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수행평가가 있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려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빵점을 맞았다고 하더랍니다. 그 시간까지 어떻게 참았을까요.
제가 가지고 간 준비물은 뒤에 앉은 아이에게 빌려주고, 자신은 짝꿍의 것을 함께 썼는데, 선생님께서 누구의 것인지 묻고는 0점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 녀석은 선생님께 왜 그 사연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 녀석의 준비물을 쓴 그 뒤의 아이는 왜 입을 닫고 가만히 있었을까?'
- 옆의 아이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교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학부모의 입장이니까 그런 얘기를 할 입장이 아닙니다.
녀석의 외조모와 어미가 그 문제에 대해 전화로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알게 됐으면 됐다. 괜찮다. 그런 경험을 해봐야 다음부터는 제 앞가림부터 잘 할 것 아니냐?"
대충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둘이서 의기투합(?)이 되었으므로 나야 뭐 말없이 듣기만 했지만, 그럴까요? 그게 중요한 걸까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면 그런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까?
의기가 투합된 두 사람이 들으면 또 하나의 야단이 날 일이지만, 교장까지 해본 사람이 저 모양이라는 핀잔을 들을 게 확실하지만, 나로서는 녀석이 다음에도 또 그런 준비물을 남에게 빌려주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렇게 빌려주고도 마음이 상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제 어쭙잖은 책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시험지를 보여주며 살게 하면 안 될까」
…(전략)…
1학년을 담임하면, 3월에는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종합적인 지도를 하고, 4월이 되면 교과서에 따라 학습을 진행하게 된다. 이때,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은 물론 교사들까지 ‘받아쓰기’에 큰 관심을 갖게 된다. 하기야 대부분의 공부는 우선 글자부터 익혀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1학년 아이들은 참 자유분방하여 잘 지도하지 않으면 제대로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별별 짓을 다하여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대체로 5, 6월경이 되면 기가 막히게 조용해지고 말도 잘 듣게 되므로, 1학년 담임을 맡아서 3, 4월만 잘 넘기면 그 후에는 의도대로 지도해 나갈 수 있고 한 해 ‘농사’를 잘 짓게 된다고 할 정도로 3,4월에는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가도 2교시만 마치면 배가 출렁출렁하게 된다. 이럴 때 도저히 어쩔 수가 없으면 “자, 이제 받아쓰기를 해보자.”하면 신통할 만큼 조용해진다. 그것은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자녀가 귀가하자마자 다짜고짜 “받아쓰기한 것 보자!”고 대들어 가방을 뒤져보게 되니까 아이들도 받아쓰기에는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받아쓰기의 위력은 그처럼 대단한 것이지만 아이들이 학교 생활, 특히 시험 보는 일에 적응하기 전에는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이웃에 사는 아이의 자리를 찾아가 답을 확인해보고 틀린 것을 바르게 써주는 아이도 있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했다.
"얘가 답을 틀리게 쓰면 얘들 엄마가 야단을 쳐요.“
“얘네 엄마 대단히 무서운데 선생님이 책임지겠어요?”
그럴 때 나는 이렇게 설명해주었을 것이다. “이것은 시험이므로 자기 힘으로 답을 써야 한다.”, “남의 시험지를 보거나 남의 도움을 받아 답을 쓰는 것도 물론 나쁜 짓이지만, 남을 가르쳐주는 것도 나쁜 짓이다.”
나는 아이들이 가능한 한 바른 답을 쓰도록 가르쳐야 하지만, 그 아이들이 제아무리 잘 해도 모든 아이가 다 ‘수’를 받게 할 수는 없고 어차피 적당히 등급화해야 하는 의무 같은 것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해 주었겠지만, 세상에! 남의 도움을 받는 것, 남을 가르쳐주는 것이 나쁜 짓이라니……. 남을 돕는 당연한 행위를 ‘교육’의 이름으로 저지하다니!……. 사실은 “우리 반 애들은 모두 ‘수’를 받았습니다!”하고 외쳐보았자 믿어줄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 학생들이 배운 것에 점수를 매기려 하는 건 학교가 안고 있는 정말 심각한 문제야. 더 큰 문제는 그 점수가 과연 정확한가와 공부보다 점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야. 가령 어떤 아이가 ‘수’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은 전체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았느냐에 달려 있어. 그건 한 반에서 수를 받은 학생이 너무 많으면 안 되기 때문이란다. 만약 너무 많은 아이들이 ‘수’를 받으면 선생님이 문제를 너무 쉽게 냈다는 인상을 주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1등만 하려는 거야. 최고에 속하지 못하는 나머지 아이들은 적어도 자기와 비슷한 아이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점수를 받으려고 애쓰고, 이렇게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들과 치열한 시합을 벌이고 있단다. 특히 자기 능력 밖의 일에까지도 말이야.1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아이들은 시험 시간에 남을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는 내 설명은 ‘들으나마나’였다. 내 어쭙잖은 설명쯤이야 그 친구애가 혼이 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이 아이들이 경쟁 심리를 갖게 할 수 있나 궁리를 하게 되었고, 드디어 책상 가운데에 가방을 올려놓으라는 지시까지 하면서 아이들이 서로 도와가며 공부하는 것을 막으려는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남을 도와주는 일을 막음으로써, 남을 도와가며 사는 일에 인색한 아이들, 성적에만 집착하는 아이들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험난한 것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입학 초기의 아이들이 아무리 남을 돕고 싶어 하고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싶어 해도 시간은 내 편이 되어 주었으므로 나는 차츰 아이들에게 ‘공부벌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가르치게 되고, 남을 돕는 일보다는 남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차근차근 주입시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 에세이는 필자를 성적에만 집착하는 공부벌레로 보이게 한다. 여러 차례 필자는 목표가 “A학점으로 과목을 이수하는 것”이라고 썼는데, 이런 말은 불필요하며 지원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왜 이 학생은 우등생이 되는 데 그리도 집착할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어서? 아니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그도 아니라면 학업을 자랑하기 위한 걸까?2
하버드 대학 입학 지원 에세이를 평가한 교수는 성적에 집착하는 학생의 에세이를 위와 같이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버드 대학이니까, 미국이니까 그런 것 아니냐?”, 이상해할 것 없다고 덮어두며 우리 학생들이 성적에 집착하는 것을 당연해하고 그렇게 하도록 조장하면서, 그렇지 못한 학생이 발견되면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한 학생, 인생의 낙오자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우리의 교육에서 흔히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것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지적 태도가 도덕적 가치를 손상시킨 직접적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기술적 진보가 인류에게 안겨 준 직접적인 위험 못지않게 ‘실제적’ 사고 습관이 인간 상호간의 배려를 질식시키는 것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실제적 사고 습관은 지금 인간관계에 된서리처럼 내려앉아 있습니다.3
우리 학생들에게 맞고 틀림을 구분하지 않는 시험, 그 결과로써 능력의 유무나 수준을 단정하지 않는 시험,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시험도 보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선발 시험이 아닌 시험, 그것도 안 된다면 평상시의 학습에서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 시험을 보기 전에 우선 이런 것부터 가르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와 같이 공부하고 있는 내 친구들은 모두 긍정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다.’ ‘이 아이들은 모두 나만큼 잘난 아이들이고 소중한 아이들이다.’ ‘모두 사귈 만하고 어울릴 만하다.’ …….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당연한데도,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가 비정상이기 때문인가, 아이들이 비정상이기 때문인가.
…(후략)…
...............................................................
- 하르트무트폰헨티히․강혜경옮김,『왜 학교에 가야 하나요?』(비룡소,2003),96~97쪽.
- HarvardCrimson․민선식옮김,『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 표현은 어떻게 다를까? 50 Successful Harvard Application Essays』(조선일보사,2003), 101쪽.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홍수원, 구자현 옮김,『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중심,2003), 73쪽(1951년의 서한에서).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물 (0) | 2010.10.14 |
---|---|
삶, 이 미로… (0) | 2010.09.27 |
외손자 선중이 Ⅵ (0) | 2010.09.09 |
그 아이가 보낸 엽서와 음악 (0) | 2010.09.08 |
노인방치 VS 자녀와 놀기 (0) | 2010.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