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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서남표 총장을 지켜보는 이유 (2010.7.16)

by 답설재 2010. 7. 16.

 

 

 

서남표 총장을 지켜보는 이유

 

 

 

  지난 6월 중순 KAIST 서남표 총장이 연임에 도전하면서 그 대학 총장 선출은 난항을 겪었다. 그가 추진해온 개혁과 프로젝트에 대해 한쪽에선 ‘개혁의 아이콘’, 다른 쪽에선 ‘내용 없는 독선’ 등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2006년 7월에 취임한 그는, 이전엔 탈락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교수 정년심사에서 4년간 심사대상자 148명 중 35명(24%)을 탈락시켰고,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100% 영어 강의를 의무화했다. KAIST의 모든 학생이 수업료를 내지 않는 무상교육제도를 고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당장 등록금을 내게 했고, 주로 특목고(과학고) 졸업생을 뽑던 입학전형도 바꿔 신입생의 16~18%인 150명을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선발했다.

 

  이러한 개혁의 영향을 ‘서남표 효과’로 부를 만큼 그 성과는 뚜렷한 것이었다. 개혁을 지원하는 기부금 1천223억원으로 새로운 연구 시설·설비를 마련했고, 반응이 엇갈리긴 했지만 온라인 전기자동차와 모바일 하버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적 원천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세계대학평가에서 232위(2005)였던 KAIST를 69위(2009)로 급상승시킨 것은 그의 실적에 대한 객관적 평가였다.

 

  그럼에도 그의 연임 도전이 난항을 겪게 되자, 언론은 당장 정년심사 과정에서의 그의 임의적 판단, 보직교수와 평교수 그룹의 차별, 독단적 일처리에 따른 불신과 소통 없는 리더십, 한국 과학계를 무시하는 태도 등을 꼬집었다. 또 MIT 기계공학과 학장 시절의 개혁성과를 비웃기나 하듯 개혁을 이루려는 리더라면, 우리나라 대학의 인간관계·풍토·문화가 미국 대학과 다르다는 것부터 인식해야 하고 교내외 과학계가 저항하지 않도록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런 화려한 실적보다 내부화합으로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능력부터 갖추어야 진정한 리더라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 덕목, 바로 그런 의식 때문에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그 요소를 뒤늦게 그에게도 주문한 것이다.

 

  여러 가지 진통을 거치긴 했지만 결국 이사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연임이 확정되자,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한국대학 개혁이 미국보다 더 힘들다”는 당연한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소통에도 힘쓰겠다고 발표했다. 그 미소와 발표 때문에 오히려 그의 교육개혁의 앞날에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이다.

  소통은 좋지만 그 미소처럼 모든 걸 흐지부지하고 말 수도 있고, 지난 4년보다 더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가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에도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자신의 미래와 직업에 대해 고민하며 성장하므로 어른들로부터 이것 해라, 저것 해라 강요를 받아 선택하게 되면 훗날 작은 고난에도 좌절하고 행복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교육관 중 하나다.

  머지않아 우리가 세계무대를 선도하는 과학기술로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들을 배출해내는 나라가 된다는 자신감도 보여주었다.

  그는 또 시간을 많이 투입할수록 유리한 무한경쟁의 우리나라 대학입시에 대해 “단 1점 차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비교육적인 사교육을 시키게 된다” “우리는 창의성, 사회성, 자기 독립성을 갖춘 학생을 면접만으로 뽑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선도했다.

 

  우리 교육은 새로운 교육정책과 허다한 제도를 잇따라 적용하고 다양한 이름의 수많은 연구·시범학교가 정해지는데도, 교육방법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교과서 내용 전달·암기로 끝없는 경쟁을 벌여야 하는 전통을 탈피하지 못하는 답답한 길을 가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보니 수업은 당연하다 하더라도 체험활동부터 운동·봉사활동·진로탐색·독서까지 치밀한 계획과 실적을 따지며 입시위주로 경험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그럼에도 대단하고 원만한 대학총장은 수두룩하지만 누구 하나 이런 교육을 고쳐보려 하지 않는 이 나라에, 그와 같은 총장이 있다는 사실은, 이 나라 초·중등교육을 우울하고 고달프게 느끼는 사람에겐 위안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KAIST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