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뒤로는 구릉이 펼쳐져 있고, 구릉의 대부분은 꽃밭과 풀밭, '사색의 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넓게 펼쳐진 그 구릉의 관리를 위해 아이들이 동원되는 일은 없습니다. 꽃밭과 풀밭은 웬만하면 그냥 두어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잘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그 넓은 구릉을 교사 '파란편지'가 혼자서 다 관리합니다. '파란편지'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부분은 꽃밭이나 풀밭, '사색의 길'이 아니고 관목림과 자작나무숲, 저 아래 평지로 이어지는 코스모스꽃밭 같은 특별한 곳들입니다.
꽃밭이나 풀밭, '사색의 길'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색의 길'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아니냐?"고 따졌을 때, '파란편지'는 그 비난에는 대꾸도 하지 않다가 "아이들이 혼자서 혹은 두세 명이 산책을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자"고 제안해서 이루어진 길고 긴 오솔길이 바로 그 '사색의 길'입니다.
'사색의 길'이라고 해서 그 길을 새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파란편지'가 그냥 '사색의 길'이라는 조그마한 팻말 하나를 붙여놓았을 뿐인데, 아이들은 그날부터 진짜로 사색을 하며 그 길을 걷기 시작했고, 여러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분위기가 공연히 붕 뜨거나 어떤 아이가 소란을 피우거나 싸움을 하는 아이가 생기면 당장 그 '사색의 길'로 나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 관목림 옆에서 '앞으로 이 구릉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한 것들을 메모하고 있는 '파란편지' 옆으로 한 여학생이 그 애의 어머니와 함께 지나가다가 인사를 합니다.
여학생은 그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언 3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게 된 것입니다. '파란편지'는 그 여학생의 진로에 관심이 깊습니다. 착하고 성실한데다 그 애의 어머니는, 집안이 매우 가난하지만 딸의 교육에 혼신의 힘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너무 인색하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딸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결의에 차 있습니다.
'파란편지'는 그 아이의 진로에 대해 무언가를 부탁하고 다시 관목림의 상태를 살펴봅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가는 그 구릉의 아름다움이 아늑하고 포근합니다.
어젯밤 꿈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오랫동안 내 꿈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교육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1993년부터 2~3년까지는 제자들이 꿈속으로 자주 찾아왔습니다. 그런 날 새벽에는, 간밤에 내 잠꼬대를 지켜본 아내가 아직도 아이들 꾸중하는 꿈을 꾸는지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그런 꿈을 꾸었으니까 그런 날에는 눈물을 감추거나 참고 내가 맡은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일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 꿈을 꾸지 않게 되었고, 꿈이래야 우중충한 흑백 꿈만 꾸었는데, 지난해에 퇴임을 하고 나니까 그런지 요즘 들어 다시 꿈에 그 아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꿈들이 천연색 꿈이 되었습니다.
어젯밤 꿈은 너무나 하고 싶은 일이고 게다가 꿈속에서지만 옛 제자 한 명도 만난데다가 그 꿈이 천연색이어서 꿈을 꾸는 동안 참 행복했습니다.
"아이들" "아이들" 하고 썼지만 사실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을 1971학년도부터 졸업시키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나이가 오십이 넘은 제자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들에게 미안합니다. 내 꿈속 그 아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양해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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