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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외손자 선중이 Ⅵ

by 답설재 2010. 9. 9.

지난 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녀석이 날씨가 무더운데도 제 산책길을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 모두들 시장에 가고 둘이서 남아 있었습니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나아가며 불안해하는 것 같았으나 ○○초등학교까지만 갔다가 돌아온다니까 그 학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좀 안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초등학교’ 하면 어느 동네에서나 그리 불안해할 만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었을까요?

땀을 흘리며 돌아오는 길에 녀석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매일 이렇게 걸어야 해?”

“그럼,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어. 그래 저녁 얻어먹고는 매일 저녁 이렇게 해.”

그러자 녀석이 다른 걸 가지고 대화를 잇습니다. “얻어먹기는 뭘 얻어먹어요!”

“왜?”

“할머니가 부인이잖아요.”

“……”

뭐라고 하며 대화를 잇기가 좀 서글프기도 하고, 어쨌든 대답을 하기가 난처하기도 하고, ‘얘가 이런 생각도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

 

 

말썽을 부려 제 어미에게 종아리를 수없이 맞았다고 한 지가 며칠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렇게 많이 맞았는지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50대를 맞았느니 어땠느니 한 것 같았습니다. 이런 소리 하는 걸 알면 펄펄 뛰겠지만 더위가 심해서 제 어미가 과열된 건 아니었을까요?

전화가 왔기에 녀석이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더니 매를 댄 건 감추고 참 착하게 지낸다고만 했습니다. 그것도 여기를 다녀가면 그렇게 된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만 다녀오면 참 착해지네?”

그랬더니 이러더랍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랑해주시니까요.”

“아니, 네 아빠나 나도 널 사랑해주지 않아?”

그랬더니 또 이러더랍니다. “달라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끈질기게 사랑해줘요.”

그래서 전 결심했습니다. '그래, 알았다.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고 지냈지만 세월의 허락 안에서는 내가 널 끈질기게 사랑해줄게.'

 

 

3학년 2학기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좀 침착해져야 하고, '오버'하지 않아야 하고, 신중하게 처신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 녀석이, 부끄럽지만 절 닮은 데가 많아서 결코 그렇지 못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외손자 선중이와 이 동네 홍중이(참 별종인 아이들)」(2008.11.13)에서도 썼지만, 그애 방에는 제가 목판에 새겨준 경구(警句)가 걸려 있습니다. 제 손으로 새긴 건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합니까. 도장을 만드는 곳에 부탁해서 만든 것입니다.

“한 번 더 살펴보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저는 녀석이 아직 두세 살이었을 때 그걸 가지고 가서 이렇게 부탁했었습니다.

“나 죽고 나서도 저 녀석이 저렇거든 저걸 떼어내지 말고 가훈(家訓)이나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게 해라.”

그걸 붙여놓았다고 녀석의 행동이 쉽게 변한다면 교육이란 게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그러니 붙여놓았다고 안심할 수는 없고 차근차근 부탁도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선중아. 할아버지가 부탁이 있다. 네가 날 닮아서인지 좀 가볍고, 음…… 경솔하고…… 그러면 남에게 실컷 잘 대해주고는 결국은 좋은 소리 듣기 어렵고, 음 ……”

이래선 안 될 것 같지요? 그럼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것 보세요. 어디서든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녀석

 

이런 걸 많이 하면 직성이 풀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