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그 아이가 보낸 엽서와 음악

by 답설재 2010. 9. 8.

 

 

 

그 아이가 보낸 엽서와 음악

 

 

 

  예전에 교장실 청소를 하러 오던 그 아이입니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등대'라는 제 닉네임을 지어준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교장실에 오면 청소를 하는 시간보다 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책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교장실 청소는 하면 더 좋고, 안 해도 별로 표가 나지 않아서 오고 싶은 날만 오는 아이도 있고, 그 아이처럼 매번 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까 질서와 규칙도 지켜야 하고 누군가 청소도 해야 하지만,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가도 좋고 가지 않아도 좋고, 가서 청소하고 싶은 날은 가고, 바쁜 일이 있거나 약속이 있거나 하면 누구에게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고, 그게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지 그 아이들이 지금쯤 그걸 알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가 저에게 다녀갔습니다. '아주 귀한 손님'은 점심을 함께 먹고 시간이 괜찮다면 교보문고에 가서 좋아하는 책이나 음반을 사줍니다. 그러면 두 시간이 걸립니다. 강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 아이는 그 '귀한 손님'이기 때문에 건너편 중국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세익스피어 대역본 한 권,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 한 권을 사주었습니다. 아이답지 않은 선택이라고 느꼈지만 '이 아이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나 저나 건강이 '별로'여서 중국음식 중에서 아주 기름진 것은 먹지 못했기 때문에 겨울에 만나면 더 좋은 걸 먹자고 했습니다. 요즘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약속>을 잘 하지 않지만 그 아이에게는 그걸 했습니다. 겨울이니까 왠만하면 그 약속쯤이야 간단할 것 같았으니까요. 그 아이가 그 책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가 보낸 음악은 피아노 연주였습니다. july-my soul……

묘한 멜로디였습니다.

'지금 내 상태를 알고 보낸 걸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좋다고 보낸 걸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