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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168

한 졸업생의 편지 아이들의 편지는 가볍게 여겼습니다. 담임교사가 편지쓰기 공부를 시킬 때 '교장에게 써볼까?' 생각한 아이들 몇 명이 쓴, 그래서 대부분 핵심도 없는 그저 그런 인사편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엔 자신이 결혼할 때 주례를 봐 달라는 내용도 적혀 있습니다. 그렇게 써놓고도 잊을까요, 이 아이도? 일부러 잊은 척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봤더니 세상에는 이런 꾀죄죄한 사람이 아닌 '멋있는' 혹은 '고명한' 인물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가 결혼할 때 내게 주례를 봐달라고 했지? 언제 연락이 오려나?' 어느 좋은 날, 이 아이가 결혼할 줄도 모르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며 세월만 갈지도 모릅니다. 헛물만 켜며 늙어가겠지요. 하하하~ 이 편지에는 그것 말고 내가 명심해야 할 사항도 들어 있었.. 2010. 2. 24.
<파란편지> 900일 오늘은 2010년 2월 12일, 어제는 이 블로그를 개설한 지 9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헤아려 본 건 아니고, DAUM 회사에서 그렇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내게는 이 블로그를 찾는 이들이 다 고맙지만 DAUM에서 보내준 '내 블로그 그 특별한 순간들'에 보이는 분들에게는 '한턱' 내고 싶습니다. "오십시오! 내겠습니다." 900일이니까 2년 반이지요. 재미도 없는 글을 싣고 있지만 이 블로그를 찾는 분이 이만큼은 되지 않느냐고 큰소리를 치고 싶기도 합니다. 2010년 2월 13일! 이제 퇴임할 날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교육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것이 41년입니다. "나는 모릅니다!" "나는 이제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외치듯 교육과 인연을 아주 끊고 사는 것도 우스운 일이 될 것 같.. 2010. 2. 13.
판사와 교사의 말 기사의 제목입니다. 「이번엔 교사가 막말, 학생을 '벌레'에 비유」 부제는 이렇습니다. 「인권위, 자체인권교육 권고」1 짐작이 됩니까, '이번엔'이라고 표현한 이유? 30대 판사가 60대 노인에게 "버릇없다"고 꾸중했다는 기사의 후속 기사 취급이었습니다. # 장면 12 판사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 때 : 2009년 4월 23일 ▶ 곳 :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 법정 ▶ 상황 : 아파트 입주와 관련된 민사소송 재판에서 원고와 피고측 변호사가 차례대로 변론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이때 원고 윤모(당시 68세)씨는 변호사 대신 직접 판사에게 의견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씨 "판사님." 판사(39세) "조용히 하세요.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고 있어." 다른 신문은 판사의 발언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2010. 2. 10.
옛 제자 학교 뒤로는 구릉이 펼쳐져 있고, 구릉의 대부분은 꽃밭과 풀밭, '사색의 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넓게 펼쳐진 그 구릉의 관리를 위해 아이들이 동원되는 일은 없습니다. 꽃밭과 풀밭은 웬만하면 그냥 두어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잘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그 넓은 구릉을 교사 '파란편지'가 혼자서 다 관리합니다. '파란편지'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부분은 꽃밭이나 풀밭, '사색의 길'이 아니고 관목림과 자작나무숲, 저 아래 평지로 이어지는 코스모스꽃밭 같은 특별한 곳들입니다. 꽃밭이나 풀밭, '사색의 길'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색의 길'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아니냐?"고 따졌을 때, '파란편지'는 그 비난에는 대꾸도 하지 않다가 ".. 2010. 2. 5.
중환자실 일기 Ⅰ- 2010.1.17-1.22. 서울아산병원- Ⅰ 중환자실 환자는 그곳에 머무는 시간으로 보면 세 종류입니다. 수술 절차상 하룻밤만 지내고 그야말로 '해피하게' 일반병실로 떠나는 사람도 있고, 기약도 없이 누워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기약도 없는- 의식이 있기나 한 건지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나머지 한 종류는 나처럼 어정쩡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세 종류가 있는 걸 보면 비교적 일찍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을 보고 "버러장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거나 "도무지 질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할 수는 없는 일이 분명하고, 그러므로 자신의 노년에 대한 인식은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Ⅱ 어머니(先妣)는 마흔여덟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저 아이 낳고 일하고 하는 데만 그 짧은 세월을 다 보내다 갔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2010. 1. 25.
2010년 교장으로 살아가기 (2010년 1월 1일) 옛 교육부는 초․중등교육을 각 교육청으로 넘기겠다고 했었지만,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오히려 초․중등교육에 바탕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과학기술부 새해 6대 주요업무 내용을 보면, 첫 번째가 교원능력개발평가제 전면적용이고, 대학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창의적이고 인성을 갖춘 인재개발이 두 번째다. 구체적으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당장 올해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내용들을 한꺼번에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핵심적인 과제가 국가학업성취도평가 결과 및 관련 정보 공개다. 지난해에는 지역별로 공개한 성적을 올해는 학교별로 공개할 예정으로, 오랫동안 ‘학교는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 것이나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새삼스러워졌고, 이 공개에서 떳떳하지 못한 학교는 다른 어떤 것도 내세우지 못할 .. 2010. 1. 1.
불조심 포스터·표어 인쇄된 표어, 포스터는 경각심은커녕 '또 저걸 붙였구나' 오히려 무관심을 조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표어공화국'이라는 말도 있었을까요? 여러 기관에서는 그렇게 하면서 누구에게 잘 보일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표어공화국' 현상은 오늘날이라고 특별히 더 나아진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가령 아직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금연' 'No Smorking'이 선명한 표지판을 쳐다봐야 합니다. 아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 걸까요? 길거리에도 나가 돌아다녀보십시오. 우리나라가 '표어공화국'인지 아닌지. 아이들의 작품을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신선하고 충격적입니까.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믿지 않고, 아이들에게 부탁하지 않고, 자기네들 맘대로 대회 열고, 상 주고, 그걸 전국적으로 보.. 2009. 12. 11.
노벨상을 염원하는 한국의 과학교육 (2009년 12월 2일) ‘수학․과학 교육에 미래가 달렸다’는 논의는 심각하다. 이공계 편들기가 아니다. 다른 교과교육도 다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살림이 직접적으로 과학기술에 힘입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지난 가을 올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당시의 화제는,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새로 설정해야 할 지표에 집중되었다. KAIST 총장은 “연구의 목적을 노벨상 수상에 둔 사람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에 애정과 열정을 갖고, 근본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가지고 지식을 추구하며 그들의 일생을 헌신한 사람들이 이 상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성장하여 스스로 원하는 일을 찾도록 해야” 하며, “어른들로부터 ‘이것 .. 2009. 12. 2.
가을엽서 Ⅹ - 晩秋 校庭은 晩秋ㅂ니다. 이것은 生活도 아니고 學問도 人情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晩秋일 뿐 나는 이 자리에서 곧 일어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연히 황홀할 수는 없으므로 무겁지 않게 표표히 가겠습니다. 허전함 말고 초라하고 정겹던 정겨움 찾아 화해하며 머물다가 더 먼 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 말고도 정겹습니다. 잠들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들과도 정겹게 지내겠습니다. - 모처럼 학교에 나온, 한가한 일요일 오전에 2009. 10. 18.
교원평가, 이제 무엇이 문제인가 (2009. 9. 11) 교원평가, 이제 무엇이 문제인가 2004년 2월, 교육부에서 교원평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지 5년여의 논란 끝에 지난 8월 10일, 그동안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함께 이 시책에 줄곧 반대해오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전격적 수용으로 교원평가 문제는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2005년 11월, 교원평가 정부시안 및 부적격 교원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48개 시범학교를 지정했고, 2008년 12월에는 의원입법안이 발의되었으며, 금년 3월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시범학교를 1570개교로 확대했다. 또 금년 4월에는 교원단체의 주장을 반영하여 인사연계 조항을 삭제한 추진방안이 발표됐고 이 방안에 따른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여 현재 계류 .. 2009. 9. 11.
이병초 「봄밤」 봄 밤 이 병 초 공장에서 일 끝낸 형들, 누님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학산 뽕나무밭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창수 형이 느닷없이 앞에다 대고 “야 이년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라!” 하고 고함을 질러댑니다 깔깔대던 누님들의 웃음소리가 딱 그칩니다 옥근이 형 민석이 형도 “내껏도 쪄도라, 내껏도 좀 쪄도라” 킬킬대고 그러거나 말거나 누님들은 다시 깔깔대기 시작합니다 “야 이 호박씨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랑게!” 금방 쫓아갈 듯이 창수 형이 다시 목가래톳을 세우며 우두두두두 발걸음 빨라지는 소리를 냅니다 또동또동한 누님 하나가 홱 돌아서서 “니미 솥으다 쪄라, 니미 솥으다 쪄라” 이러고는 까르르 저만치 달아납니다 초저녁 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반짝반짝 반짝이고만 있었습니다 싱겁고 개구지던 고향 형님들 옛 .. 2009. 9. 8.
유치환 「古代龍市圖」 시인은 왜 시를 쓸까요. 대체로 “쓰지 않고는 공허하여 살 수가 없다.”지만, 그럼 우리는 왜 시를 찾는 것일까요. 좀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아, 정말 그래!’ 싶은 한 편의 시를 발견하는 순간 때문에 시를 찾아 읽는 것 아닐까요? 시인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앉아서 돈도 내지 않고 그 시인의 정신세계, 정서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순간의 희열을 위해 시를 읽습니다. 더구나 그 순간의 놀라움으로 나를 돌아보게 하고, 그 놀라움으로 나의 갈 길을 다시 설정하여 새로운 정신세계, 새로운 정서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그 전환점이 그리워서 시를 읽습니다. ‘詩’ 하면 바로 떠오르는 시입니다. 古代龍市圖 아득한 옛날 三神山 山麓 萬里ㅅ벌에는 한 해에 한 번 나라의 龍市가 섰었나니. 이 날이면 안.. 2009.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