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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163

옛 제자 학교 뒤로는 구릉이 펼쳐져 있고, 구릉의 대부분은 꽃밭과 풀밭, '사색의 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넓게 펼쳐진 그 구릉의 관리를 위해 아이들이 동원되는 일은 없습니다. 꽃밭과 풀밭은 웬만하면 그냥 두어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잘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그 넓은 구릉을 교사 '파란편지'가 혼자서 다 관리합니다. '파란편지'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부분은 꽃밭이나 풀밭, '사색의 길'이 아니고 관목림과 자작나무숲, 저 아래 평지로 이어지는 코스모스꽃밭 같은 특별한 곳들입니다. 꽃밭이나 풀밭, '사색의 길'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색의 길'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아니냐?"고 따졌을 때, '파란편지'는 그 비난에는 대꾸도 하지 않다가 ".. 2010. 2. 5.
중환자실 일기 Ⅰ- 2010.1.17-1.22. 서울아산병원- Ⅰ   중환자실 환자는 그곳에 머무는 시간으로 보면 세 종류입니다. 수술 절차상 하룻밤만 지내고 그야말로 '해피하게' 일반병실로 떠나는 사람도 있고, 기약도 없이 누워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기약도 없는- 의식이 있기나 한 건지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나머지 한 종류는 나처럼 어정쩡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세 종류가 있는 걸 보면 비교적 일찍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을 보고 "버러장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거나 "도무지 질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할 수는 없는 일이 분명하고, 그러므로 자신의 노년에 대한 인식은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Ⅱ   어머니(先妣)는 마흔여덟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저 아이 낳고 일하고 하는 데만 그 짧은 세월을 다 보내다 갔으므로 이.. 2010. 1. 25.
2010년 교장으로 살아가기 (2010년 1월 1일) 옛 교육부는 초․중등교육을 각 교육청으로 넘기겠다고 했었지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오히려 초․중등교육에 바탕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과학기술부 새해 6대 주요업무 내용을 보면, 첫 번째가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전면적용이고, 대학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창의적이고 인성을 갖춘 인재개발이 두 번째다. 구체적으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당장 올해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내용들을 한꺼번에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핵심적인 과제가 국가학업성취도평가 결과 및 관련 정보 공개다. 지난해에는 지역별로 공개한 성적을 올해는 학교별로 공개할 예정으로, 오랫동안 ‘학교는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 것이나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새삼스러워졌고, 이 공개에서 떳떳하지 못한 학교는 다른 어떤 것도 내세우지 못할 .. 2010. 1. 1.
불조심 포스터·표어 인쇄된 표어, 포스터는 경각심은커녕 '또 저걸 붙였구나' 오히려 무관심을 조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표어공화국'이라는 말도 있었을까요? 여러 기관에서는 그렇게 하면서 누구에게 잘 보일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표어공화국' 현상은 오늘날이라고 특별히 더 나아진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가령 아직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금연' 'No Smorking'이 선명한 표지판을 쳐다봐야 합니다. 아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 걸까요? 길거리에도 나가 돌아다녀보십시오. 우리나라가 '표어공화국'인지 아닌지. 아이들의 작품을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신선하고 충격적입니까.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믿지 않고, 아이들에게 부탁하지 않고, 자기네들 맘대로 대회 열고, 상 주고, 그걸 전국적으로 보.. 2009. 12. 11.
노벨상을 염원하는 한국의 과학교육 (2009년 12월 2일) ‘수학․과학 교육에 미래가 달렸다’는 논의는 심각하다. 이공계 편들기가 아니다. 다른 교과교육도 다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살림이 직접적으로 과학기술에 힘입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지난 가을 올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당시의 화제는,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새로 설정해야 할 지표에 집중되었다. KAIST 총장은 “연구의 목적을 노벨상 수상에 둔 사람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에 애정과 열정을 갖고, 근본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가지고 지식을 추구하며 그들의 일생을 헌신한 사람들이 이 상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성장하여 스스로 원하는 일을 찾도록 해야” 하며, “어른들로부터 ‘이것 .. 2009. 12. 2.
가을엽서 Ⅹ - 晩秋 校庭은 晩秋ㅂ니다. 이것은 生活도 아니고 學問도 人情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晩秋일 뿐 나는 이 자리에서 곧 일어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연히 황홀할 수는 없으므로 무겁지 않게 표표히 가겠습니다. 허전함 말고 초라하고 정겹던 정겨움 찾아 화해하며 머물다가 더 먼 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 말고도 정겹습니다. 잠들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들과도 정겹게 지내겠습니다. - 모처럼 학교에 나온, 한가한 일요일 오전에 2009. 10. 18.
교원평가, 이제 무엇이 문제인가 (2009. 9. 11) 교원평가, 이제 무엇이 문제인가 2004년 2월, 교육부에서 교원평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지 5년여의 논란 끝에 지난 8월 10일, 그동안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함께 이 시책에 줄곧 반대해오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전격적 수용으로 교원평가 문제는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2005년 11월, 교원평가 정부시안 및 부적격 교원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48개 시범학교를 지정했고, 2008년 12월에는 의원입법안이 발의되었으며, 금년 3월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시범학교를 1570개교로 확대했다. 또 금년 4월에는 교원단체의 주장을 반영하여 인사연계 조항을 삭제한 추진방안이 발표됐고 이 방안에 따른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여 현재 계류 .. 2009. 9. 11.
이병초 「봄밤」 봄 밤                                                                                                                                             이병초  공장에서 일 끝낸 형들, 누님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학산 뽕나무밭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창수 형이 느닷없이 앞에다 대고 “야 이년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라!” 하고 고함을 질러댑니다 깔깔대던 누님들의 웃음소리가 딱 그칩니다 옥근이 형 민석이 형도 “내껏도 쪄도라, 내껏도 좀 쪄도라” 킬킬대고 그러거나 말거나 누님들은 다시 깔깔대기 시작합니다 “야 이 호박씨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랑게!” 금방 쫓아갈 듯이 창수 형이 다시 목가래톳을 세우.. 2009. 9. 8.
유치환 「古代龍市圖」 시인은 왜 시를 쓸까요. 대체로 “쓰지 않고는 공허하여 살 수가 없다.”지만, 그럼 우리는 왜 시를 찾는 것일까요. 좀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아, 정말 그래!’ 싶은 한 편의 시를 발견하는 순간 때문에 시를 찾아 읽는 것 아닐까요? 시인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앉아서 돈도 내지 않고 그 시인의 정신세계, 정서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순간의 희열을 위해 시를 읽습니다. 더구나 그 순간의 놀라움으로 나를 돌아보게 하고, 그 놀라움으로 나의 갈 길을 다시 설정하여 새로운 정신세계, 새로운 정서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그 전환점이 그리워서 시를 읽습니다. ‘詩’ 하면 바로 떠오르는 시입니다. 古代龍市圖 아득한 옛날 三神山 山麓 萬里ㅅ벌에는 한 해에 한 번 나라의 龍市가 섰었나니. 이 날이면 안.. 2009. 9. 5.
비(非)자율학교를 위한 변명 (2009. 8. 26) 비(非)자율학교를 위한 변명 우리나라에는 가령 고등학교 1학년의 경우 국어 136시간, 도덕 34시간, 사회․국사 170시간, 수학 136시간, 과학 102시간, 기술․가정 102시간, 체육 68시간, 음악 34시간, 미술 34시간, 영어 136시간, 재량활동 204시간, 특별활동 68시간의 시간배당기준을 철저히 준수해야 하는 학교도 있고, 지키지 않아도 좋은 이른바 ‘자율학교’도 있다. 자율학교는 이 기준을 정한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이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허락해준 학교이다. 교육청에서는 그 외의 학교에 대해서는 이 기준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지 장학지도와 행정감사를 통해 일일이 감독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각 학교에서 학년별․교과별로 이 기준을 잘 지켜야 국가가 정한 교육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 2009. 8. 27.
빛이 보이는 입학사정관제 (2009년 7월 23일)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진로개척능력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에 중점을 두고, ∘심신이 건강한 조화로운 인격을 형성하고 성숙한 자아의식을 가진다. ∘학문과 생활에 필요한 논리적,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과 태도를 익힌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기능을 익혀 적성과 소질에 맞게 진로를 개척하는 능력을 기른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세계 속에서 발전시키려는 태도를 가진다. ∘국가공동체의 형성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과 태도를 가진다.”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고등학교 교육목표다. 수능준비로 새벽에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는 고교생이나 그 부모에게 이 목표를 보여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또 대입준비를 지도․안내하는 교사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한가하고 꿈같은 .. 2009. 7. 23.
‘미래형 교육과정’으로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한국교육신문 2009.7.13) ‘미래형 교육과정’으로 그려보는 우리 교육의 미래 “교육과정은 미래 세대를 위한 미국의 희망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 미국인들이 우리의 가치관을 실현하려는 시도(試圖)는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 미국 교육의 어떤 영역에서도 학교 교육과정처럼 어렵고 복합적이고 드라마틱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은 없다.” 매사추세츠 주 교육과정 서문에 등장한 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조직에서부터 교육과정정책 관련 행정에 대한 비중이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지만 교육과정은 이처럼 학교교육의 핵심․본질․기준이 되는 것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에 소홀한 나라를 찾을 수가 없다. 지난 1월에 설치된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교육과정특별위원회가 마련 중인 ‘미래형 교육과정’의 내용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2009.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