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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외손자 선중이 Ⅴ-가슴아픈 사랑

by 답설재 2010. 8. 30.

제 가족들은 제가 외손자에 대해 한없이 너그러운 걸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만큼 까다롭고 별난 성격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녀석에게 유별나게, 한없이 너그러운 건 사실입니다. 그것은, 한번도 용서 받아보지 못했던 것 같은 저의 가혹한 어린 시절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용서해주지 못한 제 지난날이 너무나 피곤하고 삭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철이 들고부터는 누가 제 잘못이나 제 단점을 지적했을 때 한번도 뜸을 들이거나 잘 생각해보겠다며 제 반응을 유보해본 적이 없습니다. 결단코 없습니다. 두고두고 혼자서 속을 끓이더라도, 생각해보면 결코 그렇게만 볼 수는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저는 결코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으며, 당장 제 잘못만 들어 사과하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인간의 일이라는 게 생각해보면 전적으로 제 잘못이거나 많은 부분이 제 잘못이 아닌 일이 그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그것과는 정반대로, 저는 제 외손자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쳐야 한다고 강력하게 나서는 제 어미와 그러한 견해에 얼마쯤 동조하는 제 외조모의 입장을 생각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들은 녀석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성격이나 태도에서 단점을 드러내면, 바로 제 단점을 생각하면서 "이걸 어릴 때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서슬을 세우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저것이 나 때문에 용서 받아도 좋을 일까지 용서 받지 못하며 지내는구나' 싶어지는 것입니다.

 

단 몇 시간을 함께한 날까지 치면 지난 여름방학에는 세 번을 만났습니다. 이런 마음 약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자꾸 '사람의 일이란 기약할 수는 없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어서 언제나 그 만남에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게 됩니다.

 

 

 

 

 

 

   

이 사진은 8월 11일(수요일) 오후에 녀석을 데리러 갔을 때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녀석은 저 사진을 냉장고 같은 곳에 붙일 수 있는 예쁜 자석 몇 개와 함께 제 주머니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날은 저녁 식사를 하고 산책을 나선 길에 축구공을 샀습니다. 제 외조모가 3만원을 주며 하나 사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얼마쯤이냐고 물었더니 만 원이면 충분하다면서 나머지는 돌려달라고 했지만 오히려 5천원을 보탰습니다.

문방구에는 세 가지 수준의 축구공이 있었고, 저는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태도로 세 가지 공을 비교했는데, 1만5천원짜리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고, 2만원짜리와 3만5천원짜리는 도저히 분간할 수 없었으면서도 한참만에 3만5천원짜리를 골랐습니다. 그 가게에서 당장 매직펜을 달라고 해서 아예 '김선중'과 '金宣中'을 새긴 후 곧장 장내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 어둑어둑할 때까지 축구와 농구를 했습니다.

 

12일에는 평내도서관에 올라가 일을 했습니다. 집에 있으면 그놈 때문에 컴퓨터를 마음놓고 쓸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척 더워서 에어컨이 좋은 도서관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아내의 조언도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에는 셋이서 만나 메밀국수를 먹긴 했지만, 오후에는 좀 일찍 귀가하며 떡볶이를 사다주었습니다. 낮시간 동안 함께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주문하고 서 있는 시간이 행복했고, 가게 아주머니가 얼른 마련해주지 않아서 초조하기도 했지만, 그걸 받아서 가지고 들어갔을 때 녀석이 콧노래를 부르며 먹었으므로 그 시간에도 행복했습니다.

저녁에는 축구공은 물론 창고에서 농구공까지 찾아가지고 다시 장내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올라갔지만, 겨우 찾아낸 제 외삼촌의 농구공은 25년쯤 바람이 빠질 대로 빠져 튀어오르지를 않았습니다. 게다가 운동장은 축구 경기를 하는 청년들이 황소떼처럼 씩씩대며 달리고 있어서 축구공으로 농구를 하다가 빗방울조차 떨어져 귀가하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13일 금요일입니다.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속설(俗說)도 있긴 하지만, 예감이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일찍 귀가해 봤더니 둘이서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웬지 불안한 마음으로 아파트 뒷길을 올라가다가 돌아오는 두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녀석이 반갑게 다가왔고, 제 외조모도 지친 표정이지만 반가워했으므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축구공, 농구공, 정구공 세 가지를 양파망에 넣어 가지고 둘이서 집을 나섰습니다. 인조잔디 운동장의 더위는 그 기세가 더욱 등등했으므로 평내도서관 어린이열람실에서 역사 만화 네 권을 본 후에 다시 그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녀석은 누가 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끈질긴 모습을 보였습니다. 잠깐 물을 마시기도 하고 땀을 닦기도 했지만 지쳐서 엎드려 있다가는 다시 일어나 드리볼과 슛을 한 시간도 넘게 했으므로 벤치에 앉아 있던 동네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걸 저는 그냥 두었고, 물을 주거나 땀을 닦아주기만 하며 바라보았습니다. '저게 왜 저럴까? 무슨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처럼……'.

 

드디어 돌아오는 길에 물었습니다.

"할머니와 싸우지 않고 지냈니?"

녀석은 대뜸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하도 가볍게 대답해서 그런 줄 알고 지나갔고, 너무나 지친 녀석은 그날만큼은 숙제를 하기 전에 샤워를 하자는 제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토요일 오전 녀석이 차를 가지고 온 제 아비와 돌아가고 난 다음, 금요일 오전에 일어난 일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말하기는 난처합니다. 이 글을 녀석이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떼를 써서 제 외조모로부터 호된 꾸중을 들었다는 것만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그 꾸중의 배경에, 제가, 서 있고 싶어서 서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미 그렇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래서 저는 그것이 녀석에게 한없이 미안하다는 것만 이야기해도 충분할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저는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떼를 써본 적이 없는데도 녀석이 잘못하는 건 당장 제 잘못인 것처럼, 저 때문에 그런 것으로 연결되는 느낌입니다. 녀석의 피 1/4이 제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그것이 가슴아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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