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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중환자실 일기 Ⅰ- 2010.1.17-1.22. 서울아산병원-

by 답설재 2010. 1. 25.

 

 

 

 

중환자실 환자는 그곳에 머무는 시간으로 보면 세 종류입니다. 수술 절차상 하룻밤만 지내고 그야말로 '해피하게' 일반병실로 떠나는 사람도 있고, 기약도 없이 누워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기약도 없는- 의식이 있기나 한 건지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나머지 한 종류는 나처럼 어정쩡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세 종류가 있는 걸 보면 비교적 일찍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을 보고 "버러장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거나 "도무지 질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할 수는 없는 일이 분명하고, 그러므로 자신의 노년에 대한 인식은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先妣)는 마흔여덟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저 아이 낳고 일하고 하는 데만 그 짧은 세월을 다 보내다 갔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인생은 40부터!" 혹은 "인생은 60부터!"라는 호기로운 가르침이나 "구구 팔팔!" 같은 구호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해석하기도 불가능한 암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겠지요. 나는 그런 구호를 아주 싫어합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서러워했고, 그 어머니가 불쌍하고 원망스러웠지만, 나에게는 어머니의 그 인생이 사실은 100세 가까이 산 사람에 비해 결코 초라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 오래 살면서 온갖 서러움을 받는 노인들을 보면 오래 산다고 뭐 그리 좋은 일도 아닌 게 분명합니다.

 

오죽하면, 부모가 돈이 있어야 자식들이 노년의 부모를 찾아오는 경향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현저한 나라라는 조사까지 나왔겠습니까. '효성이 어떠니, 동방예의지국이 어떠니'는 우리나라에서는 다 시궁창에 빠진 지가 오래입니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3박4일을 지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여러 가지 일을 체험했고,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생각한 것 한 가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그것은 생각이 변한 것입니다.

 

죽음은 아직은 나에게서 좀 먼 곳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 병원에서나 지난해(2009년) 12월의 그 병원에서나 연령에 비해 심장은 참 튼튼하고, 게다가 12월의 그 병원에서는 1주일간 이것저것 다 검사해봐도 내장이나 어디나 다 '이상 없음'인데다가, 대략 47년이나 피운 담배는 탈이 나려면 벌써 났겠지만 허파도 그만하면 괜찮으니까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뭣 해도 어느 정도쯤 더 즐겨도 좋겠으므로 이제 운동이나 좀 하고, 음식 조심하면서 지내면 큰 이변은 없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가롭고 여유롭게 이런 생각을 하며 지냈습니다.

'언제쯤 죽음을 구체성 있게 마련해야 할까? 5년쯤 후? 에이, 아무려면……. 그럼 우리 나이로 겨우 70세에 죽는다고?'

'요즘은 남자 평균수명이 78세라던데, 그렇게만 보아도 10여 년 후의 일이고, 내가 평균수명보다 5년이나 10년 더 살 수 있다면 대충 15년 내지 20년 후의 일이겠구나.'

 

막연하게 그런 계산을 하며 지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죽음은 벌써부터 나의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번에도 평소의 내 성격대로 '까짓거 별 이상 없다니까 또 얼마 동안 그냥 지내자' 하고 돌아섰다면 나는 별 수 없이 죽음 앞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관상동맥이 겨우 세 개라는데 그 중 두 개가 막혔으니 나라고 뭐 별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죽음'이라는 걸 소홀히해서였는지 생전에 나와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도 않은 선친(先親)이 꿈에 나타나, 친하지도 않았으니 나에게 직접 그러시지는 않고 몇몇 친지와 함께 앉아서 간접적으로 내게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는 우리 아들의 그 병을 왜 못 고쳐주는지 격노(激怒)할 수밖에 없다."

 

 



 

그 중환자실에서 밤낮을 지내며 나는 주변의 환자들과 간호사들은 물론, 컴퓨터와 집기들, 심지어 내 손까지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특히 내 손을 살펴보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이 손으로 65년을 살아왔구나.'

 

'이 몸에 대해 평생 이런 저런 불평도 했지만 그래도 얼마나 고마운 몸인가.'

 

'돌아가서 이 몸을 만들어준 어머니를 만나면 고맙다는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그렇지만 벌써 38년 전 그 젊은 날인 48세에 돌아가셨으니 내 얼굴을 기억하기나 하실까?'

 

'이제 앞으로 남은 세월이 1년이든 5년이든, 10년이든 15년이든, 어느 날 갑자기 이 병원으로 다시 실려온다 해도 허둥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와 내 주변을 지켜보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아, 이제 드디어 마지막으로 이곳에 실려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자존심을 지키며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명심할 것은 아둥바둥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느니, "인생은 몇 십부터"라느니, 그 헛된, 허망한 구호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 이후에 보여준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이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해도 스스로 섭섭해하지 않아야 한다. 공식적인 일이 다 끝나지 않았는가. 이제 남은 세월은, 덤에 지나지 않는 고마운 세월일 뿐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