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튀기는 속상해
한상순
사실 난,
고소하고 달콤한
입안에서 살살 녹는
뻥튀기인데요
딱딱한 곡식 낱알로 있다가
깜깜한 기계 안에서
뜨거운 거 꾸욱 견뎌 내고
뻥이요! 하고 태어났는데요
왜 내 이름을 갖다
아무 데나 쓰는 거죠?
-선생님, 그거 뻥 아니죠?
-민수 걔 뻥쟁이야
-너, 그 말 뻥이지?
-야! 뻥치지 마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 시가 실린 동시집은 『뻥튀기는 속상해』(2009, 푸른책들)입니다. 동시인 박혜선이 이 동시집을 소개한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오늘의 동시문학』문학과문화, 27호, 2009 가을호, 186)
"……. 동시를 쓰는 누구에게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있다. 갈증의 원인은 저마다 다르며 그 처방 또한 다르다. 내게 꼭 맞는 처방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동시를 쓰는 즐거운 고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상순 시인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동시 속의 갈증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 두 권의 동시집을 쓰며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목마름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원인을 찾은 것이다. 바로 ‘시적 화자’였다. ‘시적 화자’의 변화 없이는 어린이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럼 처방은 무엇일까? 젊어지는 샘물이다. 긴 갈증에 허덕이면서도 슈퍼의 생수통에 유혹되지 않고 찾은 물! 바로 ‘젊어지는 샘물’. 그 물을 마시며 시인은 젊어졌다. 어려졌다. 그 마음으로 시를 썼다. ……."
「뻥튀기는 속상해」를 읽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즐거워지고 '우리도' 어려질 수 있으니까 「뻥튀기는 속상해」를 몇 번 더 읽는다고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혹 '뻥' '뻥튀기'의 말놀음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마음이 가벼워지고, 즐거워지고, 어려지는데, 그러면 더 좋은 거죠. '말놀음'이란 말하고 싶은 걸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왜 내 이름을 갖다 아무 데나 쓰는 거죠? -선생님, 그거 뻥 아니죠? -민수 걔 뻥쟁이야 -너, 그 말 뻥이지? -야! 뻥치지 마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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