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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수술실 일기- 2010.1.17-1.22. 서울아산병원-

by 답설재 2010. 1. 23.

아직은 혼수상태였을 것입니다. 눈앞에 손이 보였습니다. '부드럽지는 않지만 언제나 따듯한' 그 손을 잡고 두 마디만 했습니다. 그게 차례로 가장 중요한 말이긴 하지만 수술실에서 생각해 두지는 않았는데도 저절로 그 말이 나왔습니다.

"오래 걸려서 걱정하고 있을 줄 알았어."

"나 대단히 아팠어."

 

아내는, 제 손목의 핏줄을 타고 들어간 카메라가 세 줄기밖에 되지 않는 관상동맥들 살펴보는 데는 10분이나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몇 차례 들었기 때문에 한 시간도 더 걸린 그 시간에 거의 초죽음이 되었을 것입니다. 검사를 받아보러 들어가 수술을 하게 되고 게다가 지혈까지 어려워 고생을 하고 나오는 동안 예기치 않았던 상황에 어디론가 전화하는 자신의 손이 푸르죽죽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중환자실로 나오더니 간신히 지혈했다는 그 동맥이 또 터져 의료진이 몰려들고 자신을 밖으로 몰아내는 걸 보고 '이제 이 사람은 틀렸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 와중에 어젯밤에 함께 들어 있었던 그 병실의 물건을 가져가라는 연락까지 와서 '그동안을 참아주지 않고 방을 비우라고 하는가' 너무나 야속하더랍니다.

 

침대에 누워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지는 않았고 어디선가 10여 분을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들으니까 그곳이 대기실이고, 그 절차와 순서를 아내도 밖에서 전광판을 보며 다 알 수 있었다지만, 저는 그런 걸 몰랐으므로 그 대기실 침대에 실험재료처럼 누워서 하릴없이 칸막이 커텐과 천장의 무늬들을 바라보며'왜 시작하지 않지? 아내가 기다릴 텐데…….''그 병실에서 나를 맡기고 간 걸 이 사람들이 잊어버렸나?'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아서 지금부터 벌어지는 상황은 괴롭거나 말거나 얼른얼른 지나가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수술실 침대 위로 옮겨 눕자, 그들이 제 오른쪽 손목을 잘랐지만 핏줄이 약해서 다시 왼쪽 손목을 자르겠다고 했고 저는 얼른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눈을 뜨고 있을까, 감고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감고 있는 게 젊잖아 보이고 편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가슴이 매우 아파왔습니다. 그 통증이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영제라는 걸 넣었을 때였습니다. "평소보다 통증이 심하고 멈추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누군가 어느 정도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게 뭐 중요한 건가 싶고 얼른 지나가면 좋겠지만, 귀찮아서 어젯밤 병실 침대 발치에서 본 그 요령대로 고통의 강도가 10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단호한 목소리로 "자르자!"고 했고, 그때부터 독촉하는 소리, 대답하는 소리가 거듭되었고(저에게는 더 이상 묻거나 어쩌거나 하지 않고 긴박하게 진행되는 그 상황이 참 시원스럽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날 아침까지 1주일간 집에서 그 병원의 처방에 따라 아스피린까지 한 알씩 먹은 저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정신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다만 지혈을 하느라고 제 두 손목과 사타구니 양쪽을 누르는 손길이 무척 우악스럽다는 느낌이어서 이러다가는 하체의 뼈가 으스러지겠다 싶었지만, 가슴의 통증은 차츰 가라앉는 것 같았고, 그것이 그 상황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데 그렇게 중요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래저래 신음을 흘렸을 것입니다.

 

입원을 해야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으므로 일요일 오후에 입원한 저는, 월요일 아침에 그렇게 검사하고 점심때쯤 아내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좋아하는 점심 메뉴로 외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다른 병원의 검사에 의하면 제 심장은 64세답지 않게 강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그 결과를 본 이 병원 전문의사도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던 상황이 이처럼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말았고, 그러한 상황에 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나 대단히 아팠어." 그 두 번째 고백은 첫 번째 고백 "오래 걸려서 걱정하고 있을 줄 알았어."에 비하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늦게 나온데 대한 변명을 보충하는 것이었는데, 아내는 그것 때문이었는지 제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는 참 묘한 사람입니다. 젊었을 때는 그에게 진 빚을 갚기가 참 쉬웠습니다."이제 그러지 않을게."(때로는 하루에 거의 한번씩)"알았어."(이런 대답은 바닷가 모래알의 수만큼)"그래? 그럼 그렇게 할게."…….어떤 일이든 참 간단한 말 한 마디로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도저히 못 갚겠구나, 자신감을 잃게 합니다. 더 어려운 것은, 대개 막연하고 추상적인 빚이어서 도대체 얼마 정도인지 정리해보기도 싫고 어렵고 난처한 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걸 숨기고 살아갑니다. 앞으로도 '그따위'를 고백하며 살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병을 다녀가며 우리 학교 어느 선생님이 아내에게 "이제 교장선생님도 꼬리를 내리실 거"라고 해서 "에이구, 그런 말씀 마시라.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지만, 사실은 제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방도는 그 '내려지지 않는 꼬리'밖에 없습니다. 빚은 자꾸 늘어가는데 그 꼬리조차 내리면 제 자존심은 어떻게 합니까(그는 절대로 이 블로그를 열어보지 않는 사람이니까 이건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