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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쉽게 말해요” 캠페인(경기신문071212)

by 답설재 2007. 12. 13.

  신문에 실린 글의 제목은 <교육계도 '쉽게 말하자'>였습니다. 교육계 밖에서 보기에는 그 제목이 더 적절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딱딱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쉬운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서버를 교체해야 하겠습니다.” “서버가 뭡니까?” “서버(server)란 네트워크 접속과, 인쇄나 파일 공유와 같은 네트워크 자원에 대한 접속을 조절하는 컴퓨터 시스템입니다. 어떤 서버들은 데이터베이스나 웹 사이트에서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며, 또 다른 서버들은 백-엔드 시스템과 다른 서버 사이에서 자료의 흐름과 컴퓨터 프로세스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요즘은 일상용어로 쓰이는 비교적 쉬운 예의 외래어가 들어간 대화이다. 이쯤 되면 그 설명에서 또 다른 용어들이 걸려서 가령 “백-엔드 시스템이 뭡니까?” 하고 물어야 하기 때문에 ‘한심한’ 사람이 되고 말거나, 대충 윤곽만 파악하고 넘어가야 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IT(情報技術, information technology) 용어에서뿐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한 신문은 관련 중소기업체 과장조차 “외계어(外界語) 같다”고 한 해외펀드 운용보고서를 거의 암호문 수준이라며 인용하고 있다.

  “7월에는 QDII 제재 완화로 인한 현금 유입에 대한 기대, 상반기 견고한 어닝즈 발표와 A share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밸류에이션 등으로 기록적인 거래가 이뤄졌다.” 참고로 그 신문기사의 자료를 덧붙이면, QDII란 중국 정부가 인가한 은행, 증권사 등 적격 국내기관투자가이고, 어닝즈는 기업실적, 밸류에이션은 주식가치라고 한다.

 

  우리는 특정한 주제의 특강을 듣기 위한 강연장에서 강사가 이른바 키워드(key words)라고 할 만한 용어를 외래어로 표현했을 때 그 용어의 뜻을 잘 알고 있는 경우에는 자신의 지식수준이 이야기가 될 만한 수준이라는데 자부심이나 안도감을 느끼지만, ‘저게 무슨 뜻이지?’ 싶으면 짜증이 나거나 긴장감,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강사들도 자신의 지식수준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청중으로 하여금 짜증이 나게 하거나 긴장감,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티에프(TF; 기획팀)에서는 더블유시디엠에이(WCDMA; 3세대 휴대전화) 아르푸(ARPU; 1인당 매출)를 높이기 위한 캔 미팅(Can-meeting; 자유로운 토론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누던 SK텔레콤은 최근 전사적(全社的)으로 ‘쉽게 말해요’ 캠페인을 시작하고 ‘쉽게 말하는 방법’을 적시한 팸플릿을 전 사원에게 배포했다고 한다. SK텔레콤은 지나친 외래어 사용 관행이 타 업계나 고객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의 의사소통도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 캠페인을 벌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선한 느낌을 주는 이 캠페인 소식을 접하면서 외래어 사용이 난무하는 교육계에도 이러한 운동이 전개되기를 기대하고 싶다.

  최근 교육부의 교육혁신에 관한 매우 간단한 자료에서 외래어 사용 실태를 살펴보았더니 ‘NEIS, 네트워크, 마인드, 매뉴얼, 모니터링, 미팅, 브랜드, 비전, 시스템, 아이디어, 온․오프라인, 워크숍, 이러닝, 이미지, 인센티브, 인터뷰, 체크리스트, 캐릭터, 컨설팅, 프로그램, 프로세스’ 같은 수많은 용어들은 이미 당연한 듯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혁신리더십, 혁신비전, 성과관리시스템, 업무관리시스템, 지식관리시스템, 맞춤형 통계시스템, 디지털 행․재정시스템, 단위업무 지원시스템, 시스템자료 탑재, 마인드 제고, 홍보 마인드, 웹 기반 학교혁신 컨설팅단, 디지털 지방교육재정, 세부사업 매핑 실적, 예산관리시스템의 데이터 정합도, 세부사업 표준안 매뉴얼, 교육청 브랜드 관리’처럼 우리말에 붙여서 사용함으로써 그 문장에서 핵심적인 뜻을 지닌 새로운 용어로 쓰이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뿐만 아니다. 요즘은 설명을 듣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약어(略語)나 유치하고 희한한 조어(造語)도 수없이 등장하고 있다.

 

  교육행정기관에서는 해가 갈수록 이러한 외래어의 사용을 늘여가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시책이나 정책을 구상할 때마다 지금까지 사용해온 용어들이 식상하다는 듯 더욱 신선하고 자극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용어들을 찾다보니 이제는 우리말로써는 더 이상 효율적일 수 없다는 판단으로 너도나도 외래어의 사용을 늘여가고,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외래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지식수준을 과시해보려는 얄팍하고 치졸한 사고에 의한 현상이 아닌가 싶다.

  SK텔레콤처럼 교육계에서도 어쩔 수 없는 전문용어는 그대로 사용하되 그 뜻이 상식에 불과한 외래어는 우리말을 쓰고, 어려운 용어에는 주석이나 개념설명을 달아주면 좋겠다. “숙제를 잘 내자” “아침에 책을 읽히자” “뒤떨어지는 아이가 없게 하자”고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