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시름 앓으며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은 올해는, 지난 봄부터 아파트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목소리 속에 자꾸 30여 년 전 제 맏딸이 깔깔거리며 무언가를 외치던 그 소리가 섞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긴 하지만,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던 아무 생각없이 살아도 되던 괜찮던 그 때가
이렇게나 그립습니다.
두 번째의 수술대 위에서 흘린 눈물 속에는 자신의 한심함 때문에 참는데도 솟아오르던 그 눈물 속에는, 영국에서 잠시 귀국했던 그 아이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오랫동안 고3병을 앓았습니다. 고3병은 고3 때만 앓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고3병을 앓았습니다. 올해로 39세인 그 아이는 지금도 그 병을 앓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 교육의 병폐를 더욱더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유니세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끝내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며 캠브릿지에서 2년 2개월만에 -우리나라에서라면 2년 2개월만에 석박사 과정을 마치게 해주었을까요?- 국제교육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왔고(석사과정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했지만 캠브릿지에서는 그걸 인정해주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얼른 석사과정을 하고 박사과정으로 들어갔답니다), 2007년 여름에는 ○○부 국제교류업무 계약직 사무관 공개채용 시험에서 2위(최종단계에서 낙방)를 하고는 다시 영국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시험은 서류전형, 영어시험, 국제업무처리 적성을 보기 위한 토론, 면접 등 4단계로 실시되었다는데, 마지막의 면접장에는 바로 그 ○○부의 6급 직원과 그 아이만 있었다니까 누가 어떤 설명을 해준다 해도 저로서는 그 아이가 들러리를 선 것으로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 아이가 둘러리를 섰다는 건 이 세상에서 딱 한 명 '바보'인 저만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필이면, 혹은 공교롭게도 그렇게 되었을까요? 오늘(10월 14일)은 그 ○○부에서 인사쇄신안을 발표했습니다.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다 소용 없는 일입니다. 그건 장관 시켜주려 하니까 떼어먹은 세금 다 내겠다고 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제가 그 아이를 이 나라로 돌아오라고 할 이유가 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래서 자신이 교육자이면서도 대학입시 위주인 우리 교육, '무한경쟁'으로 몰아가는 우리 교육의 병폐를 '아주아주' '지긋지긋하게' 혐오하는 사람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인재 선발 행태를 혐오하는 사람이 되었고 -지금은 어떻습니까? 예전에 교육감들이 인사를 하던 행태 좀 생각해보십시오. 다 그렇지는 않았습니까? 일부만 그랬습니까? 그럼 다 그런 일이 세상에 뭐가 있습니까? -지난 추석연휴의 병원에서는 그런 채로 눈을 감을 수도 있게 된 자신의 한심함 때문에 울었습니다. 한심함의 이유는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제가 병원에 실려간 날 귀국한 그 아이는 3주만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여러 번 그 아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중섭 드로잉: 그리움의 편린들' 전시회는 2005년 5월 19일부터 8월 28일까지 삼성미술관 Leeum에서 열렸습니다. 서러운 이중섭……
아무것도 실리지 않는 이 블로그에 자꾸 들어와보셔서 미안한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얼마쯤 더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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