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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江」

by 답설재 2009. 10. 9.

지금까지 시집은 12권을 냈다. 그 중에서 뽑은 것이지만, 어쩐지 그 수확이 변변찮다. 결국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이 이 길의 허망함만 느낄 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또다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신들메를 고칠 수밖에는 없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내 초라한 주머니가 조금은 넉넉해지기를 바란다. 이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朴在森

      

시인은 시집 『울음이 타는 가을江』(미래사, 1996, 1판8쇄)에 그렇게 썼습니다. 그 시집은 1991년에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에 제15시집 『다시 그리움으로』를 냈고, 1997년 6월 8일, 삼천포가 고향이지만 사실은 1933년 일본 동경 변두리 어느 곳에서 태어난 그는 10여 년의 투병생활 끝에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그때 들었는데 잊었습니다. 그 지병(持病)이란 무슨 ‘큰병’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내 초라한 주머니가 조금은 넉넉해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썼으니 제12시집 이후 제15시집을 낼 때까지 돈을 좀 벌었을까요? 천만에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詩로 부자 된 사람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는 철저히 가난한 채 갔습니다. 시집 날개에 나와 있는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다가가고 싶은 친근감을 느끼겠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이미 돈이 많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얼른 송구스런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제가 좋은 뜻으로 쓰는 거니까 그분은 용서해주실 것 같습니다). 그때 부조금을 좀 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금액입니다. 단 한 번인데 많이 냈더라면 두고두고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때 부인의 음성은 시인의 아내답게 조용하고 아늑하고 포근했습니다.

    

여러 해 전 삽화---심사료를 두둑하게 받은 줄 알고 시화전에서 만난 친구들을 끌고가 17만원어치를 마셨는데 봉투를 열고 보니 심사료란 게 고작 3만원, 그래 그는 십여 만원 생돈을 물어야 했다. 두터운 종이 두 장에 싼 심사료 부피가 빛 좋은 개살구였다. 재삼 형을 생각하면 그가 40여 년 수없이 원고지에 그려온 <무제>가 생각난다. ‘……별을 주워모을 수만 있다면/얼마나 좋을까 싶지만’---그의 동심이 그립다.

    

김영태 소묘집 『시인의 초상』(지혜네, 1998, 87쪽)에는 그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모처럼 한턱 ‘쏘고’ 싶었을 텐데, 어디서 심사를 맡겼는지 참 무성의한 사람들입니다. 오래 전 이야기니까 3만원도 큰돈이었을까요? 아니면 가난뱅이 시인이 술을 너무 ‘거하게’ 산 걸까요?

 

이건 저의 비밀이었는데, 저는 사실은 박재삼 시인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의 시집이라면 보이는 대로 샀습니다(그래 봤자 몇 권 되지도 않지만). 교장실에도 그분의 시 한 편을 감사패, 공로패 만들듯이 새겨서 세워놓고 때때로 들여다봅니다(감사패 만드는 가게에 맡기면 간단히 되는 줄 알아도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가게에서는 행이나 연을 제멋대로 새겨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들여다보면, 늦었지만 그래도 제 마음이 아주 잠깐 좀 착해지려는 것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어디서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서정주 시인이 그를 ‘비할데없이’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걸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시인을 좋아한다는 걸 왜 숨겼고 이제 와서 말하느냐고 하면, 그걸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시인의 시는 도무지 그 뜻조차 알 수 없기 일쑤지만 그의 시는 참 친절합니다. 하다못해 쉼표나 마침표까지 제대로 찍어줍니다.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 시인이 참 많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지만, 어쨌든 그의 시는 저 같은 등신(等神)1)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시 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가 문제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저를 아주 얕보지는 마십시오. 시집 『울음이 타는 가을江』이 서울대학교 인문학부 필독도서로 선정된 적도 있었다니까요?

 

제가 박재삼 시인을 얼마나 좋아하느냐 하면, 그의 모든 시를 이 블로그에 옮겨놓고 싶을 지경이라면 말 다하지 않았습니까? 그 욕심을 누르고 시집 『울음이 타는 가을江』에 들어 있는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인용합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江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니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가는  소리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겠네.

 

 

저 창문으로 내다보인 어제의 저녁노을도 朴在森, 그분의 시처럼 추억과 고독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냥 마치기가 아쉽습니다. 딱 한 편만 더 읽어보겠습니다. 어제의 저녁노을 얘기를 했으니까 ‘서러운 노을빛’(!) 이야기가 나온 시입니다.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뻗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뒤로 뻗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前生의 내 全설움이요 全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노을빛

서러운 노을빛

이 서러운 노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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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신(等神)이란 귀신이 아니고(귀신이면, ‘귀신같이 알아낸다’는 말이 있듯이 대단한 사람이겠지만), 나무, 돌, 흙, 쇠 따위로 만든 사람의 형상이라는 뜻으로,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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