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과 체벌 금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지벌(知罰), 지덕벌(智德罰)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말도 보입니다. 문제집 풀기, 영어 단어 암기가 어떻게 벌이 되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독후감·봉사활동·과제물 부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이제 공부도 벌로 시킵니까?
그야말로 꼴난 공부 왕국이군요. 과외 왕국, 학원 왕국, 공부 왕국…….
그러면 아이들이 이렇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려고 그러십니까?
"선생님,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문제집을 풀고 영어 단어를 외워야 합니까?"
"왜 독후감을 쓰라고 하십니까?"
"왜 봉사활동을 하라고 하십니까?"
……
"선생님!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학생인 건 태어난 죄로 벌을 받는다는 의미입니까?"
이런 항의도 가능하겠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으니까 실컷 놀아도 좋겠지요?"
체험활동인가 뭔가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게 되었고, 그 중에는 독서활동이 중심적인 체험활동이라는데, 그것도 의심스럽습니다. 뭐든지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니 자식을 위해서라면 온갖 편법을 다 동원하는 나라인데(봉사활동 증명서를 부모가 대신 구해다 주는 나라), 이제 독서까지도 실적을 보겠다는 게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작용을 생각하면 독서라도 제대로 되도록 그냥 두었더라면 하는 거죠. 이런 소리 하면, 교과부에서는 다소간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책을 읽히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고 하겠지요.
그렇지만 그 신문기사를 본 날 아침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독서, 너마저도!"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언론은 특별활동(자치활동)을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의 '자치법정'을 취재해 우수 사례로 한 면 가득 실었습니다. 사실은 그게 기사가 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특별활동 교사용지도서를 보면 전국적으로 어느 학교나 다 그렇게 지도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1 각 학교에서 다 그대로 지도한다면 그게 어떻게 신문 기사 꺼리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나라는 교육과정 운영 자료대로 지도하면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나라입니다. 참 웃기는 얘기죠.
특별활동이나 재량활동 같은 건 우습게 여기는 나라, 지도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라라니, 한심한 거죠.
정신 좀 차려야 합니다.
이런 소리 하면 안 됩니까?
몇 줄 소견을 쓰고 아래 글을 소개한다는 게 이렇게 됐습니다.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나는 40여 년을 해도 제대로 하지 못해 사실은 미쳤습니다. 제대로 하는 사람 만나면 뭐든 하겠습니다. 나로서는, 다른 건 할 것도 없고 바로 그 사람 발을 씻어 주겠습니다. 그래도 좋으니, 교육 좀 제대로 하는 꼴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원이 없겠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 흔한 멘티라도 한두 명 정해두고 퇴임할 걸 그랬습니다. 도대체 뭐 하다가 물러나왔는지 아무래도 모르겠습니다. 속이 뒤집어집니다.
아래의 글은 '경기신문'(그런 신문도 있습니다)에 실은 시론입니다. 한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체벌금지, 교육도 시스템도 없는 선택
"선생님은 우리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뭘 했지요?" 교원평가 설문지를 받아든 초등학생이 당당한 표정으로 던졌다는 질문이다.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은 한두 학교가 아니었다. 꿀밤 한 대씩을 얻어맞은 여자애들이 다짜고짜 교장실에 들어가 항의하는 정도는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공부시간에 과자를 먹고, 핸드폰으로 장난치는 걸 말리다가 "네가 무슨 상관이냐!"는 반말에 두들겨 맞기까지 한 여교사가 우울증을 앓기도 하는 게 오늘의 학교현장이다. 중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다.
"어? 뭐 이런 교사가 있나!" 이젠 그 애들이 여차하면 맞대놓고 그런 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이 아주 높게 됐다. 체벌 전면금지 조치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좀 때려서라도 가르치고 싶은 간절한 교육적 필요에 의해서라면 초중등교육법시행령(제31조)에 따른 학칙의 범위에서 최소한의 체벌을 허용해왔다. 그 규정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각 교육청에서는 어떠한 경우가 그 '불가피한 경우'인지 꼼꼼히 예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서울교육청에서는 "교사의 체벌로 인해 학생의 인권이 크게 침해"되고 있다며 "2학기부터 모든 학교에서 체벌을 전면금지"했고, 경기도교육청에서도 방안을 마련 중이다. 사실은 체벌로 인해 학생의 인권이 크게 침해된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조치에 대해 갖가지 반응이 줄을 이었다. "교육을 포기하란 말이냐" "사랑의 매는 사어(死語)가 되느냐"는 일선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의 비판과 함께 "문제아 체벌을 막으면 나머지 학생도 망친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주장하는 교사도 나왔다. 전국 학교장의 91%가 체벌 전면금지에 반대한다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조사결과도 발표됐고, 학생의 권리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대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금지조치부터 하면 문제 학생을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내쫓는 결과가 초래된다며 "진보교육감들의 일방통행식 정책이 불안하다"는 교총회장 인터뷰 기사도 보였다. 언론은 '내놓는 정책마다 시끌시끌하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러자 서울교육청에서는 휴대폰 압수와 PC게임 금지, 문제집 풀기나 영어단어 암기 등 지벌(知罰), 봉사벌, 생활기록부 기재, 교실 퇴장, 학부모 면담 등 검토 중인 대체벌을 발표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도 독후감·봉사활동·과제물 부과 등의 지덕벌(智德罰)과 함께 국내 최초로 그린마일리지(상벌점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교육적인 기사도 보였다. 체벌 허용 여부가 주마다 다르거나 전면 금지된 나라에서는 문제아를 어떻게 지도·조치하느냐에 대한 시스템 소개였다. 이미 체벌을 없앤 학교들도 소개됐다. 학생들이 '자치법정'을 열어 스스로 징계하는 학교들로, "세밀한 대체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운영하지 않고서는 '체벌금지'가 공허한 이상"이라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체벌금지는 이상적이긴 하지만 교육선진국의 시스템 연구·도입이나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생활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조치부터 이루어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교육과정 자료를 살펴보면, 중고등학교는 특별활동 시간에 '모의재판'을 지도하도록 돼 있다. 재판 과정과 절차를 학습함으로써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법 운용에 대해 이해하고, 학급이나 학교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폭력적 방법이 아니라 합법적 과정을 거치는 민주적 해결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예시된 목표다. 구체적인 모의재판 지도 이론과 실천 자료도 제시돼 있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정책, 교육행정에 따른 교육현실이다. 특별활동과 재량활동은 수많은 국가시책에 의해 운영의 재량권이 이미 학교에 있지 않고, 그나마 입시위주 교육에 매몰돼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르칠 걸 가르치고 배워야 할 걸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체벌을 허용하느냐 금지하느냐, 단호한 선택부터 해야 할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우선 정신을 차리고 교육과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교육과정 행정을 중시하는 교육을 하면 모든 문제가 더 잘 해결될 것이다.
- 제가 초등교장을 했는데,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오랫동안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 교과서 정책을 담당했었고, 더구나 사람들이 저를 보고 특별활동 전문가라고도 했으니까요.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편찬된 중고 특별활동 교사용지도서를 보십시오. 제가 연구진에 들어가 있다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특별활동과 재량활동을 합쳐서 운영해도 된다면서요? 그 참 이상하지요. 그게 어떻게 합쳐도 되는 겁니까? 그럼 수학과 과학을 합쳐도 됩니까? 외국에서는 대체로 합쳐서 가르치는 사회와 도덕도 못 합치는 나라, 역사, 지리, 일반사회도 못 합치는 나라,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하나 못 합치는 나라에서 임자 없는 특별활동과 재량활동이나 합치기로 한 것입니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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