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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우리가 뭘 믿고 노벨상을 바라는가(2010.10.29)

by 답설재 2010. 10. 29.

 

 

 

우리가 뭘 믿고 노벨상을 바라는가

 

 

 

  시인에겐 민망하고 미안한 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때만 되면 몰려가 진을 친 게 벌써 몇 년째였다. 올해는 사정이 좀 달라지긴 했다. 일본 정부의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노력과 실적, 우리나라의 과제 소개로 얼른 그 관심을 돌린 것이다.

 

  문학상 수상자 발표에 이어 일본의 화학자 두 명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자, 일본은 일찌감치 지적 재산 입국(立國)의 국가지표를 설정해 1917년에 이미 이화학연구소를 설립했고, 1995년엔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해 불황이 이어질 때도 해마다 막대한 투자를 함으로써 ‘나라가 키우니까 인재가 몰릴 수밖에 없었다’는 걸 강조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일본은 이로써 화학상만 해도 벌써 7명 째로 과학분야 수상자가 14명이나 되고, 하야부사의 귀환으로 높은 우주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까지, 속상하지만 내친 김에 다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G20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신흥국의 리더, 경제순위 세계 10위권인 나라, 원조를 받다가 원조를 해주게 된 유일한 나라, 경이로운 발전을 배우고 싶다는 나라들이 줄지어 찾아오는 나라, 자존감으로는 어떤 면에서도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게 결코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은 나라, 그런 나라로서는 좀 억울하기도 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때다!’ 싶었던지 과학자들은 당장 “이렇게 해서는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며 기초과학 육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오늘날 한국이 과학 강국으로 등장할 수 있게 해준 응용기술만으로는 현재의 국제경쟁력을 이어갈 수 없고 기초과학에 충실해야 과학계 전체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게 그 주장의 핵심이었다. 선진국들은 일본처럼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기초과학 예산만큼은 늘려 과학자를 육성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과학계의 한결같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기초가 중요하다는 건 노벨상 수상 문제만은 아니다. 기초를 무시하고 기본에 소홀해도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그 주장은 반박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또 생각해야 할 것이 있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초중등학교 과학교육이다. 대학입시에 얽매여 있는 교실현장의 과학교육은 과학교과 본래의 목표 구현과 거리가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수능고사 문제풀이에는 실험·관찰보다는 교사의 ‘설명’이 효과적이므로 심지어 질문도 토론도 없이 열띤 강의를 듣는 수업일 수밖에 없다. 실험·실습이래야 ‘매뉴얼’식으로 편집된 지도안에 따라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일사불란한 수업을 전개하므로 실패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표준화된 수업을 전개할 수 있을 뿐이다.

  오죽하면 ‘매직쇼’라고 해도 좋을 학원강사식 강의가 학교에서조차 인기를 모으고 있을까. 이것이 수학·과학 성취도 국제비교(2007 TIMSS)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과학 학습 흥미도가 30개국 중 29위를 기록한 근거다.

 

  학생들의 창의력, 과학적 탐구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설명식 수업은, 언제나 지시를 기다리는 학생, 그 지시에 순종하는 학생, 기계적인 활동을 반복하는 데는 능숙해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기를 수 있을 뿐이다.

  그 걱정이 유행처럼 되풀이되는 ‘이공계 기피현상’의 배경에도, 학생들 스스로 “이공계를 선택해봐야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과학교육이 재미없고 따분한 설명과 문제풀이로 전락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기초·기본교육을 정상화하면, 대학입시에 얽매여 정답을 찾는 요령을 익히는 이 과학교육을 걷어치우고 학생들의 호기심, 관심, 학습욕구에 교육을 맞춘다면,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노벨상이 쏟아지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고 명백하다. 교육만큼 변수에 정직하고 그 효과가 강력한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교육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열정적 탐구, 그 성과에 주어지는 노벨상임에랴!

 

  어려운 점이 있긴 하다. 그것은 돈을 많이 들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입시교육의 고질적인 행태를 단절할 수 있어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런 교육을 하면서 노벨상을 바라는 것이 아이들 보기에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