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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교육지표 세계 2위의 실상 (2010.8.27)

by 답설재 2010. 8. 27.

   

 

 

교육지표 세계 2위의 실상

 

 

 

  한 학부모가 고교생 자녀에게 사라져가는 발해 역사,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현장을 보여줄 기회를 갖게 됐다. 우리나라 고교생은 방학에도 그리 자유롭지 못하지만 방학을 며칠 앞둔 학기 중이라 체험학습을 신청하자 담임은 예측대로 난색을 보였고 마지못해 허가하며 각서를 쓰게 했다. 다시는 학기 중에 체험학습을 가지 않고 더구나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였다.

 

  체험학습은 초중등교육법시행령(대통령령, 제48조제5항)에 따라 실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각서까지 쓴 학부모나 당사자인 학생이나 그 여정 내내 마음이 불편했을 것은 당연하고, 담임인들 오죽해서 각서까지 쓰게 했을까, 그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게 우리나라 교육현장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교육지표 세계 2위인 나라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국가적 만족도를 측정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나라’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15위를 기록했으며, 교육과 경제적 역동성 부문은 각각 세계 2위와 3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 조사는 “지금 이 순간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면 건강하고 안전하며 적절히 부유하고 신분상승이 가능한 삶을 영위할 기회가 많을까”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며 이를 위해 ∙교육 ∙건강 ∙삶의 질 ∙경제적 역동성 ∙정치적 환경 등 다섯 가지 지표로 비교 평가했다고 한다. 이 조사의 교육부문에서 최근 교육에 관한 한 어떠한 조사연구에서도 1위를 놓치지 않는 핀란드에 이어 우리나라가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게 웬일인가’ 싶다면, 우리나라가 96.72점을 얻은 교육부문 평가지표는 바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과 ‘평균 교육기간’이었다. 구체적인 설명을 살펴보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의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교육투자가 큰 몫”을 했으며 “한국은 교육의 질과 학생들의 열정으로 유명한 나라” “학생들이 대학을 마칠 가능성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드는 나라” “학부모들은 자녀의 입시준비에 거액을 쓰는 관행으로 잘 알려져 있는 나라”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한국 교육이 세계 2위라는 뉴스의 제목에 자부심과 만족감을 갖기보다는 차라리 의구심을 갖고 기사를 분석하면서 ‘그러면 그렇지’ 평상심을 되찾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결코 자기 비하나 자조(自嘲)가 아니라 우리 ‘교육수준’이 아직은 도저히 세계 2위일 수 없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자칫하면 빠져들기 쉬운 자부심과 자만심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오바마가 거듭 “한국교육을 보라!”고 했어도 우리가 그 칭찬을 액면 그대로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사실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주당 49.43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1위(평균 33.92)이며, ‘삶에 만족’하는 아이가 두 명 중 한 명에 불과하고, 6명 중 한 명은 ‘외롭다’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 학생이 전년도에 비해 47%나 늘어난 200여 명이었으며 ∙가정불화 ∙성적 비관 ∙이성 문제 ∙집단 괴롭힘 등이 이유였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29%나 됐다고 한다. 이 나라 초·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매몰되는 현상이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을 당연한 일인 듯 방치하는 한 우리의 소중한 청소년들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입시열병을 앓으며 비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각서를 쓰고 중국을 다녀온 그 학부모와 학생은, 광개토대왕릉비와 장군총 등 수많은 고구려 유적과 발해 유적의 잔영을 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고, 장엄한 백두산의 모습을 보는 흥분과 감동에 위안을 느끼며 다음해에 다시 각서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우리 교육의 수준을 높이는 지름길은 그 학부모와 학생이 각서를 쓰지 않고 마음 놓고 여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 지름길에 교육과학기술부와 각 대학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정상적인 공부를 하는 다른 나라 학생들을 살펴보고 그걸 특징이라고 ‘수입’하여 다시 ‘규격화’하는 일을 그만두고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활동을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려 놓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