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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병초 「봄밤」

by 답설재 2009. 9. 8.

봄 밤

 

                                                                                                                                                                  이 병 초

 

공장에서 일 끝낸 형들, 누님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학산 뽕나무밭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창수 형이 느닷없이 앞에다 대고 “야 이년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라!” 하고 고함을 질러댑니다 깔깔대던 누님들의 웃음소리가 딱 그칩니다 옥근이 형 민석이 형도 “내껏도 쪄도라, 내껏도 좀 쪄도라” 킬킬대고 그러거나 말거나 누님들은 다시 깔깔대기 시작합니다

 

“야 이 호박씨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랑게!” 금방 쫓아갈 듯이 창수 형이 다시 목가래톳을 세우며 우두두두두 발걸음 빨라지는 소리를 냅니다 또동또동한 누님 하나가 홱 돌아서서 “니미 솥으다 쪄라, 니미 솥으다 쪄라” 이러고는 까르르 저만치 달아납니다 초저녁 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반짝반짝 반짝이고만 있었습니다

 

 

 

싱겁고 개구지던 고향 형님들 옛 얼굴 다시 보는 듯하고, 손 맵짜고 입 야물던 동네 누님들도 영락없다. 뽕나무밭 위로 “그러거나 말거나” 반짝이는 초저녁 별들은 또 얼마 만인가. 오가는 수작과 정경들의 맛스러움도 재미롭지만, 이 시의 숨은 묘미는 두 차례 쓰인 “그러거나 말거나”의 말맛에 있어 보인다. 모든 민망하고 샛된 것들도 도탑고 정겹게 다스리는 ‘시골’다운 마음의 회로와 자장이 이 말로 하여 작동된다.-이 의뭉함과 슬기로움의 맛!

좌우간 육담이라 할작시면 이쯤은 되어야 우리 유전자 깜냥으로는 구수하고 편한 듯하다. 양풍洋風의 번역투 육담들이라고 맛이 없을 바는 아니겠으나, 고려가요나 사설시조들의 질펀함이며,『고금소총』류 야담집의 해학적 전통이 이미 우리 구어口語 생활 속에는 배어 있는 터이다. “하늘이 싫어할 일을 내가 설마 했겠나” “텐 달라 모어” 같은 미당의 능청이나 김지하 담시譚詩들의 입에 감기는 풍자와 해학들이 그러한 미학의 유전자적 전승 없이 가능했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우선은 “내 고구마 좀 쪄도라” 같은 익살맞은 농담을 어디다 한번 써먹어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김사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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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인 시인이 이병초 시인의 시집 『살구꽃 피고』(2009, 작가)에서 뽑아 『현대문학』2009년 9월호(184~185쪽)에 소개한 시.

 

 

 

 

 

 

이런 육담도 있었구나, 싶어서 그 구절에 자꾸 눈이 갑니다. “야 이년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라!” “내껏도 좀 쪄도라” “내 고구마 좀 쪄도랑게!” ……. 많이들 알고 있는 “내 알 나 도!”보다는 얼마나 더 육감적이고, 노골적인 은유입니까.

처자(處子)들은 더 심하지 않습니까? “니미 솥으다 쪄라, 니미 솥으다 쪄라”

이런 부분들만 떼어다 놓으면 도저히 글이 되거나 더구나 詩가 될 리 없는데, 그 시절의 그 ‘봄밤’은 부끄러워 기억도 해내기 싫고 그새 다 잊고 살았는데, 대단합니다, 詩人은 마술사처럼 그 부끄러움을 ‘초저녁별’ 같은, ‘선물’ 같은 시 한 편으로 보여줍니다. 그 부끄러움들을 마침내 다 불살라 없애버려 줍니다.

 

詩人의 누님들에 대한 애틋함도 눈에 띕니다. 형들은 그냥 형들이지만 누나들은 ‘누님들’이고, “그러거나 말거나”는 그 누님들과 초저녁 별들에게만 해당되는 애틋하고 아까운 단어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님들은 다시 깔깔대기 시작”하고, 그 누님들은 그 별들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반짝반짝 반짝”였던 것입니다.

 

김사인 詩人도 대단합니다. 얼마나 심취했으면 “내 고구마 좀 쪄도라”를 어디 한번 써먹어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겠습니까. 그렇게 간절하면 분명히 써먹을 곳이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그러나저러나 그 별, 그 누님들 다 사라진 날, 나 혼자 남아서 이만큼 ‘청아한’ 육담 한번 못해보고, 하필이면 비루하고 비천하고 야비한, 또 노골적인 육담이나 해대다가 결국은 이 꼴로 살아온 걸 안타까워하는 나이가 서럽습니다. 그러니 시 감상도 제대로 못하고 혼자서 자꾸 뇌까립니다. “야 이년덜아, 내 고구마 좀 쪄도라!” “내껏도 좀 쪄도라!” “내 고구마 좀 쪄도랑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