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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삶, 이 미로…

by 답설재 2010. 9. 27.

 

 

 

삶, 이 미로…

 

 

 

  모처럼 하늘이 저렇게 푸릅니다. 어릴 때 고향에서 보던 그 하늘이구나 싶었습니다.

  둘째 딸이 전화로 그러더랍니다. "아빠에게 전해줘요. 하늘이 저렇게 맑은데 죽어서 되겠는지."

 

  때때로 가슴이 울렁거리고 몸이 어지러워지는 그 증상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해서 몸을 자꾸 움직입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쓰러지고 말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걸어다닙니다. 이렇게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세월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프지 않고 지낼 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추석 연휴 동안 저 아래 중앙공원에서 열리는 풍물시장에 하루 두 번씩 다녀옵니다. 그 시장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지난 18일(토) 오후에 인천공항에 나갔더니 아, 이런! 영국 사는 첫째 딸이 오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A항공사의 그 직원이 우리 내외의 모습을 보더니 다음날 그 시각의 탑승자 명단에 들어있다는 걸 암시해 주었습니다.

  19일(일)에 다시 나가서 그 애 내외를 데려왔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피곤해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습니다. 돈은 더 들어가지만 직항으로 오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10시 경에 방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지러질 것 같았습니다. 다시 옷을 입고, 물도 마셔보고, 책도 읽어봤지만 아무래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러는 아내에게 바늘을 찾아 손가락을 찔러달라고도 했고, 갑자기 추워져서 와들와들 떨어대기도 했습니다.

  초저녁에 들렀던 아들이 다시 돌아와 병원으로 싣고 갔습니다.

 

  20일(월) 오전 8시, 검사가 이루어지고 이어서 내 핏줄에는 다시 철망이 들어갔습니다.

  철망을 끼울 준비를 하는 동안 이번에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참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이 너무 한심했습니다.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갔을 때 울었으니까 참으로 오랫만의 눈물이었습니다.

 

  지난 7월 어느 날,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폭풍우가 심한 날 파도에 뒤집어질 것 같은 배 같다고 하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살면서 얻은 '화'라는 걸 아내가 이야기해서 알았습니다. 아내는 내 사정을 다 모르면서도 그렇게 짐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로부터 딱 두 달, 이렇게 된 것입니다.

 

  21일(화) 오후 비가 많이 오는 그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내 눈치를 보더니 부랴부랴 22일 아침의 차례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차례를 지낼 형편이 아니어서 아들과 앤드류가 나를 대신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가슴에 철망을 집어 넣었는데도 이렇게 일렁이고 있으므로 이 가슴은 언제 그 수명이 다하게 될는지 이젠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발 그만 아프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지난 23일에 써놓은 '노년일기'의 '병고에 시달리며'를 가져와서 '삶, 이 미로'로 고쳤습니다. '노년일기라니……' 하시겠지만 저로서는 그렇습니다. 양해하시면 좋겠습니다. 힘이 들어서 며칠간 이 편지를 쉬겠습니다. 생각으로는, 빨리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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