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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눈물

by 답설재 2010. 10. 14.

시름시름 앓으며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은 올해는, 지난 봄부터 아파트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목소리 속에 자꾸 30여 년 전 제 맏딸이 깔깔거리며 무언가를 외치던 그 소리가 섞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긴 하지만,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던 아무 생각없이 살아도 되던 괜찮던 그 때가

이렇게나 그립습니다.

   

삼성미술관 Leeum(2005), 『이중섭 드로잉: 그리움의 편린들』, 133쪽에서.

 

  

두 번째의 수술대 위에서 흘린 눈물 속에는 자신의 한심함 때문에 참는데도 솟아오르던 그 눈물 속에는, 영국에서 잠시 귀국했던 그 아이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오랫동안 고3병을 앓았습니다. 고3병은 고3 때만 앓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고3병을 앓았습니다. 올해로 39세인 그 아이는 지금도 그 병을 앓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 교육의 병폐를 더욱더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유니세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끝내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며 캠브릿지에서 2년 2개월만에 -우리나라에서라면 2년 2개월만에 석박사 과정을 마치게 해주었을까요?- 국제교육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왔고(석사과정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했지만 캠브릿지에서는 그걸 인정해주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얼른 석사과정을 하고 박사과정으로 들어갔답니다), 2007년 여름에는 ○○부 국제교류업무 계약직 사무관 공개채용 시험에서 2위(최종단계에서 낙방)를 하고는 다시 영국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시험은 서류전형, 영어시험, 국제업무처리 적성을 보기 위한 토론, 면접 등 4단계로 실시되었다는데, 마지막의 면접장에는 바로 그 ○○부의 6급 직원과 그 아이만 있었다니까 누가 어떤 설명을 해준다 해도 저로서는 그 아이가 들러리를 선 것으로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 아이가 둘러리를 섰다는 건 이 세상에서 딱 한 명 '바보'인 저만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필이면, 혹은 공교롭게도 그렇게 되었을까요? 오늘(10월 14일)은 그 ○○부에서 인사쇄신안을 발표했습니다.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다 소용 없는 일입니다. 그건 장관 시켜주려 하니까 떼어먹은 세금 다 내겠다고 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제가 그 아이를 이 나라로 돌아오라고 할 이유가 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자신이 교육자이면서도 대학입시 위주인 우리 교육, '무한경쟁'으로 몰아가는 우리 교육의 병폐를 '아주아주' '지긋지긋하게' 혐오하는 사람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인재 선발 행태를 혐오하는 사람이 되었고 -지금은 어떻습니까? 예전에 교육감들이 인사를 하던 행태 좀 생각해보십시오. 다 그렇지는 않았습니까? 일부만 그랬습니까? 그럼 다 그런 일이 세상에 뭐가 있습니까? -지난 추석연휴의 병원에서는 그런 채로 눈을 감을 수도 있게 된 자신의 한심함 때문에 울었습니다. 한심함의 이유는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제가 병원에 실려간 날 귀국한 그 아이는 3주만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여러 번 그 아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중섭 드로잉: 그리움의 편린들' 전시회는 2005년 5월 19일부터 8월 28일까지 삼성미술관 Leeum에서 열렸습니다. 서러운 이중섭…… 

 

아무것도 실리지 않는 이 블로그에 자꾸 들어와보셔서 미안한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얼마쯤 더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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