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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그 나라엔 과외가 없어요"

by 답설재 2010. 8. 25.

비가 자주도 내립니다.

포리스트힐이라는 마을의 계단을,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손자를 앞세우고 할아버지가 뒤따라 올라가며 묻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려 학원 앞까지 우산을 가지고 갔겠지요.

"그 나라에서도 이렇게 늦게까지 공부했니?"

"아니오. 그곳엔 과외가 없어요."

손자가 대답했습니다. 그 뒤의 대화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 손자가 '과외가 없는 나라'에 가 살다가 '과외가 있는 나라' '과외를 하지 않으면 거의 견딜 수 없는 나라'로 돌아온 모양입니다.

 

'과외(課外)'가 왜 없겠습니까? 과외란 정규 수업 이외의 학습활동이라면, 글쎄요, 전 세계적으로 과외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런 나라는 차라리 너무나 형편 없는 나라여서 살기가 그리 좋지 않은 나라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새 우리나라 과외는 그런 과외가 아닌 다른 종류의 '과외'가 되어버렸습니다. 피아노 학원 가는 건 "피아노 간다" "피아노 학원 간다"고 하지 "과외 간다"고 하지 않고, 태권도 학원 가는 걸 "태권도 과외 간다"고 하는 아이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건 사전에 용례(用例)가 나오지도 않을 것 같은 그런 용어가 된 것입니다.

 

그 손자가 부모를 따라 다녀왔을 '과외가 없는 나라'!

그런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교육 수준이 형편 없는 나라?

배울 것도 별로 없는 나라여서 앞으로의 세대가 어떻게 살아갈지 암담한 나라?

교육이 뭔지,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도 깨닫지 못한 멍청한 나라? ……

 

 

우리나라 학생들,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발표를 보고 언론에서는 "왜 자살률이 그렇게 높은지도 모르는 나라"라며 분개했습니다. 모르긴 뭘 모릅니까. 누가 모릅니까. 그것도 모르면 얼마나 한심한 일이겠습니까. 정말로 모른다면 그것도 모르는 그런 나라의 교육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래 신문기사(중앙일보, 2010.8.19) 스크랩 좀 보십시오.

지난 2월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정부의 사교육비 절감 정책이 효과를 거두었다"고 발표했고, 이어 8월 13일에도 "올 2분기 가구당 월평균 학원·보습 교육비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0.3% 줄었다"고 발표했는데, 그러한 발표의 근거가 되는 통계청 가계 동향 조사(2010.8.13 발표)를 보면 가구당 학원·보습비는 지난해(17만8032원)보다 588원 줄어든 17만7444원이었으며, 이를 학생과 성인 부문으로 구분해보면 학생 학원·보습비는 오히려 0.056%(94원)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입니다.

 

588원 줄었다는 거나 94원 늘었다는 거나,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지금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일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대응을 지켜봐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는 어디쯤 가고 있는 것일까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어디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앞장선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일까요?

 

 

 

 

 

 

 

 

 

쓸데없는 걱정인가요?  퇴임한 주제니까 걱정 말고 있을까요?  사실은 너무 한심해서 그래요.  높으신 분들 중에 누가 보시면 고깝게 여기지 마시고 그걸 좀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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