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아직 ‘낙원’으로 남았나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 수많은 아이들이 벨소리에 맞춰 교실로 들어가고 쏟아져 나오는 학교, 책을 읽고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학교…… 학교의 아름답고 아늑한 모습을 설명하자면 끝이 없다.
그럼에도 학교는 지역공동체의 시설이므로 교육활동에 지장이 없는 한 주민들도 사용하게 하자는 것이 학교시설 개방의 취지이고, 이에 따라 교육청에서는 학교시설 개방 및 이용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시행을 권장하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공공시설이 부족한 지역사회 실정을 감안해 가령 소규모의 아름다운 숲을 가꾸거나 운동시설을 갖추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시설 개방을 확대하는데 노력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마치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어놀 수 있는 천국인양 그 담장까지 걷어치우기도 하면서 누구나 언제라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업은 역설적이게도 학생보호 측면에서는 가장 취약한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맘대로 출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으로 남아 있는 곳이 초등학교 교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 주택가는 물론 상가, 공장이나 회사, 공공건물 등 그 어느 곳도 학교처럼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은 없으며, 하다못해 화장실 이용이 급할 경우에도 학교처럼 감시가 소홀한 건물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관점으로는 매우 섭섭하겠지만, 학교가 더 이상 우리가 바라는 그 낙원 같은 장소로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건을 잊기도 전에!”라며 개탄이나 일삼고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가공할만한 일은 또 일어나고 말았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2학년 여자 어린이를 운동장에서 납치해 인근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끌고가 처참하게 폭행한 김수철 사건은, 기사를 읽기조차 두려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차라리 악독한 인간이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참극(慘劇)이었다.
어린이는 방과후학교 수업을 받으려고 등교했다가 운동장에서 끌려갔다. 울먹이며 끌려가는 어린이를 본 사람들도 있었지만 신경 쓴 사람은 전혀 없었다. 상상할 수 없는 폭행을 당한 어린이는 폭행범이 잠든 새 탈출했지만 아무도 즉시 발견하지 못해 학교와 집을 혼자서 오가며 부모를 찾기도 했다. ‘공포의 4시간 30분’으로 표현된 그 시간을 어린이의 입장에서 더듬어보면, 우리 사회는 아무래도 아직 어린이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정성과 의욕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 김수철 사건을 열거하는 분노만으로는 안 된다. 알려진 바로는 하루 평균 5.4명(2008년)의 어린이가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 교장의 무한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그리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CCTV를 많이 설치하고 ‘어린이 지킴이’나 ‘신고접수처’를 지정하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국회에서 아동 성범죄 처벌 강화 법안을 통과시키고 전자발찌 부착, 아동 성범죄자 공소시효 폐지, 유기징역 상한 연장 등을 실현했지만 그런 조치들도 김수철에게는 그리 적극적이지 못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나라들은 대개 학부모조차 사전 약속을 통한 학교의 허락이 없이는 교내에서 자녀를 만날 수가 없다. 교문 출입 자체가 통제되기 때문이다. 방과후 활동을 할 경우에도 맡았던 아이들을 정해진 시각에 인계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안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시간과 장소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그대로 실시한다. 교문을 열기 전이나 방과후에는 운동장에서 놀 수도 없다. 그만큼 학부모들은 학교의 학생보호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2008년 여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외부인의 학교출입을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한 ‘교원보호법안’의 입법을 건의했으나 '학교의 벽'을 높인다는 여론에 따라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도 머뭇거리지 말고 당장 그런 시책을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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