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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168

이름붙이기 이름붙이기 Ⅰ 어느 전철역에서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은 작은 전시회를 보고 핸드폰으로 찍어둔 사진입니다. 무제(無題)…… 이런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이 작품에 '무제'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해준 분의 따듯한 마음을 헤아려보기도 했고, 제가 담임했던 그 아이도 떠올렸습니다. 그도 이미 50대이니 오래 전입니다. 자주 싸우고 말썽을 피우는 그 아이의 도화지는, 무슨 심보였는지 물감을 덕지덕지 쳐발라서 온통 거무티티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마음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리라고 하니까 펴놓았지만, 그림은 무슨 그림……' 기억으로는 그 아이의 가정환경은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각자가 그린 그림을 분단별로 칠판 앞에 세우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는 그.. 2010. 10. 25.
생각 안하는 연습은 노동 "생각 안하는 연습은 노동" SK가 2010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어느 신문은 한 면 가득하게 "용이 승천하는 사이… 사자는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작은 제목들은 '김성근 감독 지독한 훈련… SK 준비된 우승' '생각 안하는 연습은 노동' '꼼꼼한 정보 분석도 한몫' 등이었습니다. '생각 안하는 연습은 노동'…… 정말 그렇지 않겠습니까? '노동'이라고 표현된 그 말의 개념을 '단순노동', 아무런 생각 없이 수없는 몸놀림만 되풀이해야 하는, 생각을 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많은 보수를 준다 해도 지겨워서 못하겠다고 할 단순노동쯤으로 해석한다면. 기사 중에서 한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1 SK는 역시 강했다. 플레이오프 혈전을 치르며 체력을 소진한 삼성은 .. 2010. 10. 20.
아무리 바꿔도 별 수 없었던 대입전형(2010.10.15) 아무리 바꿔도 별 수 없었던 대입전형 대입전형 방법이 또 바뀔 것 같다. 현행 상대평가 방식의 내신제도를 2014학년도부터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바뀌면 학부모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얘야, 넌 나와 달리 학교생활을 재미있게 열심히 하기만 하면 지나친 경쟁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게 된단다”. 그 장담은 당연히 부모나 교사로서의 신뢰를 담은 약속이어야 한다. 그러나 경험으로는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대입제도 변천은 늘 현안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고, 그때마다 당연한 듯 다시 새로운 문제점을 드러냄으로써 정부는 더욱 심층적인 연구로 정교한 정책을 내놓으면서도 “또 바꾼다”는 비판만 받아왔다. .. 2010. 10. 19.
학교에 항의하기(만화감상) '학교에 항의하기'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은 오랜만에 교육을 소재로 한 만화가 눈에 띄여 이것 좀 보시라고 그랬습니다(조선일보 게재 만화). 재미있게 보셨습니까? 나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우선 이 세상에 만화가들처럼 낭만적(?!)인 사람이 많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합니다. 만화의 주제는 어떻습니까? 자녀를 큰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시키기를 주저하는 학부모들도 있고,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시키기를 주저하는 학부모들도 있다는 건 이미 소문 축에 들지도 않습니다. 나는 이 만화에서 저 아빠가 학교에 전화하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바로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이거나 그 친구가 아닐까,.. 2010. 9. 17.
독도의용수비대 국정교과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서입니다. 옛날과 딜리 교육부 직원들이 직접 책을 쓰지는 않고 연구기관 또는 대학 등에 위탁하여 편찬합니다. 국정교과서 뒤의 판권 페이지에는 연구진과 집필진, 심의진도 표시되고, 그 연구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도 들어가게 됩니다. 전에는 교육부 담당자가 심의진에도 들어가고 심지어 집필진에도 들어갔습니다. 말하자면 담당자는 연구, 집필, 심의 등 모든 면을 다 책임지고 일 처리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회과 교과서 담당자로 일할 때는 형식적으로 제 이름을 넣은 것이 아니라 저도 상당 부분을 집필했습니다. 제6차 교육과정 때의 사회과 교과서는 한국교육개발원 사회과연구실에서 편찬했는데, 6학년 2학기 '세계의 여러 나라' 단원은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제.. 2010. 9. 16.
외손자 선중이 Ⅶ-수행평가 0점- 무슨 수행평가가 있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려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빵점을 맞았다고 하더랍니다. 그 시간까지 어떻게 참았을까요. 제가 가지고 간 준비물은 뒤에 앉은 아이에게 빌려주고, 자신은 짝꿍의 것을 함께 썼는데, 선생님께서 누구의 것인지 묻고는 0점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 녀석은 선생님께 왜 그 사연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 녀석의 준비물을 쓴 그 뒤의 아이는 왜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을까?' - 옆의 아이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교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학부모의 입장이니까 그런 얘기를 할 입장이 아닙니다. 녀석의 외조모와 어미가 그 문제에 대해 전화로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알게 됐으면 됐.. 2010. 9. 15.
아, 일본!-깊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얘기- 아, 일본!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얘기- 일본 내각회의는 지난 10일, 우리의 독도를 저희들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한 방위백서(防衛白書)라는 걸 승인하여 발표했답니다. 도대체 일본인들은 어떤 근거로 우리의 독도를 저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학자들이 설명하는 걸 읽어보면,1 일본은 독도가 무주지(無主地)였기 때문에 저희가 선점(先占)했으므로 국제법상 ‘무리 없는’ 저희들의 땅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일 아닙니까? 사실은, 저들은 1904년 당시 국운(國運)을 걸었던 러일전쟁을 하면서 독도에 러시아 군함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한 망루를 설치하려고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비밀리에 영토 편입을 결정하고 그해 2월 22일, 시마네현 현보(縣報)에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 2010. 9. 14.
성적을 떨어뜨리는 수준별 이동수업? (2010.9.10) 제7차 교육과정은 교과서만 있으면 교육이 되는 게 아니라 ‘교육과정’이라는 기준과 수준별 수업 같은 교육방법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다. 그 7차 교육과정의 적용을 앞두고 있던 2001년 어느 날, 한 방송국에서는 ‘수준별 수업,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ARS(전화 자동응답 서비스)를 통한 청취자들의 찬반 비율까지 소개한 적이 있다. 대학입시 대비를 목적으로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누고 일 년 내내 고정 운영하는 우열반 편성과 학생들이 수준에 맞는 강의실을 찾아가는 수준별 이동수업이 동일한 수업형태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토론에서 한쪽은 그동안 경험한 우열반 운영의 온갖 폐해를 지적하고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면 교실현장이 더욱 황폐화할 것이 뻔하니까 절.. 2010. 9. 10.
외손자 선중이 Ⅵ 지난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녀석이 날씨가 무더운데도 제 산책길을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 모두들 시장에 가고 둘이서 남아 있었습니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나아가며 불안해하는 것 같았으나 ○○초등학교까지만 갔다가 돌아온다니까 그 학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좀 안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초등학교’ 하면 어느 동네에서나 그리 불안해할 만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었을까요? 땀을 흘리며 돌아오는 길에 녀석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매일 이렇게 걸어야 해?” “그럼,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어. 그래 저녁 얻어먹고는 매일 저녁 이렇게 해.” 그러자 녀석이 다른 걸 가지고 대화를 잇습니다. “얻어먹기는 뭘 얻어먹어요!” “왜?” “할머니가 부인이잖아요.” “……” 뭐라고 하며.. 2010. 9. 9.
그 아이가 보낸 엽서와 음악 그 아이가 보낸 엽서와 음악 예전에 교장실 청소를 하러 오던 그 아이입니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등대'라는 제 닉네임을 지어준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교장실에 오면 청소를 하는 시간보다 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책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교장실 청소는 하면 더 좋고, 안 해도 별로 표가 나지 않아서 오고 싶은 날만 오는 아이도 있고, 그 아이처럼 매번 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까 질서와 규칙도 지켜야 하고 누군가 청소도 해야 하지만,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가도 좋고 가지 않아도 좋고, 가서 청소하고 싶은 날은 가고, 바쁜 일이 있거나 약속이 있거나 하면 누구에게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고, 그게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지 그 아이들이 지.. 2010. 9. 8.
교과서의 창의성·다양성(Ⅳ) 교과서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Ⅳ) ☞ 「교과서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Ⅲ)」에서 계속 Ⅳ. 요 약 교과서나 수업활동에서 창의성과 다양성의 개념은 오래 전부터 교육목표 설정의 기본관점으로 수용되어 왔으며 지식기반사회·지식정보화사회의 교육에서는 물론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더욱 필수적인 교육의 가치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교과서의 창의성·다양성 구현은 동일한 교과목에 대한 여러 종의 교과서를 대상으로 검토될 수도 있고 하나의 특정 교과서 내에서도 논의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대학입시 준비에 치중하는, 혹은 지식 전달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현장에서는 교과서의 창의성·다양성 추구가 그 절대적인 가치에 비해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지 의심.. 2010. 9. 7.
외손자 선중이 Ⅴ-가슴아픈 사랑 제 가족들은 제가 외손자에 대해 한없이 너그러운 걸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만큼 까다롭고 별난 성격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녀석에게 유별나게, 한없이 너그러운 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한번도 용서 받아보지 못했던 것 같은 저의 가혹한 어린 시절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용서해주지 못한 제 지난날이 너무나 피곤하고 삭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철이 들고부터는 누가 제 잘못이나 제 단점을 지적했을 때 한번도 뜸을 들이거나 잘 생각해보겠다며 제 반응을 유보해본 적이 없습니다. 결단코 없습니다. 두고두고 혼자서 속을 끓이더라도,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게만 볼 수는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저는 결코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으며, 당장 제 잘못만 들어 사과하지 않은 적이 .. 2010.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