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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병실 일기 Ⅱ-지난해 12월의 병원과 올 1월의 병원

by 답설재 2010. 1. 27.

 

 

 

병실 일기 Ⅱ

- 지난해 12월의 병원과 올 1월의 병원 -

 

 

2009년 12월의 병원 이야기입니다. 참을 수 없이 아파서 응급실에 들어가겠다는 연락을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사망?

병원으로부터 제 사망이 언급되는 것을 저는 난생 처음 들었습니다. 그것도 그렇게 쉽게 언급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교육자로서 아이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었을까요?

다행히 올 1월의 병원에서는 그런 말까지는 듣지 않았고 "자칫하면 큰일날 뻔했다"고 했습니다.

 

제 죽음이 남으로부터 언급되는 것은 그리 기분좋은 일이 아닙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저는 오늘 밤에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이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습니다. 제 '사망'이 남으로부터 그렇게 쉽게 언급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처음 겪은 일이지만, 병실에 들어앉아 있는 그 모습부터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면 '인간의 일상적인 모습'(품위 같은 것)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고 한순간에 중단되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 우선 식당에 가지 않고 침대에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 내 의지나 선택은 무용(無用)하고, 병원측의 결정대로 검사하고, 치료 받게 됩니다. 심지어 외출하는 것도 군대 휴가 가듯 그들의 허가가 필요한 사항이 됩니다. 그러므로 활동 범위가 제한되고, 금지되는 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저의 모든 활동이 체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 다른 인간의 차원 낮은 행위, 인간 이하의 행위가 일상화된 모습을 봐야 합니다. 여성들 중에는 무슨 치료를 받고 있는지 그런 행위, 그런 생활을 '룰루랄라' 즐기는 모습이 관찰됩니다. 비만 치료 중이었을까요?

- 화장실이 더러워도 이야기할 때가 마땅치 않았고, 2인용 병실에서 지내며 그 화장실을 다른 이와 함께 사용해야 했으므로 별 수 없이 제가 스스로 청소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화장실 청소를 하러 입원한 것은 아닙니다.

-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감히' 저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구 하나 제 자존심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로부터 "저이는 평생 자존심 하나로 살아왔다"는 말을 듣고, 아들딸들은 저에게 직접 그렇게 묻지는 못하고 제 어머니에게 "아빠는 세상에 대해 왜 저렇게 도도해야 하지요?"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이 땅의, 이 시대의 교육자인데도 병원에서는 하등의 고려와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러므로 병원의 그러한 규정과 태도가 제대로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올 1월의 병원 중환자실, 그 혼수상태에서 제 둘째 딸이 제 어미에게 하는 소리를 또 한번 들었습니다.

"아빠는 심장수술을 받고 누워 있으면서도 저러시네요?"

"도대체 왜 저렇게 도도하지요?"

 

제가 왜 도도하면 안 되는 걸까요? 병원이기 때문에? 병원이 도대체 어떤 곳이어서 제가 도도하면 안 되는 걸까요? 저는 질병 따위를 넘어서 평생 사람을 만들고 고쳐준 교육자 아닙니까?

 

그런데 올 1월의 그 병원에서는 다행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환자 권리 장전

 

모든 환자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권리를 가지면 이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진다.

 

■ 환자의 권리

1. 환자의 생명은 존중되며,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2. 환자는 가난하다거나 그밖의 이유로 차별 받지 아니할 권리가 있다.

3.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관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 치료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4. 환자는 진료상의 비밀을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

5. 환자는 병원 내의 각종 위험으로부터 신체적 안전을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

 

■ 환자의 책임과 의무

1. 환자는 의료진에게 정확하고 완전한 의료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2. 환자는 의료진에 의해 제시된 치료계획을 존중하여야 한다.

3. 환자는 병원 내 공공질서를 지키고 다른 환자의 편의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이렇게 써붙여 놓은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더구나 그걸 실천하고 있는 걸 확인하면서도 그들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건 환자축에도 들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 어느 병원 선전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면 다음 번에 어떤 수술을 받게 되면 그 수술을 한 또 다른 병원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지난해 12월의 그 병원에서 별로 본 것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렇게 되었습니다.