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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대입제도를 고정시키는 길(2008.02.27)

by 답설재 2008. 3. 4.

 

 




대입제도를 고정시키는 길






  이명박 정부의 대학입학전형 개선방향은 수능등급제 개선을 포함한 3단계의 자율화방안이다. 지난 1월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발표 내용을 보면, 1단계로 올해 수능부터 등급과 함께 표준점수와 백분위 점수를 병기함으로써 대학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학생부와 수능 등 전형요소별 반영비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하고, 2단계로 2012학년도 입시부터는 현재 최대 8과목인 수능 응시과목을 언어․수리․외국어(영어) 외에 탐구영역․제2외국어․한문 중에서 2과목을 골라 모두 5개 과목으로 줄일 계획이다. 또 2013학년도부터는 영어능력평가시험 성적을 반영하는 대신 수능과목은 4개 과목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3단계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후 9년간은 대학별 입학시험을 치렀으나 1954년에는 대학입학연합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를 실시했고, 1955년부터 7년간은 대학별 본고사와 내신(권장), 1962년에는 대학입학자격국가고사, 1963년에는 대학입학자격국가고사와 대학별 본고사, 1964년부터 5년간은 대학별 고사, 1969년부터 4년간은 자격시험인 대학입학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 1973년부터 8년간은 대학입학예비고사와 본고사, 내신, 1981년에는 대학입학예비고사(선시험)와 내신, 1982년부터 4년간은 대학입학예비고사와 내신, 1986년부터 2년간은 대학입학학력고사와 내신, 논술, 1988년부터 6년간은 대학입학학력고사(선지원)와 내신, 면접, 1994년부터 3년간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 본고사, 1997년부터 5년간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교생활기록부, 논술, 2002년부터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교생활기록부, 논술, 추천서, 심층면접 등으로 변화되어 왔다. 이러한 변천은 당연히 당시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고, 언제나 당연한 듯 다시 새로운 문제점을 드러냄으로써 교육부는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더욱더 정교하게 심층적인 연구와 노력을 다하면서도 국민들로부터는 그때마다 "또 바꾼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번 인수위의 대입전형 3단계 자율화방안에 대해서도 "또 바꾼다"는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입장에서는 본고사 부활, 논술 강화, 고교 등급제 및 그 부작용, 수능의 비중 증가 등 여러 가지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우려와 달리 “현재의 제도가 불합리하므로 또 바꿀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긍정적인 관점으로 이제 올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딴 생각 말고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된다"고 말해주는 학부모가 있다면 그는 부모로서 신뢰할 수 있는 약속을 하는 것일까. 자녀는 그 약속을 신뢰해도 좋은 것일까. 우리의 경험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그러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세월을 살아온 우리로서는 새 정부에서 내놓은 공약(公約)까지도 철석같이 믿기는 어렵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잘 한다면 지금까지보다는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 같다.

 

  혹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원하는 대학, 자신의 수준에 맞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된다면, 그때 교육부 관료들은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그들은 거의 해마다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학생들이 각자 공부에 매진하여 야단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대학입학을 하게 되는 그런 세상이 되어도 그들 교육부 관리가 필요할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그러한 의문을 가지는 것은 대입전형에 관한 정책을 교육부에서 맡지 않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맡는다 해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학생으로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다른 표현이 필요 없을 만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위성만큼 열심히 공부하면 다른 요인이 반영될 여지없이 가고 싶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정부에서 제시하는 입시제도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그 길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한 만큼의 실력 외에 다른 변수가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은 교육행정의 도리가 아니다.


  이명박정부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대입전형제도 개혁방안에 대해 아직까지는 특별한 비판적 반응이 없고, 앞으로도 이러한 반응이 그대로 지속된다면 그것은 천만다행이며, 이와 같은 평가는 당연히 "열심히 공부한 만큼 바라는 대학, 수준에 맞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 대입전형제도는 더 이상 바뀌지 않도록 고정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