 돈이 많을수록 자녀와의 대면 접촉 기회가 늘어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경우 ‘동거하지 않는 어머니를 1주일에 한번 이상 만난다’고 응답한 자녀 비율이 27%(평균 55%)로 일본과 함께 최하위에 그쳤으며, ‘동거하지 않는 아버지를 1주일에 한번 이상 만난다’는 응답비율도 23%(평균 49%)로 일본과 함께 최하위였다고 한다.

  또 조사대상국에 포함된 14개 OECD 회원국에서는 부모의 생활이 어려울수록 그 자녀들이 부모를 자주 찾아가보지만 우리나라는 부모의 소득이 1% 많아질수록 부모 대면 빈도도 0.729%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한다.

 

 

  자녀가 노령의 부모를 만나는 횟수가 조사대상국 중 꼴찌이고 부모에게 돈이 많은 경우 자녀가 그 부모를 더 자주 만나고 있다는 이 부끄러운 통계는, 우리나라의 가족구성 형태나 노인 빈곤가구 비율에 비추어 보면 더욱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6인 이상 가구는 1980년에는 29.9%였으나 2005년에는 3.3%로 급감했고, 2인 가구는 그동안 10.5%에서 22.2%로 급증했다. 또 주요국의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 중 빈곤층 비율은 미국 22.1%, 이탈리아 13.2%, 노르웨이 11.1%, 독일 9.3%, 프랑스 5.4%, 스웨덴 2.8%에 비해 우리나라는 34%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노인들은 노인들끼리 가난하게 살면서 자녀를 만나지도 못하는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통계만큼 놀라운 사실이 또 있다. 그것은 아무도 이러한 통계에 관심이 없어서 수많은 언론도 무반응이고, 허다한 교육정책을 쏟아내는 교육행정기관도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점이다.

  우리는 그동안 ‘동방예의지국’이니 뭐니 하며 전통적으로 효(孝)사상, 경로사상을 자랑해왔으며, 우리의 이러한 특성은 국제적으로도 인정해온 것이 또 하나의 전통이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특성을 우리들 스스로 폐기했고, 폐기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겉으로는 효, 경로를 앞세워 그로 인한 이익을 챙기면서도 실제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러한 사고방식을 구태의연한 것으로 치부해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느새 부모를 섬기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고, 그만큼 자식만을 앞세우고 자녀문제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모습이 일반적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남의 자식이 어른에게 대어드는 것은 버릇없이 키운 탓이고, 내 자식이 어른에게 대어드는 것은 자기주장이 뚜렷해서이다’ ‘남이 내 아이를 나무라는 것은 이성을 잃은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고, 내가 남의 아이를 꾸짖는 것은 어른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며느리는 시집을 왔으니 이 집 풍속을 따라야 하고, 딸은 시집을 가더라도 자기생활을 가져야 한다’…… 인터넷을 연결하여 사사로운 정보교환을 일삼는 메일을 열어보면 자조적으로 표현된 ‘웃음거리’가 얼마든지 나열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이 정말로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지 웃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자화상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들 자신이 바로 그런 인성, 그런 생활태도에 물드는 새 어떠한 논리로도 그 값어치를 의심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었던 최고의 덕목(孝)은 소리 없이 무너져서 바로 우리들 자신의 자녀가 성장하여 우리를 찾지 않게 되고, 물려줄 유산이라도 있으면 더러 자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한심하고 처량한 입장이 된 것이다.

 

 

  교육의 본질과 가치는 수능과 내신, 논술을 포함한 대학입시문제와 영어교육 같은 것에 목이 매여 있고 아직은 그 엄청난 사교육비의 감축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므로 학교는 다른 이야기하지 말고 우선 학력향상에 몰두해야 하는데, 가정에서조차 그 전유물이던 가정교육을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그러므로 놀랍고 한심한 통계인 ‘불효국 1위’라는 사실이 드러나도 아무도 놀라지 않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이로운 나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