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교육과정은 교과서만 있으면 교육이 되는 게 아니라 ‘교육과정’이라는 기준과 수준별 수업 같은 교육방법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었다.
그 7차 교육과정의 적용을 앞두고 있던 2001년 어느 날, 한 방송국에서는 ‘수준별 수업,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ARS(전화 자동응답 서비스)를 통한 청취자들의 찬반 비율까지 소개한 적이 있다.
대학입시 대비를 목적으로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누고 일 년 내내 고정 운영하는 우열반 편성과 학생들이 수준에 맞는 강의실을 찾아가는 수준별 이동수업이 동일한 수업형태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토론에서 한쪽은 그동안 경험한 우열반 운영의 온갖 폐해를 지적하고 수준별 수업을 실시하면 교실현장이 더욱 황폐화할 것이 뻔하니까 절대로 실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안대로 실시하자는 측에서는 매우 단순한 논리였다. 미·적분을 척척 이해하는 학생과 방정식도 풀지 못하는 학생 등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알아듣든지 말든지 막무가내로 가르치기보다는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 가르치자는 걸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 성취도가 향상되면 상반에 편입될 수 있는 기회를 수시로 제공하면 성취동기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 대학입학에만 초점을 두는 우열반 편성이나 혼합 편성에 비해 훨씬 교육적이라고 설명했다.
양측의 주장이 각각 어느 정도의 설득력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ARS를 통한 의견청취 결과는 무려 78:22로 ‘수준별 수업을 실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수준별 수업의 원리가 마치 예방주사 효과처럼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할까요? 말까요?” 의견을 청취한 건 애초에 우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 수준별 이동수업을 위한 시책들을 확대 시행되어 오면서 이런 논쟁은 줄어들고, 중·고교의 경우 서울과 광역시에서는 85%, 도 지역에서는 76%가 시행하고 있으며 시행하지 못하는 학교는 대부분 교실과 교사 수 등 여건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수준별 이동수업 자체에 부정적이진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 박사학위 논문이 학습부진 학생들에게도 유리해야 당연할 수준별 이동수업이 오히려 역효과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했다고 한다. ‘학습부진 학생에 대한 수준별 하반 편성 및 특별보충수업의 교육적 효과’라는 주제의 이 논문은, 중2 때 학업성취도가 하위 20%에 속한 학생 6172명의 1년 뒤 성적 향상도를 따져봤더니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영어는 4점, 수학은 7점이나 낮았고, 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특별보충수업도 되레 성적을 떨어뜨린 분석이 나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가르치기보다 그 수준에 맞추어 알아듣기 쉽게 가르쳤더니 성적이 더 낮아졌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 세상에 나온 온갖 교육방법을 빠짐없이 실험해 봤으나 한 가지도 지속적으로 실천한 방법은 없고, 있다면 교과서와 칠판만 있으면 가능한 일제식 암기교육일 뿐이라는 비판이 있다. 한마디로 힘들이지 않고 실천 가능한 교육방법은 그것 외에는 없다는 이야기다.
수준별 이동수업을 실시하는 학교에 물어보고 싶다. 현실적으로 교사의 설명에 의존하는 교육에서 수준에 맞추어 설명하는 것이 왜 역효과를 나타내는가? 학생들은 하위그룹에 편성되는 걸 흔쾌히 수용했는가? 상위그룹으로 이동한 학생이 있는가? 어떤 교사가 담당했는가? 무엇보다도 그 수준별 이동수업이 우열반 수업이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한가?
그런데도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열심히 가르친다고 성적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혼합반을 편성해 우연에 맡기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수용하자는 것인가? 교육의 힘이 그만큼 미약하다는 걸 인정하자는 것인가?
수준별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좋다는 건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교육방법의 기초여서 ‘천자문’ ‘동몽선습’ ‘통감’ ‘소학’ ‘사서삼경’ 등을 읽고 쓰고 외우던 옛 서당에서도 이 원리는 철저히 지켰다. 그럼에도 역효과를 나타낸다면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그 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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