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해마(海馬)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행운을 찾고 싶은 마음이 생겨 돈을 몽땅 챙겨가지고 길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뱀장어를 만났다.
“야, 이 친구야! 어디를 가는 길이지?”
“행운을 찾으러 가는 길이야.” 해마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꼭 좋은 때 만났군.” 뱀장어가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돈을 절반만 주면 속력을 낼 수 있는 이 지느러미를 네게 주어 훨씬 빨리 바라는 곳에 도착할 텐데…….”
“하! 그것 참 그럴듯한데!” 해마는 돈을 치르고 지느러미를 얻어 두 배의 속력으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이번에는 우뭇가사리를 만났다.
“야, 이 친구야! 어디를 가는 길이지?”
“행운을 찾으러 가는 길이야.”
“꼭 좋은 때 만났군. 만약 돈을 좀 낸다면 여행을 훨씬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이 제트 추진식 스쿠터를 줄 텐데…….”
해마는 우뭇가사리의 제의에 그가 가진 나머지의 돈을 모두 주고 제트 스쿠터를 샀다. 그리고 전에 비해 다섯 배의 속력으로 바다를 누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어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야, 이 친구야! 어디를 가는 길이지?”
“행운을 찾으러 가는 길이야.”
“꼭 좋은 때 만났군.” 상어가 그의 크게 벌린 입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지름길로 가면 시간이 훨씬 절약될 텐데…….”
“아, 그것 참 고맙군요.” 해마는 크게 벌린 상어의 입안으로 훌쩍 들어가고 말았다. 해마는 결국 상어의 좋은 먹이가 되고 말았다.
1970년대에는 행동적 수업목표 설정이 강조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때 읽은 한 번역서의 머리말에 소개된 우화입니다.1 만일 우리가 분명치 않은 목적지를 향해 길을 떠난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곳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었으니까 그 책에서 조금만 인용해보겠습니다.2
여러분은 자신이 세운 학습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때에 학습자가 표현하였으면 하고 바라는 행동을 확인할 수 있는 목표로 기술함으로써 오늘날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모호한 목표보다는 나은 목표를 기술하게 될 것이다. "이해한다", "안다", "인식한다" 등과 같은 모호한 말로 목표를 세우고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뜻을 학생들이 알아맞추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여러분은 성취의 증거로서 받아들이게 될 그러한 종류의 활동을 명확하게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라도) 목표 속에 밝혀 놓아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의 수업을 위하여 적절한 내용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준비해 놓은 수업을 여러분이 평가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여러분은 목표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얘기하기가 쑥스럽습니다. 이런 주장의 배경을 우리는 행동주의라고 했습니다. DAUM을 통해 브리태니커에서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 [行動主義, behaviourism]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 심리학 이론을 지배했던 매우 영향력 있는 심리학파. 고전적 행동주의는 전적으로 측정할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는 자료에만 관심을 두었으며, 사고·정서 및 내적인 정신적 경험과 활동을 연구 대상에서 제외했다. 유기체는 외부 환경과 내부의 생물학적 과정에 의해 주어진 조건(자극)에 '반응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당시의 지배적인 학파였던 구성주의에서는 심리학을 의식·경험 또는 정신의 과학으로 여겼으며, 신체활동은 배제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최대 관심은 신체활동의 정신현상과의 관계라는 문제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당시 심리학의 특징적 방법은 자신의 정신작용을 관찰하여 보고하는 내성법이었다. 행동주의의 최초의 주장은 …(이하 생략)…
이번에 심장수술을 받은 서울아산병원 병실 침대 발치의 "통증을 숫자로 표시해주십시오."라는 문구를 보고 저는 내내 저 행동주의적 목표 진술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문구 아래 그려진 도표를 보면,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상태를 '0'이라고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일 경우를 '10'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통증을 그 범위의 수로 표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저의 경우 어느 때는 '2~3', 그 다음날은 '1~2'로 표현했다가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다녀온 다음에는 '0.2' 혹은 '0.3' 정도라고 표현해주기도 했으니 얼마나 편리한 방법입니까?
그걸 보고, 그 주문에 따라 표현해보기도 하면서 저는 우리 한국교육에서는 왜 이런 방법이 한때의 유행처럼 지나가고 마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왜 우리나라 학자들은 조금만 알게 되면 다른 나라 유명한 학자들의 주장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단번에 뒤흔들어버릴 수 있는지, 그리하여 우리나라 교육계에는 오늘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교육행정가들은 교원들의 연수회 때조차도 이제는 교육학자들을 거의 초빙하지 않고(피차 별것 아닌 교육학자들이니 초청하고 어쩌고 할 것도 없겠지요) 어디서 무슨 웃음치료사, 방송작가, 컨설턴트, 혹은 무슨 희한한 일로 사회적 명성을 얻고 있는, 그러므로 때로는 그런 분들도 필요하겠지만 교육과 직접 관련도 없는 강사들을 불러 그것도 특강을 맡기게 되었는지…… 그리하여 결국 학교에 대해서도 국어나 수학, 사회, 과학……을 잘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보다는 이상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적용하는 학교와 교장, 교사들을 앞세우게 되었는지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우리 한국교육이, 도입해보고 물리치지 않은 교육방법이 도대체 한 가지라도 있습니까?
또한, 우리가, 우리 한국교육이, 줄기차게 연구하고 실천하는 교육방법이 주입식·강의식에 의존하는 암기교육 말고는 단 한 가지라도 있습니까?
우리는 허망하게 그런 방법으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학원강사의 약장수 같은 강의가 먹혀들고, 그런 강사를 EBS가 최고의 강사로 모셔간다고 하고,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교사는 백발백중 학원강사식 강의를 하는 교사라는 사실이 그걸 증명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다고 말 좀 해보십시오.
그 병실 침대에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저 시골 깊고깊은 산골짜기에서 온 환자는 저 주문대로 표현해줄 수가 없을 텐데……, 그러면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막 짜증을 내버릴까?'
"여보세요오! 4면 4, 5면 5, 그렇게 표현할 수 없겠어요?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그래도 그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그럴 텐데…… "아이구, 가슴이야! 내 가슴 다 타들어가네에! 아이구, 나 죽네에~."
걱정할 것 없겠지요. 행동주의적 방법을 저렇게 잘 실천하는 사람들이 다른 방법인들 못하겠습니까? "할머니, 잘 알겠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걱정 마세요. 낼 아침에 수술해드릴게요."
♡ 그 병원 선전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면 다음 번에 어떤 수술을 받게 되면 그 수술을 한 또 다른 병원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지난번 병원에서 별로 본 것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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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OBERT F. MAGER/鄭宇鉉 譯『학습지도를 위한 행동적 수업목표의 설정PREPARING INSTRUCTIONAL OBJECTIVES』(교육과학사, 1976).
2. 위의 책, 71쪽(5. '끝맺음 행동의 깊은 뜻'의 첫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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